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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03. 2021

<고백> 서은영 2020


 국민 일 인당 천 원씩 일주일 안에 1억 원이 모금되지 않으면 아이를 죽이겠다는 유괴범의 메시지가 뉴스를 통해 공개된다. 순경인 지원(하윤경)은 그날 아침 우연히 마주친 여성과 아이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던 중 사회복지사 오순(박하선)이 관리하던 아이 보라(감소현)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지원은 아동학대 부모들의 불의를 참지 못해 경찰서에 오기도 했던 오순의 모습을 떠올리며 사건을 추적해나간다. 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박하선이 배우상을 수상했던 영화 <고백>은 천원유괴사건이라는 독특한 상황을 통해 범죄 수사극과 사회고발물 사이를 오가며 한국의 아동학대 실상에 대한 성찰과 고발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원과 오순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게 되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가 영화가 보여주는 사건 전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주기에, 범죄 수사극으로써 흥미로운 추리를 선보인다든가 하는 등의 장르적 쾌감은 아쉽다. 하지만 이 영 추리해나가는 것이 단순히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것이 아님을 드러내는 순간 영화의 주제가 전면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영화는 약 2주가량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 지원과 오순이 마주치는 오프닝 시퀀스를 중심으로, 오순과 보라의 이야기가 담긴 오프닝 시퀀스 이전의 일주일 가량과 지원이 천원유괴사건과 보라의 실종을 뒤쫓는 오프닝 시퀀스 이후의 일주일이 영화에 담긴다. 영화는 그 시간을 통해 경찰과 사회복지사라는 각기 다른 위치에 있는 두 여성이 제도와 절차적 문제에 가로막혀 눈앞에 있는 소수자 대상의 폭력들, 가령 스토킹이나 아동학대를 막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죄책감과 무력함을 보여주고, 그럼에도 자신의 직업윤리와 신념을 쫓아 행동하고 연대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지난 몇 년 동안 이어진 아동학대를 비롯한 소수자 대상 범죄들은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 법과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고백>이 보여주듯, 그것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작동할 뿐 폭력을 예방하는 것에 적극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법과 제도는 자신의 신념을 쫓아 행동하는 이들의 적극성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증거를 요구하는 경찰과 사법제도는 아이의 몸에 난 피멍을 중요시하지 그것이 생기기까지의 시간을 고려하진 않는다.     

 때문에 <고백>이 택한 2주간의 시간을 오순과 지원의 시점으로 양분하여 전개하는 형식은 어떤 사건이 발생하기까지의 시간과 사건 이후 피해자가 말하지 못했던 것을 고백할 수 있게 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포괄하는 것이 된다. 때문에 지원이 추적하는 사건의 전말은 보라가 겪은 폭력의 시간을 쫓는 것임과 동시에 보라가 스스로 자신의 말로써 고백하기를 기다리는 시간을 창출해내는 것이다. 지원의 두 동료 경찰 캐릭터와 오순의 선배 사회복지사인 미연(서영화)은 영화의 두 여성 주인공보다 오랜 시간을 자신의 직업군에서 보낸 인물로서, 극의 긴장을 풀어주거나 조여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결과적으로 폭력을 방치하며 사후적인 처리밖에 하지 못하는 직업적 관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캐릭터들의 앙상블은 소수자를 향하는 폭력의 구조를 드러낸다. 영화의 몇몇 장면의 촬영이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부담스럽다는 인상이 들긴 하지만, 아동학대를 고발하기 위해 학대당하는 아동의 모습을 여과 없이 재현하며 불쾌함을 안겨 주었던 몇몇 영화들에 비해 사려 깊은 만듦새가 영화의 몇몇 아쉬운 부분을 상쇄한다. 그 지점에서 <고백>은 수차례 영화로 다뤄진 주제를 다른 주제보다 사려 깊게 전달한다는 성취를 얻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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