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에서 3년의 시간이 흐른 시점, 서식지를 잃은 콩은 모나크 소속의 아일린(레베카 홀)의 보호 아래, 스컬 아일랜드 부족의 소녀 지아(카일리 하틀)와 살아가고 있다. 한편, 월터 시몬스(데미안 비치르)와 세리자와 렌(오구리 슌)의 회사 에이펙스가 고질라에게 공격받는다. 이에 월터는 할로우어스(지구공동설)을 주장하던 학자 네이선(알렉산더 스카스가드)에게 고질라에 대항할 에너지원을 찾기 위한 탐사를 제안하고, 네이선은 옛 동료 아일린에게 부탁해 콩을 데리고 할로우어스로 향한다. 동시에 모나크 국장의 딸 매디슨(밀리 바비 브라운)은 에이펙스에 근무하는 음모론자 버니(브라이언 타이리 헨리)와 함께 에이펙스의 비밀을 파헤친다. <블레어위치>부터 넷플릭스의 <데스노트>까지, 주로 저예산 호러영화를 만들어온 애덤 윈가드의 첫 블록버스터 연출작이다. 워너와 레전더리의 ‘몬스터버스’를 연출해온 이들이 호러를 기반으로 삼은 장르영화 감독들이었다는 점에서 애덤 윈가드의 기용은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지만, 그의 능력에 항상 의문을 가지고 있었기에 기대와 걱정이 뒤섞인 채로 극장을 찾았다.
많은 이들의 평과 같이, <고질라 vs 콩>은 전작 <킹 오브 몬스터>의 장점과 단점이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다. 장점이라면 거대괴수들의 싸움을 대단한 스케일로 보여준다는 것일 테고, 그것들을 잇는 인간 중심의 서사가 부실함이 단점이다. 영화 후반부 등장하는 메카고질라로 수렴되는 인간들의 서사는 이른바 ‘알파 타이탄’의 자리를 놓고 고질라와 콩이 경쟁한다는 설정을 어느새 잊어버린 듯 흘러가고, 그간의 <킹콩> 영화들의 이야기를 따라 등장한 콩과 교감하는 인간 지아의 이야기는 콩을 <혹성탈출> 속 유인원들처럼 보이게 만든다. 할로우어스라는 매력적인 설정은 어떻게든 콩을 ‘인간적인’ 존재로 만들어내는 것에 복무할 뿐이다. ‘쇼와 고지라’ 시리즈에서 외계인의 것이었던 메카고질라는 인간 욕망의 산물로 등장하는데, 등장하는 과정과 쓰임 모두 안타깝기만 하다. 메카고질라는 오로지 고질라와 콩 사이의 싸움을 멈추기 위해 등장할 뿐이며, 퇴장하는 방식 또한 어처구니없다.
장점이라면 거대괴수 영화다운 스케일이다. 에이펙스를 습격하는 고질라, 항공모함 위에서 벌어지는 고질라와 콩의 대결, 할로우어스의 거대한 경관, 홍콩에서 벌어지는 결투까지, <고질라 vs 콩>은 계속 장소를 바꿔가며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문제는 그것을 ‘몬스터버스’의 이전 영화들과 전혀 다른 톤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우선 이 영화엔 인간의 시점에서 괴수들의 싸움을 바라보는 숏이 거의 없다. 인간 시점에서 괴수를 보는 숏 대부분은 지아와 콩 사이의 교감을 보여주는 데 낭비된다. <고질라>에서 고질라의 거대함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한 시야의 제한이라던가, 경건함에 가까운 분위기를 연출했던 <킹 오브 몬스터>의 웅장함은 이번 영화에 없다. 세 편의 전작 중 가장 아쉬운 완성도를 보여줬던 <콩: 스컬 아일랜드>조차 콩을 비롯한 괴수들의 스케일을 보여주는 것에 있어서는 만족스러운 이미지를 선사했었다. 하지만 <고질라 vs 콩>은 그저 고질라와 콩이 앞에 놓인 거의 모든 것을 파괴하며 싸우는 모습을, 마치 슈퍼히어로 영화의 카메라처럼 찍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같은 홍콩을 배경으로 삼은 기예르모 델 토로의 <퍼시픽 림>이나 후속편 <퍼시픽 림: 업라이징>처럼 일본 거대괴수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듬뿍 드러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괴수 슈트를 입은 사람들이 레슬링을 벌이던 것과 같았던 일본 고지라 시리즈의 전통에 따라 고질라와 콩이 이종격투기처럼 격투를 벌이는 모습 등이 그러한 역할을 맡는 듯하지만, 콩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고질라의 묘사는 <고질라>와 <킹 오브 몬스터>를 통해 쌓인 캐릭터의 서사를 온 데 간데 없이 날려버린다.
가렛 에드워즈의 <고질라>가 탁월한 점은, 혼다 이시로의 첫 <고지라>가 보여준 자연재해에 가까운 연출과, <고지라> 이후 이어진 시리즈에서 점차 수호신의 역할을 맡게 된 고지라의 모습을 거대한 CG 크리처 고질라에게 적절히 배분하였고, 양자 사이의 결합을 매끄러운 서사로 보여주었다는 것에 있다. 즉, 가렛 에드워즈는 혼다 이시로의 <고지라>와 안노 히데아키의 <신 고지라>에서 묘사된 것과 같은, 핵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자연재해로서의 거대괴수로 고질라를 등장시킨 뒤(이는 지진과 쓰나미 등의 장치로 표현된다), ‘재해’의 측면을 오리지널 크리처인 무토에게 넘긴 채 고질라를 수호신의 이미지로 퇴장시켜 일본 고지라 시리즈에서의 맥락을 이어갔다. 이는 마이클 도허티의 <킹 오브 몬스터>에서도 이어진다. 여기선 ‘몬스터버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킹 기도라, 로단, 모스라 등은 물론, 일본 고지라 시리즈에 없었던 여러 지역의 신화나 전설, 혹은 음모론 속의 괴수들을 짧게나마 등장시키고 있다. 이들의 등장은 화산폭발이나 태풍 등의 자연재해처럼 묘사되고, 고질라는 ‘알파 타이탄’으로서 이들을 굴복시켜 수호신의 면모를 보여준다.
<고질라 vs 콩>엔 그런 것이 없다. 고질라는 난데없이 인간을 공격하는 재앙신이 되었고, 콩은 인간과 교감할 수 있는, 파충류나 곤충이 주류를 이루는 타이탄 가운데 유일한 영장류로서, 수어와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고등생물로서 서사에 기입된다. 고질라는 인간적인 타이탄 콩과 타협하고야 마는 존재로 격하되었고, 콩은 ‘몬스터버스’라는 세계관에 걸맞지 않은, 다시 말해 전혀 타이탄스럽지 못한 존재로 다뤄지게 되었다. 메카고질라는 엉성한 디자인 속에서 어정쩡하게 등장했다 어처구니없이 퇴장한다. 영화의 거대한 스케일이 이야기와 상관없이 전달하는 쾌감과는 별개로, 이 영화는 거대괴수 장르를 대표하는 두 캐릭터의 조우는 만족감보단 어딘가 거슬리는 느낌을 잔뜩 제공하고 있다. 그래도 재밌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