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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02. 2021

2020-05-01

1. 전주영화제 2일차. 3편의 장편과 3편의 단편을 봤다.

<너에게 가는 길> 변규리 2021

 이 영화는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의 열 번째 작품이다. <플레이 온> 등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던 변규리 감독의 신작이기도 하다. 연분홍치마는 그 동안 FTM 트랜스젠더, 게이 커뮤니티, 레즈비언 정치인, 용산참사와 그 유가족, 쌍용차 복직투쟁 등을 다뤄왔다. 이번 영화는 성소수자 보모모임에서 활동 중인 두 어머니를 다룬다. 각각 비비안과 나비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두 사람은 게이와 젠더퀴어 자녀를 두고 있다. 영화는 이들의 자녀가 커밍아웃 했던 순간의 기억부터 함께 인권운동에 참여하는 모습, 자녀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기존의 성 고정관념과 가족이라는 사회적 구성 자체를 재고하는 모습, 그리고 지금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연달아 등장한다. 그 과정이 담긴 기록을 보면서 계속 울었다. <너에게 가는 길>은 다큐멘터리 작업에 있어 새로운 형식과 방향성을 모색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저 지금 필요하기에 존재하는 영화일 뿐이다. 영화의 초반부 어딘가를 가는 두 젊은 퀴어의 모습과 출근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이어져 등장한다. 퀴어들의 용기는 그들의 부모님을 변화시켰고, 부모님의 용기는 같은 세대의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영화 후반부 언급되는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 포기 사건(과 더불어 올해 초 있었던 죽음들을 떠올렸을 때)은 혐오와 차별이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한 세상을 퀴어로서, 퀴어의 부모라는 다른 방식의 퀴어성을 지닌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너에게 가는 길>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의 눈물을 흘린다. 

<아타라비와 미켈라츠> 유진 그린 2020

 유진 그린의 영화는 졸리다. 특유의 건조한 대사 톤과 무표정에 가까운 표정 연기들은 관객을 졸음으로 몰아 넣는다. 신작 <아타라비와 미켈라츠>도 그러하다. 전작 <포르투칼 수녀>나 <예술의 다리> 등에서도 신화를 적극적으로 차용하였지만, 어디까지나 현실에 입각한 배경과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영화의 프롤로그부터 '여신'이라는 존재의 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르다. 적극적으로 신화의 이야기를 판타지적으로 영상화하는 이 영화는 “영화는 세상의 물질성과 성스러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만나는 장소이다”라는 유진 그린의 말을 고스란히 옮기려는 것만 같다. 혹은 영화가 시작하고 등장하는 페르난도 페소아의 문장 "신화는 무(無)이자 전부이다"를 반영하려는 것만 같다. 다만 그 결과물을 흥미롭게 지켜보다 끝없이 졸았을 뿐이다...

<2008> 블레이크 윌리엄스 2019

 블레이크 윌리엄스의 새 단편 <2008>은 전작 <프로토타입>처럼 3D를 과격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작품이다. 이번 영화는 CRT 모니터 속에 담긴 3D 영상을 보여주거나, CRT 모니터를 3D로 촬영해 보여주는 다소 괴팍한 방식을 선보인다. 다들 알고 있듯이 CRT 모니터는 평면이 아니라 곡면이다. 모니터를 동영상으로 촬영했을 때 검은 선 같은 것이 등장한다. 그러한 선들이 모니터의 곡면 스크린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벚꽃이나 장미, 바다, 망원경 등의 대상들은 3D와는 거리가 먼 CRT 모니터 화면 속에서 관객 앞으로 다가온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CRT 모니터라는 구시대의 유물을 3D라는 가상의 입체감을 통해 촉각적으로 감각할 수 있게 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상영 전 인사말에서 블레이크 윌리엄스는 이 영화가 팬데믹 전에 만들어졌지만 팬데믹 시기에 어울리는 것이라 말했다. 과거와의 거리두기, 그리고 거리두기 한 대상과 (가상을 통해서라도) 접촉하기. 고다르의 <언어와의 작별> 속 양쪽 카메라가 따로 움직이던 장면처럼 <2008>의 초반에도 3D 카메라의 두 카메라가 따로 움직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멀리 떨어진 대상에 접촉하기 위한 초점 맞추기, 우리는 그것을 명확하게 바라봐야 그것에 다가갈 수 있다. 

<서신 교환> 카를라 시몬, 도밍가 소토마요르 2020

 두 감독은 자신의 윗 세대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스페인에 사는 카를라는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집을 정리하며, 그와 나눴던 문학, 종교, 삶 등에 대한 이야기, 를 담아 도밍가에게 보낸다. 칠레에 사는 도밍가는 카를라의 말의 대한 답신으로 할머니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답신을 보낸다. 이들의 이야기는 모성에 대한 이야기로 발전한다. 하지만 도밍가가 보낸 마지막 영상 서신에는 2019년 10월 칠레에서 벌어진 국가폭력의 현장이 담겨 있다. 여성으로, 어머니로, 딸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들의 이야기는 국가폭력에 잠식당해 소멸의 위기를 겪는다. 칠레를 비롯한 남미 지역 사람 중 많은 이들은 유럽으로 망명을 떠났다. (파트리시오 구즈만 감독이 대표적일 것이다) 도밍가는 칠레에서 계속 생존할 수 있을까? 친애의 감정으로 가득한 두 사람의 편지는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점·선·면> 소피아 보흐다노비츠 2002

 영화의 화자인 감독은 죽은 친구를 애도한다. 함께 칸딘스키를 좋아했기에, 영화는 회화에 대한 칸딘스키의 이론서 [점·선·면]의 한 구절을 이야기하며 시작된다. 칸딘스키에서 시작된 소피아의 이야기는 죽은 친구와 같은 생일을 가진 모차르트와 비엔나 여행의 이야기로, 칸딘스키에 앞서 서구권 추상회화를 선보인 힐마 아프 클린트에 대한 이야기로, 상트페테부르크 여행에서 촬영한 16mm 볼렉스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죽은 친구에 대한 자유로운 연상을 통해 그를 추모하고 그러한 상황 자체에 대한 모종의 비평을 시도하는 듯한 이 영화는, 전혀 관계 없는 어떤 것들에 대해 아주 자그마한 연상들만 가지고 이어 붙이는, 누군가가 힙스터 예술가 시대의 네러티브라 비난한 그것을 고스란히 따라간다. 영화의 감독은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는다. 카메라에 담긴 자신의 모습, 내레이션이 지시한 과거의 상황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다시금 움직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정말 할 말이 없어졌다. 

<검열> 프라노 베일리본드 2021

 싸구려 고어/호러 영화들이 판을 치던 80년대 영국, 검열관인 이니드는 매일 쏟아지는 영화들을 보며 일한다. 어느 날, 어린 시절 숲 속에서 동생을 잃어버린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떠올리게 하는 영화를 보게 된다. 이니드는 실종된 동생이 영화에 출연한다고 생각하고 영화 촬영 현장을 찾아가려 한다. <검열>의 오프닝 시퀀스에는 수많은 80년대 고어 영화들이 등장한다. 제대로 확인한 것은 아벨 페레라의 <드릴러 킬러> 뿐이었지만, 당시 루치오 풀치나 허셀 고든 루이스 등이 활발하게 작품을 내놓았을 때라는 점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80년대 영국은 대처 정권하의 보수화된 사회였다. 고어/호러 영화들은 사회적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검열의 대상이 되었다. 정부와 언론은 살인사건들이 현실과 영화를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벌어진다며 그 영화들을 검열하고 공격한다. <검열>은 그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결국 자신의 트라우마에 짓눌려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 검열관의 이야기다. 이러한 매력적인 소재를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만든 영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화면비를 통해 현실과 가상 사이를 구분해가며 나름의 개성을 지닌 결말로 향한다는 점에서 준수한 장르영화였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가능한 영역 안에서 장르적 쾌감을 뽑아내는, 예상보다 더욱 정석적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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