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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n 28. 2021

<젠더레이션> 모니카 트로이트 2021

 <젠더레이션> 모니카 트로이트가 2000 제작한 영화 <젠더너츠> 속편이다. <젠더너츠> Gender Astronaut 합성어로, 젠더를 우주비행사처럼 과감하고 용감하게 탐험하는 이들을 지칭한다. 트로이트는 21세기  샌프란시스코에 살며 활동하는 다양한 퀴어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들의 삶과 공동체를 담아낸다. 샌프란시스코의 퀴어 공동체는 다양한 활동을 벌이며 젠더이분법과 성적지향, 가족제도 등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성노동자, 포르노 배우, 여성학/젠더학을 연구하는 학자, 드랙 아티스트, 비디오 아티스트, 사진작가, 이벤트 기획자  다양한 직업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은  생활한다. 이들의 활동,  나아가 존재 자체는 젠더의 성질이 이분법이 아닌 스펙트럼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 <젠더레이션> <젠더너츠> 출연했던 이들의 20 후를 담아낸다.  사이 샌프란시스코는 많은 것이 변화했다. IT 기업들의 등장으로 인해 ‘회색빛건물에 사는 개발자들이 대거 이주해왔고,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퀴어 공동체는 사실상 해체되었다. 트럼프 정권의 퀴어혐오적 정책들은 이들의 삶을 더욱 어려운 곳으로 몰아간다. 나이든 퀴어들은 어떻게 현재를 살아가고 있을까? 이들은 여전히 ‘젠더너츠일까? 트로이트는 이들을 ‘젠더레이션(Gender+Generation)’으로 부르며 샌프란시스코를 다시 찾는다.      

 <젠더레이션>의 주요 등장인물은 네 명이다. 트랜스젠더, 페미니즘, 퀴어에 대한 역사적, 철학적 연구를 통해 유명해진 학자 수잔 스트라이커, 지미 핸드릭스와 작업하기도 했던 사운드 엔지니어이자 퀴어 이론가 샌디 스톤, 성노동자이자 섹스 포지티브 운동가인 애니 스프링클, 퀴어 이벤트 기획자였던 스태퍼드. <젠더너츠>에도 출연했던 이들은 새로운 성취를 통해 이름을 알리거나, 당시와는 다른 방식의 삶을 택해 살아가고 있다.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퀴어의 상징과도 같았던 무지갯빛 도시 샌프란시스코는 IT 업계의 부흥과 함께 테크브로들이 거주하며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한 회색 도시가 되었으며, 당시 이들과 함께 퀴어 공동체를 이루던 친구이자 동료, 이웃들은 한둘씩 도시를 떠났다. 여전히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어느덧 50~60대의 중·노년이 되었다. 이들의 삶은 당연히 과거와 같지 않다. 수잔 스트라이커는 학계에서의 성취와 명성으로 인해 다양한 학회에 참가하고 강연을 진행한다. 샌디 스톤은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퀴어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하려 한다. 애니 스프링클은 에코-섹슈얼리티 개념을 통해 섹슈얼리티와 환경운동을 결합한 형태의 운동에 뛰어들었다. 트랜지션을 마친 스태퍼드는 이사회사를 운영하며 노후를 대비한다.     

 이들의 삶은 각자의 방향으로 뻗어 나간다. 영화에 잠시 출연한 다른 퀴어들 또한 자신의 삶을 이어간다. 오바마에서 트럼프라는 미국 정치사회의 급격한 우경화,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도시 샌프란시스코 자체의 변화 등은 이들의 삶을 20년 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미디어와 가상공간을 통해 업무, 만남, 심지어 섹스까지 가능해진 지금의 기술적 발전은 이들의 젠더-유동적인 삶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다. 이러한 외적인 변화는 단순히 이들이 생활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집값이나 사회문제에 관련된 것이 아니다. “자연은 에로틱”하다며 에코-섹슈얼리티를 주장하는 애니 스프링클의 모습은 지난 몇 년간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화재들에서 비롯된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우경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노후를 대비해야 할 상황에 놓인 스태퍼드는 돈을 저축할 수 있는 직업을 택한다. 그는 또한 그러한 직업의 선택이 ‘정상적인 것’인 것만큼 자신의 트랜지션 또한 ‘정상적인 것’이라 말한다. 분리주의 레즈비언을 자청하던 샌디 스톤은 그와 비슷한 성향의 남성을 만나 사랑하게 되며 자신의 성적지향이 드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움직이는 것임을 파악한다. 유명한 퀴어 이론가인 그는 자신이 그런 상황을 겪는 것이 당황스러웠다고 회고한다. 조금 뒤의 장면에서 그는 "내 핵가족이에요"라며 자신의 가족을 소개한다. 여러 번의 결혼과 연애를 거듭한 그는 정자·난자 기증을 통해 여러 퀴어 커플 사이에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가능해졌으며, 느슨한 혈연관계인 이들을 '핵가족'이라 정의한다. 핵가족의 기존 정의가 부모와 자식이라는 단출한 구성의 가족을 뜻했다면, 그가 말하는 핵가족은 부모-자식이라는 틀을 병렬적으로 확장해나간 결과물과 같다. 샌디 스톤의 핵가족은 ‘대가족’ 혹은 소위 ‘대안가족’이라 불리는 형태의 것과는 구분된다.     

 이들의 삶은 대부분의 사람이 지닌 기본적인 삶의 방식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직업을 가져 생계를 유지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이루어 살아간다. <젠더너츠>에 묘사된 열정적이며 도발적인 삶 - ‘Gendernauts’가 ‘Gender Nuts’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을 떠올려보자 - 은 2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며 주름과 흰머리로 채워진 안정적인 삶으로 옮겨간다. 다만 이들의 현재가 20년 전보다 덜 열정적이라거나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젠더이분법으로 회귀하려는 샌프란시코에서 유동적인 젠더 스펙트럼을 삶의 밑바탕으로 유지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누군가의 롤모델이 된다. 수잔 스트라이커처럼 자신의 영역에서 거대한 성취를 이루거나 스태퍼드처럼 평범한 직업을 택해 일상을 이어가거나,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 앞에서 이들은 여전히 퀴어의 삶을 개척하는 ‘젠더너츠’로서 살아간다. 영화 속 인터뷰에서 이들은 또 다른 20년 뒤를 이야기한다. 모니카 트로이트의 카메라는 자신의 우정과 애정을 듬뿍 담은 시선으로 이들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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