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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l 04. 2021

<인 더 하이츠> 존 추 2020

 <인 더 하이츠>는 최근 <모아나>의 음악에 참여하거나 <메리 포핀스 리턴즈> 등 뮤지컬 영화에 출연하는 등 할리우드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뮤지컬 스타 란 미누엘 미란다가 직접 각본, 연기, 연출 등을 맡은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뮤지컬은 그가 대학교 시절 완성한 단막극을 발전시켜 2008년부터는 브로드웨이에서 1,200회 이상 무대를 올린 대형 공연이며, 토니상에서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영화의 연출은 <스텝업> 시리즈를 연출, 제작했고 <지. 아이. 조 2>,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나우 유 씨 미 2> 등의 작품을 연출하기도 했던 존 추가 맡았다. 영화는 고향인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아버지가 운영하던 상점을 다시 열고자 하는 우스나비(안소니 라모스)와 그의 주변 친구인 바네사(멜리사 바레사), 베니(코리 호킨스), 니나(레슬리 그레이스)의 이야기를 담는다. 중남미 이민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인 뉴욕 워싱턴 하이츠를 배경으로 삼은만큼, 각각 <브루클린 나인 나인>과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등에서 활약한 스테파니 베아트리즈와 다샤 폴란코 등 낯익은 중남미계 배우들도 대거 출연한다. 란 미누엘 미란다 또한 빙수를 판매하는 상인으로 출연한다.

 영화는 란 미누엘 미란다의 또 다른 대형 히트작인 <해밀턴>이 힙합 뮤지컬을 표방하고 있는 것처럼, <인 더 하이츠>는 중남미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워싱턴 하이츠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라틴 팝에 기반한 음악을 선보인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In The Heihts’는 라틴리듬을 기반으로 스토리텔링적인 랩이 가미된 곡이다. 바네사가 일하는 미용실 장면에서 등장하는 ‘No Me Diga’나 후반부에 등장하는 ‘Carnival Del Barrio’처럼 중남미의 음악하면 떠오르는 익숙한 악기들과 리듬, 가창법을 활용한 곡도 대거 등장한다. 살사, 룸바, 자이브, 탱고 등 중남미의 춤이 힙합, 본 브레이킹, 발레 등 다양한 장르와 결합된 안무도 계속하여 등장한다. 물론 ‘When The Sun Goes Down’처럼 인물들의 감정을 실어 나르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뮤지컬 같은 음악도 등장한다. 라틴 팝을 기반으로 다채롭게 꾸며진 영화의 음악과 안무는 142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

 즉 <인 더 하이츠>의 문제는 142분의 러닝타임을 견뎌야 한다는 점이다. 존 추의 이전 영화들이 그러하듯, 관객을 홀려보려고 작정한 듯한 화려한 시퀀스들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장면들은 지루하기만 하다. 그가 연출한 <스텝업> 2, 3편에서 인물들이 춤추지 않는 장면들, <나우 유 씨 미 2>의 마술사 도둑들이 CG의 힘을 빌린 트릭을 선보이지 않는 장면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거대한 파티들을 제외한 장면들을 떠올려보자. 존 추는 음악적 리듬이 가미된 스펙터클을 만들어내는 것에는 어느 정도 노하우를 갖춘 감독이지만, 그 밖의 것에서는 항상 부족함을 보여주었다. <인 더 하이츠>는 그러한 단점이 더욱 강화된다. 원작 뮤지컬의 스코어를 거의 그대로 가져온 음악과 무대를 벗어나 실제 워싱턴 하이츠를 배경으로 삼은 대형 퍼포먼스들은 나름의 즐거움을 주지만 그것뿐이다. 영화는 원작 뮤지컬에서 이야기를 끌어나가던 8개의 스코어를 러닝타임 등의 문제로 빼버렸지만, 그 구멍을 채울 다른 요소를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했다. 덕분에 네 명의 주요 인물의 이야기는 끝없이 흘러나오는 음악 속에서 생략되고, 감정적인 비약을 겪는다. 가령 우스나비와 바네사가 클럽에서 겪은 갈등은 이렇다 할 해소 과정 없이 해소된다. 다른 예를 꼽자면, 영화화 과정에서 삭제된 스코어 중 대다수는 니나의 아버지이자 워싱턴 하이츠에서 택시회사를 운영하는 인물인 케빈(지미 스미스)의 이야기가 담긴 것이었다. 때문에 니나와 케빈 사이의 갈등은 영화를 절정으로 끌어가기 위해, 혹은 영화를 끝내기 위해 몇몇 대사를 통해 등장하고 해소된다. 

 <인 더 하이츠>의 가장 큰 패착은 ‘라틴 프라이드’를 주장하는 원작의 주제가 할리우드 대작 뮤지컬 영화로 각색되며 퇴색되었다는 점이다.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에서 활약하는 중남미계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고 이들의 노래와 몸짓으로 채워진 영화이지만, 도미니카 공화국, 멕시코, 쿠바, 코스타리카, 푸에트로리코 등의 국기를 흔들며 춤추는 것 이외엔 무엇도 하지 않는다. 이민자라는 정체성을 극의 가장 중요한 소재로 끌어오지만, 정작 이민자 1세대와 2세대 사이의 갈등인 니나와 케빈의 이야기는 영화화 과정에서 거의 삭제되었다. 폭염 속에서 정전이 벌어지는, 영화의 절정부에서 원작 뮤지컬 속 폭동 묘사가 삭제되기도 했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영화는 자막으로 표기되는 기온으로만 폭염을 묘사하고 있다. 극 중 인물들은 전혀 더워 보이지 않는다.) 물론 스탠포드 대학을 다니며 니나가 겪은 인종차별적 사건이라던가, 다운타운으로 이사하려는 바네사가 겪는 문제, 우스나비의 사촌동생인 소니가 그린카드를 받지 못해 여러 활동의 제약을 받는 상황이라는 것 등이 묘사되지만, 대부분은 부차적인 것으로 다뤄진다. 다시 말해, 그러한 요소들은 마치 영화가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잠시 삽입된 것처럼 다뤄진다. 각기 다른 국가에서 뉴욕 워싱턴 하이츠로 온 이민자들의 삶과 목소리는 오로지 음악 속에서만 종합될 뿐, 작품의 이야기 속에서 하나로 묶이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 존 추가 참여한 이전 영화들도 이러했다. <스텝업4: 레볼루션>에서 재개발 문제는 플래시몹으로 희석되었고,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서 아시안의 삶은 절대 아시안으로 대표될 수 없는 ‘슈퍼 리치’들의 파티로 가려졌다. 그 또한 아시아계 이민자로써 미국에서 살아가는 인물이지만, <인 더 하이츠>를 포함한 그의 작품들이 취하는 포지션은 안정성을 추구하는 보수적인 경향을 띄고 있다. 트럼프 시기를 통과하며 제작된 이번 영화가 특히 그러하다. 오바마 시기에 제작된 뮤지컬과 트럼프 시기에 제작된 영화 사이의 차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결국 완성된 영화는 안정적으로 자본을 회수하기 위해 더 많은 이들에게 안정적으로 어필하기 위한 선택의 결과물로 느껴질 뿐이다.



*국내 개봉판의 가장 큰 약점은 한글자막이다. Poweless나 I'm home 같은 말들을 그대로 음차하여 적어두거나, 맥락과 전혀 맞지 않은 번역이 난무하고 생략도 잦다. 랩 위주의 가사를 번역하는 것이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자막에서까지 라임을 맞추는 것보단 제대로 번역하는 것이 우선시됐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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