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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l 30. 2021

어트랙션에 대한 영화적 각색

<정글 크루즈> 자움 콜렛 세라 2021

*스포일러 포함


 탐험가의 딸 릴리(에밀리 블런트)는 모든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전해지는 전설 속 꽃 ‘달의 눈물’을 찾으려 한다. 런던의 학회에서 꽃을 찾을 수 있는 열쇠인 화살촉을 훔쳐 달아난 그는 동생 맥그리거(잭 화이트홀)와 함께 아마존으로 향한다. 릴리와 맥그리거는 우여곡절 끝에 그들을 안내해 줄 선장 프랭크(드웨인 존슨)를 만나게 되고, 이들은 함께 모험을 떠난다. 전형적인 어드밴처 영화의 이야기를 답습하는 듯한 디즈니의 새로운 프랜차이즈 <정글 크루즈>는 <캐리비안의 해적>이나 <투모로우 랜드>처럼 디즈니랜드의 어트랙션을 원작으로 삼는다. 어트랙션은 아마존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의 정글 등을 뒤섞어 놓은 형태이지만, 영화는 아마존을 명확한 배경으로 삼는다. 스페인 정복자 아기레(에드가 라미레즈)의 이야기를 등장시키고, 1차 대전 발발 직후를 배경으로 삼아 독일계 왕자 요아힘(제시 플레먼스)을 악역으로 선보이는 것 또한 제국주의 시기 아마존을 배경으로 삼았기 때문일 것이다.

 배경이 아마존으로 설정되었기에 흥미로운 지점들이 몇 등장한다. 프랭크를 소개하는 영화의 초반 시퀀스에서, 그는 자신의 낡은 배로 관광객들에게 정글을 안내한다. 그가 안내하는 정글은 위험천만하다. 강가에 넘어진 나무가 배 위를 스쳐 지나가고, 거대한 뱀이나 식인종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중엔 하마도 등장한다. 프랭크는 인간을 잡아먹은 하마라고 설명하지만, 관광객 중 한 소녀는 하마는 아마존에 사는 동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실 프랭크의 배에 위협적으로 접근한 동물 중 다수는 프랭크가 만들어낸 장치이거나 그가 길들인 동물들이며, 식인종은 프랭크와 계약한 원주민이다. <정글 크루즈>가 디즈니랜드 어트랙션에서 출발한 영화임을 떠올리면 아마존에서 일종의 정글 크루즈 어트랙션을 운영하는 프랭크의 모습은 자연스러운 등장처럼 보인다. 여기서 잠시 <캐리비안의 해적>과 <투모로우 랜드>를 떠올려보자. 어트랙션 하나를 원작으로 삼은 <캐리비안 해적>은 스스로가 어트랙션임을 드러내기보단 잭 스패로우와 그의 동료들의 이야기를 블랙펄이라는 배경에 덕지덕지 붙여 다섯 편의 영화를 뽑아낸 사례다. <투모로우 랜드>는 어트랙션 하나가 아니라 디즈니랜드 내에 미래 세계를 표방하는 구역의 이름이기에, 비주얼적인 콘셉트를 차용해온 정도에 그친다. 그에 비하면 <정글 크루즈>의 초반 시퀀스는 유튜브에 ‘Jungle Cruise Ride’를 검색하면 나오는 실제 어트랙션 탑승 영상과 유사하게 구성되어 있다. 영화는 여기에 마술사의 비법을 까발리듯 프랭크가 장치들을 작동시키는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때문에 <정글 크루즈>는 영화의 시작부터 영화 스스로가 어트랙션임을 자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느낌이 프랭크를 소개하는 장면 이후에도 이어지는 것은 그가 계속 거짓말을 일삼기 때문이다. 프랭크가 자신을 선박회사 사장으로 속여 소개했다가 릴리에게 들통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이 장면에서 프랭크는 릴리를 다시 한번 속이기 위해 재규어를 동원한다. 프랭크를 무시하고 가려는 릴리 앞에 재규어가 난입하고, 프랭크는 그것과 싸워 제압한다. 후에 밝혀지는 것이지만, 재규어는 프랭크의 선박에 함께 머무는 길들여진 동물이었다. 이러한 거짓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계속 이어진다. 릴리 일행을 사로잡은 식인종 무리는 앞서 등장했던 프랭크와 계약한 이들이었으며, 그들의 습격은 프랭크가 릴리의 화살촉을 얻어내기 위한 계략이었다. 프랭크의 거짓들은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고 그것을 쾌감의 동력으로 삼는 어트랙션의 성질과 닮아 있다. 즉 릴리는 생전 처음 겪는 모험의 여정 속으로 뛰어들었다 생각하지만, 그것의 절반가량은 프랭크가 이미 계획해둔 장치 속에서의 안전한 여정이다. 더 나아가 프랭크가 400년 전 아기레와 함께 아마존을 찾은 스페인 정복자의 일원이었으며, 그가 아기레를 배신하고 다른 일행을 정글의 저주로 봉인한 채 죽지 않는 몸을 지니고 살아왔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지는 순간, 위험을 무릅쓰고 전설을 확인하기 위해 아마존을 찾은 릴리의 여정은 안전한 어트랙션으로의 탑승에 가까워진다. 릴리를 위협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정글과 저주라기보단 그를 뒤쫓는 탐욕스러운 요하임 왕자다. 

 물론 정글이 릴리 일행의 목숨을 위협하는 경우도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급류 끝에 위치한 폭포 정도뿐이며, 프랭크의 낡은 배는 물리학 법칙을 가볍게 무시하고 급류를 거슬러 생존한다. 위기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어트랙션 그 자체의 모방에 가까운) 4DX 포맷으로 영화를 보고 있음에도 이렇다 할 위협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정글 크루즈>가 PG-13 등급으로 기획되었기 때문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인디아나 존스>나 <미이라> 같은 앞선 모험 영화, 동일하게 어트랙션이 원작인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속에서 주인공을 노리는 다양한 위협들에 비하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위협은 전혀 위협적이지 못하다. 프랭크가 저주가 풀리기 전까진 죽지 않는 몸이라는 설정이 등장하는 순간, 그의 역할은 릴리의 조력자에서 어트랙션의 안전장치로 완전히 변화한다. 

 이러한 지점 때문에 <정글 크루즈>가 지루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글 크루즈>는 어트랙션 특유의 위험을 쾌감의 동력으로 삼으나 위험 자체로부터는 절대적으로 안전해야 한다는 성질을 따른다. 단순히 정글을 투어 하는 콘셉트의 원작 어트랙션 속에서 러닝타임 127분의 이야기와 릴리라는 캐릭터를 뽑아낼 수 없기에 덧붙여진 전설, 저주, 악역은 이 영화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중심이라기보단, 어트랙션을 영화로 각색하기 위해 덧붙여진 부차적인 재료에 불과하다. <정글 크루즈>의 비교대상은 앞선 어드벤처 영화들보단 차라리 MCU의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 가깝다. 영화의 빌런 미스테리오는 VFX 전문가로 드론을 사용한 여러 이펙트를 통해 퍼포먼스 캡처 슈트를 입은 자신을 ‘미스테리오’라는 빌런으로 만들어낸다. 영화는 그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블록버스터 영화 중 퍼포먼스 캡처 슈트를 직접 드러낸 아마도 유일한 경우가 아니었을까? 다시 <정글 크루즈>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파 프롬 홈>에서 VFX를 위한 수단을 과감히 드러내고 그것을 빌런의 동력으로 삼는다는 점은 <정글 크루즈>가 어트랙션에 대해서 한 것과 적지 않은 유사성을 지닌다. 두 영화는 스스로가 작동하는 방식을 감추고 관객들을 속이는 마술사가 되기보단, 자신의 트릭이 모두 공개한 뒤에도 자신만만하게 재밌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 말하는 어트랙션 제작자에 가깝다. 두 영화는 모두 2018년 촬영이 완료되었지만, 2019년 마틴 스콜세지가 MCU에 대해 했던 말에 대한 디즈니의 대답 같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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