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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ug 05. 2021

액션 없는 고어 액션 블록버스터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제임스 건 2021

*스포일러 포함


 데이빗 예이어의 실패작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DCEU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었지만, <원더우먼>이나 <아쿠아맨> 등의 흥행으로 DC는 그럭저럭 명줄을 이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소셜미디어에서의 아동/여성혐오적 발언으로 MCU에서 퇴출(되었다가 결국 복귀)된 제임스 건의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최악의 평가를 받았던 전작을 사실상 리부트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물론 그 사이 개봉한 <버즈 오브 프레이: 할리퀸의 황홀한 해방>이 나쁘지 않았던 평가에 비해 팬데믹 초기와 맞물려 저조한 흥행성적을 내었고, 그 때문에 인기 자체는 대단한 할리 퀸 캐릭터를 빠르게 복귀시키고자 한 선택일 수도 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도 유일하게 관객들의 기억에 남은 캐릭터는 할리퀸이었으니까. 

 영화는 ‘수어사이드 스쿼드’ 프로젝트를 지휘하는 아만다 윌러 국장(비올라 데이비스)가 전작과는 다른 멤버들을 모집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만다 윌러 밑에서 일하는 군인 릭 플래그 대령(조엘 킨나만)이나 할리퀸(마고 로비), 캡틴 무베랑(제이 코트니) 등 전작의 생존자들과 함께, 블러드스포트(이드리스 엘바), 피스메이커(존 시나), 랫캐처(다니엘라 멜키오르), 킹샤크(실버스타 스탤론), 폴카-닷 맨(데이빗 다스트말치안), 서번트(마이클 루커), 위즐(숀 건) 등이 동일한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남미의 작은 섬나라 코르토 말테즈에서 씽커(피터 카팔디)가 비밀리에 실험을 진행중인 건물 요툰하임을 파괴하고 실험의 흔적을 없애는 것이 이들의 미션. 얼떨결에 모인 이들은 함께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잠시 감독 제임스 건의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제임스 건은 로이드 카우프만이 설립한 트로마에서 오랜 시간 시나리오 작가로 일했으며, 이후 <스쿠비 두> 시리즈나 잭 스나이더의 <새벽의 저주> 등의 각본을 쓰며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들을 다루기 시작했다. 그의 첫 연출작은 로이드 카우프만과의 공동연출작인 <트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트로마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이후 <슬리더>와 <슈퍼>처럼 크리처나 슈퍼히어로 등 특정 장르를 자신의 방식대로 변조하는 작품들을 내놓았다. 그 이후 그가 맡은 첫 블록버스터 영화가 MCU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모두가 칭찬한 것은 ‘B급 감성’이라 얼버무려져 표현되는, 딱히 뭐라고 정의되진 않지만 적당히 폭력적이면서도 팝컬처의 과거를 끌어오고, 독특한 리듬의 유머를 사용하는 것 정도의 특징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그것만으로 충분한 작품이었으며, 스타로드나 로켓, 그루트, 가모라 등 대부분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적절한 방식이었다. 

 생각해보면 제임스 건이 연출한 작품 중 “재밌다”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작품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뿐이다. <슬리더>는 생각보다 새로운 구석이 없었고, <슈퍼>는 주연인 레인 윌슨과 엘리엇 페이지에게 많은 부분 기대고 있는 작품이다. (<트로미오와 줄리엣>은 못 봤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스 Vol. 2>는 지겹도록 반복되는 살부서사를 다시 한번 반복할 뿐이었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디즈니스럽게 매끈해진 그의 스타일이 반쯤 고삐가 풀린 상태로 날뛰고 있는 영화임에도, 그가 원안으로 참여한 트로마의 최근작 <돌연변이 대격돌>보다 즐겁지 못하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대형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슈퍼히어로 장르 영화 중 가장 제멋대로 만든 영화라는 점에는 대부분의 관객이 동의할 것이다. 이름이 붙은 등장인물의 80% 정도는 사망하고, 그중엔 마이클 루커처럼 나름의 인지도가 있는 배우의 캐릭터가 포함된다. 심지어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두 팀 중 한 팀이 거의 전멸해버린다. 이들의 죽음은 CG와 여러 특수효과의 힘을 빌려 다양한 방식의 고어 장면으로 표현된다. 이들뿐 아니라 블러드스포트와 피스메이커가 경쟁하듯 죽이는 코르토 말테즈의 반군과 군인도 마찬가지다. 

 다시 생각해보니 제임스 건의 전작들에 대해선 차라리 ‘호불호가 갈린다’ 정도로 표현하는 게 그래도 맞는 것 같다. 어쨌든 누군가는 그의 작품을 즐겼으니까. 다만 제임스 건은 액션을 제대로 찍을 줄 모른다는 점은 확실하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액션은 유혈낭자한 고어 효과를 통해 자신의 빈약함을 감추고 있다. 무엇보다 액션의 동장이 제대로 등장하는 장면은 할리퀸의 탈출 장면뿐이었으며, 그마저도 <버즈 오브 프레이>의 경찰서 장면의 유혈낭자한 버전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액션은 움직임은 없고 결과만 있다. 릭 플래그가 이끄는 오합지졸 1팀이 몰살당하는 영화의 초반 액션을 보자. 이 장면의 액션은 총을 쏘는 숏과 그것에 맞는 숏, 바주카를 쏘고 폭발이 일어나는 숏의 연쇄인 수준이다. 이는 영화 내내 이어진다. 물론 영화의 메인 캐릭터인 블러드스포트와 피스메이커, 폴카-닷 맨이 총이나 화살 등 발사하는 무기를 주로 사용하며 랫 캐처는 CG로 제작된 쥐떼를 사용하고 킹샤크의 둔한 몸은 제대로 된 격투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라 변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방식의 총기액션이 발달을 거듭해온 와중에, 유혈낭자하고 고어한 액션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액션의 과정 대부분을 간단하게 생략하고 이를 ‘B급 감성’으로 포장하는 것은 실패에 가깝다. 트로마의 영화들은 주먹을 휘두르기라도 했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액션은 두 덩치 캐릭터의 허세와 고어를 보여주기 위해 삭제되어버린 수준이다. 

 그렇다고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캐릭터들이 잘 구성되었냐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할리퀸은 두 편의 전작에서 구축된 인물상을 오락가락하고 있으며, 기묘한 쌍을 이루는 피스메이커와 블러드스포트의 허세 가득한 캐릭터는 존 시나의 프로레슬링 속 캐릭터를 적당히 옮겨온 것과 같다. 영화 곳곳에 캐릭터가 자신의 전사를 설명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한국 관객들이 한국의 대형 상업영화에서 지적하던 것과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등장한다.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랫캐처의 플래시백 장면은 <부산행>이나 <곡성>에서나 보던 그런 장면과 거의 유사하다. 오히려 전작에 비해 비중이 커진 릭 플래그나 얼핏 <캐빈 인 더 우즈>의 비밀조직을 연상시키는 아만다 윌러의 부하들이 소소한 재미를 안겨준다. 캐릭터 사이의 관계도 그것을 구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몇몇 대사로 뭉개고 넘어갈 뿐이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잔인한 버전이라는 평가도 동의하기 어렵다. 조니 캐시의 “Folsom Prison Blues”가 흘러나오며 시작되는 것이나 빌런 혹은 그에 가까운 캐릭터들이 팀으로 모여 결과적으로 대의를 위해 함께 싸운다는 지점에서 어딘가 닮아 있지만, 그뿐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그간 MCU가 만들어온 슈퍼히어로 영화나 디즈니 등 대형 스튜디오의 액션 어드벤처 영화의 리듬을 따르다 그것을 배반하는 순간에서 찾아오는 독특한 유머의 감각이 있었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그런 것이 없다. 이 영화는 제임스 건이 그의 추종자들에게 “너희들이 바라던 모습을 보여줄게!”라고 호언장담하며 액션이 생략된 고어 액션을 선보이고, 이들이 빌런 캐릭터라는 점을 빌어 상스러운 농담을 마구잡이로 내뱉고 있을 뿐이다. 그의 가장 충실한 옹호자인 데이브 바티스타는 “제임스 건은 누구도 해치지 않을 영혼이며 그저 쇼킹하기만을 위하여 징그럽고... 끔찍한 농담들을 했다”라고 그를 옹호했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딱 그 정도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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