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ug 06. 2021

강렬한 감정의 스펙트럼과 덜컹이는 시점 전환

<우리, 둘> 필리포 메네게티 2019

 마도(마틴 슈발리에)와 니나(바바라 수코바)는 20년 넘게 연인으로 지내 온 레즈비언 커플이다. 노년의 나이에 접어든 둘은 서로의 앞집에서 살고 있다. 니나는 가족이 없지만, 마도는 결혼생활 끝에 딸 앤(레아 드루케)와 아들 프레드릭(제롬 바랑프랭)을 두고 있다. 니나는 마도에게 함께 로마로 떠나 살자고 제안한다. 두 사람은 집을 팔고 함께 떠나려 하지만, 마도가 아직 가족에게 커밍아웃하지 못한 상황이다. 니나는 마도에게 커밍아웃을 종용하지만, 마도는 결국 가족들에게 커밍아웃하지 못한다. 이를 알고 두 사람은 크게 다투고, 며칠 지나지 않아 마도가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병으로 인해 말도 못 하고 몸도 가누지 못한 마도에게, 니나는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쉽게 접근하지도 못한다. 니나는 마도의 가족과 간병인 몰래 연인을 보기 위해 몰래 마도의 집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노년 여성 퀴어의 삶을 다룬 <우리, 둘>은 예상 밖의 선택을 한다. 영화는 마도와 니나, 마도와 가족, 니나와 마도의 가족 사이의 갈등을 보여주기 위해 스릴러의 방식을 택한다. 

 <우리, 둘>은 오프닝 시퀀스부터 심리 스릴러에 가까운 장면을 보여준다. 어린 소녀 둘이 공원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중 한 사람이 어딘가로 사라진다. 술래인 소녀는 친구를 찾으려 하지만 그가 친구의 이름을 외치려 할 때마다 들려오는 것은 까마귀 소리뿐이다. 이 장면이 마도나 니나 둘 중 누구의 과거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잃게 되는 장면을 악몽에 가깝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 이후에도 비슷한 톤을 이어간다. 마도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초반부는 연인과 가족으로부터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리는 그의 정동을 보여주는 숏들로 가득하다. 마도와 니나가 함께 밤을 보내는 장면은 벽, 문, 거울 등으로 겹겹이 프레이밍 되어 있어 이들을 둘러싼 구속을 보여준다. 마도의 죽은 남편이 남긴 낡은 시계를 클로즈업한 숏이나 천진난만한 마도의 손자를 보여주는 장면 등은 그를 둘러싼 압박감 자체를 표현한다. 프레드릭은 마도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도는 쓰러지고, 커밍아웃은 불가능해진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마도를 니나가 발견하는 장면부터 영화는 니나의 시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마도의 심리 스릴러로 시작한 영화는 이 순간 니나를 중심으로 한 주거침입 스릴러가 된다. 흥미로운 점은 주거침입을 당하는 이들의 시점이 아니라 그것을 시도하는 이의 시점을 취한다는 점이다. 니나가 밤중에 마도의 집으로 몰래 진입하려는 장면과 니나의 집 현관 문구멍으로 마도의 집을 관찰하는 장면이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이는 마도를 대신해 커밍아웃할 수도 없고 이웃 이상의 관계로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한 니나의 절박한 처지를 강조한다. 그 과정에서 니나는 마도의 간병인을 쫓아내려 하기도 하고, 요양원에 들어간 마도를 쫓아가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두 사림이 처음 만난 로마라는 이상적 장소는 더욱 멀어져 간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이상적 공간이 정말로 그렇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야 한다는 설득 대신, 이들이 충분히 지금의 공간에서 행복하지 못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앤과 프레드릭은 니나를 침입자로 여기지만 니나의 입장에선 이들이 그와 마도 사이의 관계를 침입한 이들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노년 레즈비엔 커플에게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상황들을 스릴러 장르의 형식을 빌려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의 만듦새가 안정적이라는 점에서 <우리, 둘>은 충분한 만족감을 준다.

 하지만 마도의 시점을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갈 수는 없었을까? 혹은 니나의 시점을 계속 유지하는 방식은 어려웠던 것일까? 마도의 심리 스릴러에서 니나의 주거침입 스릴러로의 전환은 다소 덜컹거리고, 어느 순간 일관성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의 마도는 애정의 주체라기보단 니나와 가족 사이의 쟁탈전에 휘말려버린 객체에 가깝게 다뤄진다. 말도 못 하고 거동도 불편해진 마도의 감정을 잡아내기 위한 클로즈업은 니나의 행동에 대한 리액션을 담아낼 뿐이다. 커밍아웃, 이사, 가족에 대한 감정적 해소 등 마도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마도가 아니라 니나가 해결해야 될 문제들로 넘겨진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충분히 다룰 수 있다. 하지만, 영화가 마도에서 니나에게로 중심을 옮겨오는 과정에서 해결의 주체가 변화하고,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폭력적인 상황들을 마냥 긍정하긴 어려워 보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반복을 긍정해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