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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ug 12. 2021

게임 기반 영화의 새로운 시도

<프리 가이> 숀 레비 2021

*스포일러 포함


프리 시티의 은행원 가이(라이언 레이놀즈)는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프리 시티에는 선글라스를 쓴 사람들이 있는데, 시민들은 이들을 ‘히어로’라 부른다. 어느 날 가이는 자신이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길거리에서 만나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고, 은행을 털러 온 ‘히어로’의 선글라스를 빼앗는다. 선글라스를 낀 그의 시야엔 원래 보이지 않던 게임 HUD 화면과 각종 아이템이 나타난다. 가이는 프리 시티의 시민도, 게임의 플레이어도 아닌 게임 내 NPC였다. 한편 길거리에서 우연히 가이를 만났던 ‘몰로토브 걸’ 밀리(조디 코머)는 게임 [프리 시티]를 개발/배급한 앤트완(타이카 와이티티)의 회사 수나미가 자신의 게임을 불법으로 도용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게임 속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는 함께 게임을 개발했던 동료이자 지금은 수나미에서 일하는 키스(조 키어리)와 함께 증거를 찾으려 노력한다. 그러던 중 NPC의 루틴을 벗어나 행동하는 가이의 존재가 알려지며 그와 힘을 합치게 된다.

 <프리 가이>는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 넷플릭스 오리지널 <기묘한 이야기> 등을 연출/제작한 숀 레비의 신작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 <엑스맨> 2, 3편, <어벤져스> 등의 각본을 맡았던 잭 펜이 각본을 맡았고, 라이언 레이놀즈가 제작을 겸했다. <프리 가이>는 큰 틀에서 보면 <박물관이 살아있다>와 유사한 설정을 지녔다. <박물관이 살아있다> 속 캐릭터들은 박물관 내의 NPC나 다름없다. 이들은 자신의 캐릭터가 속한 시기의 방식대로 행동하고, 매일 밤 그것을 반복한다. 이들의 삶은 변화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성장하는 것은 박물관에 전시된 밀랍인형 캐릭터들이 아니라 야간 경비원인 래리다. 반면 <프리 가이>의 가이는 성장한다. 그는 밀리와 키스가 만들어낸 상호작용 가능하며 다양한 분기를 지닌 채 성장하는 AI다. 가이의 정체를 알게 된 밀리와 키스는 그를 ‘인공지능 생명체’라 부르기도 한다. [레드 데드 리뎀션 2]와 같은 게임을 떠올려보자. 게임 속 NPC들은 각자의 생활패턴을 지니고 있다. 게임 속 시간대에 따라 이들의 행동은 달라지며, 보안관, 농부, 카우보이 등 각자의 직업에 따라 다른 행동을 취한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은 게임 내 시간에 따라 동일하게 반복되는 루프에 속해 있으며, 플레이어가 이들을 죽여도 리스폰되어 다시 루프를 반복한다. 

 <프리 가이>는 이러한 게임 내 NPC들의 패턴을 적극적으로 끌어온다. 자유의지를 지닌 NPC라는, 아직은 구현 불가능한 설정과 이를 이미지로 보여주기 위해 사용된 스펙터클은 일종의 영화적 과장이라 볼 수 있지만, 영화가 그려내는 게임 [프리 시티] 내 NPC들의 행동과 이들을 대하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은 현실의 게임을 고스란히 가져온다. 또한 게임이 근본적으로 타임루프물의 성격을 지녔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이가 밀리에게 “레벨업부터 하고 와”라는 말을 들은 이후 등장하는 상대방을 죽이지 않고 레벨업하는 시퀀스는, 그가 죽음 이후에도 반복되는 루프 속에서 실력을 쌓고 레벨업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그러한 과정이 등장하기에 앞서 NPC로서 반복되는 삶을 보여주는 영화 초반부의 장면과 대비된다. 이는 NPC라는 존재를 제대로 등장시키지도 못한 <레디 플레이어 원>이나, NPC와 유사한 존재를 판타지 영화 속 악당들처럼 그려낸 <트론>, 혹은 게임 내 NPC의 존재를 단순히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것처럼 보여준 <주먹왕 랄프>와 <프리 가이>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이 밖에도 <프리 가이>가 [GTA] 시리즈나 [심즈], [포트나이트], [배틀그라운드], [오버워치], [포털], [하프라이프] 등 여러 게임에서 끌어온 요소들이 대거 등장한다. 물론 <레디 플레이어 원>이나 메타버스 개념을 적극적으로 끌어오려 한 <스페이스 잼: 새로운 시대>와 같은 사례처럼 게임이나 다양한 팝컬쳐 속 아이템들이 등장하는 것은 이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처럼 다가온다. <프리 가이>는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 게임을 막 시작한 뉴비들이 조작방식을 익힐 때의 어색한 모션을 배경에 집어넣기도 하고, 가이의 뒤로 지나가는 자동차의 색이 갑자기 바뀌기도 한다. 가이를 비롯한 이들이 선보이는 액션은 현실 기반의 영화들과는 다르다. 커멘드를 입력해야 움직이는 게임 내 캐릭터들처럼 가이를 비롯한 게임 내 캐릭터들의 액션은 자연스럽다기보단 단절된 동작들로 구성되어 있다. 카메라는 게임 플레이어의 3인칭 구도를 취하는 대신 비디오 게임에서 QTE(Quick Time Event, 게임 플레이 도중 특정 버튼을 누르라는 지시가 나타나며 제한된 시간 안에 그 버튼을 눌러야 하는 요소)가 등장할 때와 유사한 구도를 취한다. 또한 실제 활동하는 게임 유튜버와 스트리머들이 대거 등장하고, 앤트완의 대사로 유튜브와 트위치 등 게임 실황이 가장 활발하게 공유되는 플랫폼이 언급된다.

 영화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프리 가이>는 위에서 언급한 게임의 요소들을 영화적으로 제작한 뒤, 그것을 바탕으로 자유의지를 지닌 NPC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밀리와 키스의 게임이 앤트완의 수나미에 팔린 뒤 불법 도용되었다는 것이나, [프리 시티]가 밀리와 키스의 게임 속 AI 빌드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던가, 키스가 가이의 바탕이 되는 NPC 코드를 짤 때 그의 이상형을 밀리를 기반으로 했다는 것 등의 이야기들은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영화의 플롯들은 <프리 가이>가 완결성을 지닌 영화로 완성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일 뿐이다. <프리 가이>가 보여주는 이야기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게임플레이와 NPC의 존재를 다루는 방식이다. 영화 속에서, 그리고 게임 속에서 수많은 NPC들은 플레이어들에 의해 죽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한 유튜브 영상은 매일 60억 명의 NPC가 게임 속에서 죽어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NPC를 폭력적으로 대하는 게이머들의 폭력성이나 그것을 조장하는 게임 디자인 같은 것을 비판하는 것이 영화의 주된 목적은 아니다. 

 <프리 가이> 속 가이의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밀리와 키스가 NPC인 그의 하루 일과, 즉 가이가 속한 루프를 들여다보는 장면과, 앤트완에 의해 리셋된 가이가 밀리와의 키스를 통해 자신을 구성하는 알고리즘 코드 속의 과거를 되찾고 루프를 벗어나 수많은 분기들을 선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미지다. 극 중 밀리와 키스가 꿈꾸는 게임은 얼핏 [심즈]와 유사해 보이지만 게임 내 NPC가 플레이어 밑 다른 NPC와 상호작용하며 성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이 구현하려 했던 ‘자유의지를 지닌 NPC’는 [프리 시티]에서 의도치 않게 만들어졌다. 다분히 유토피아적인 상상이며, 영화 속 [프리 시티] 게임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것처럼 이와 같은 오픈월드/MMORPG 게임에선 ‘트롤’이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밀리와 키스가 트롤의 존재를 배제해버린 채 게임을 기획한 것, 혹은 영화 후반부에서야 등장하는 두 사람의 게임 속이 완전한 유토피아처럼 묘사된다는 점은 일종의 영화적 판타지다. 하지만 이들이 기획하려 한 것, 그것과 대치되는 결과물인 게임 [프리 시티], 그리고 영화가 이 둘을 보여주는 방식에 초점을 맞춰보자. 게임의 플레이어들이 연대하여 자본주의적 악당을 물리치고 그것의 유산을 물려받는 할리우드적 판타지인 <레디 플레이어 원>과는 달리, <프리 가이>에서 게임이라는 또 다른 현실(요즘에는 메타버스라 불리는 그것)을 구원하는 것은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플레이어가 아닌 AI 생명체라 불리는 NPC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가이와 그의 모습을 뒤틀어 제작된 다른 NPC 듀드의 대결은 엄청난 저작권 물량공세를 보여주었던 <레디 플레이어 원>의 클라이맥스와는 다른 방향을 지향한다. 물론 가이가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와 헐크의 주먹, 포털건 등을 사용하며 <어벤저스>와 <스타워즈> 테마가 울려 퍼지긴 하지만.

 정리하자면 영화 후반부에서야 등장하는 밀리와 키스의 게임과 앤트완의 [프리 시티]는 대부분의 MMORPG 게임이 겪는 두 가지 양상을 보여준다. <프리 가이>가 보여주는 게임 플레이 양상은 게임의 세계를 영화의 바탕으로 삼은 여러 영화들보단 박윤진 감독의 다큐멘터리 <내언니전지현과 나>에서 드러나는 [일랜시아]의 모습에 가깝다.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게임이라는 또 다른 현실이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라는 이분법으로 갈라서는 것도,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기 위해 찾는 도피처도 아님을 보여준다. <프리 가이>는 이를 NPC라는 다소 독특한 입장에 서서 보여준다. 이는 현실과 가상이라고 분리된 두 세계를 투 트랙으로 보여주는 서사가 아니다. NPC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프리 가이>는 또 다른 환경으로 존재하는 가상인 게임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레디 플레이어 원>이 두 주인공이 현실에서 나누는 키스로 끝마치는 것과는 달리, <프리 가이>는 밀리와 키스의 마지막 이후 가이와 그의 동료 버디(릴렐 호워리)의 포옹을 보여준다. 동일한 구도로 촬영된 두 모습은 극영화의 영역에서 현실과 가상이라는 이분법적 위계를 지워버리고 게이머가 게임 플레이할 때의 태도와 방식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내에서 가능한 소화해내려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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