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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Oct 13. 2021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후기


<프랑스> 브루노 뒤몽 2021

 <잔 다르크> 연작 이후 뒤몽의 첫 영화. 현재로 시간대를 옮긴 <프랑스>는 다소 미니멀하게 꾸려진 두 전작이 비해 큰 스케일을 선보인다. 주인공은 레아 세이두가 연기하는 스타 배우 못지 않은 인기를 구사하고 있는 TV 저널리스트 프랑스 드 뫼르, 영화 시작부터 마크롱 대통령에게 곤란한 질문을 던지며 다른 언론과 시민들의 이목을 끄는 그는 중동의 분쟁지역을 직접 취재하며 유명세를 이어간다. 파리, 중동 분쟁지역, 알프스 등을 바쁘게 오가는 영화는 추락과 재기를 반복하는 드 뫼르의 삶을 보여준다. 그의 삶은 연출된 뉴스의 연속이다. 그가 중동 분쟁지역을 취재하는 장면은 실재 벌어진 사건을 담아냄과 동시에 그것이 상당히 연출된 장면임을 보여준다. 취재 영상에 영화 주인공처럼 등장하는 드 뫼르의 모습은 그 스스로가 취재 영상의 주연이자 감독임을 증명하는 것만 같다. 이는 영화의 역사 중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뉴스릴이 영화의 한 장르로 생산되었음을 상기시킨다. 이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것은 취재 영상 이외의 장면들이다. <프랑스>에는 현장과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TV 뉴스 영상 뿐 아니라 드론이나 액션캠을 종종 사용한다. 드 뫼르의 취재진이 드론 폭격 지역에 가 있는 동안 폭격용 드론이 아닌 드론의 시선으로 촬영된 취재진이 화면에 등장하고, 드 뫼르의 남편과 아들이 해안도로를 따라 이동하던 중 사고가 나는 장면에 사용된 수많은 액션캠 숏들은 사고 자체를 잘 담아내는 것보다 카메라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만 같다. 더욱이 해당 장면이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것임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자동차 탑승 장면들의 스크린 프로세스는 종종 자동차라는 물리적인 벽을 무시해버린다. 누군가는 자동차의 문이 없는 것처럼 차에 들어오기도 하고, 분명 지붕이 있던 자동차의 지붕이 사라진 것만 같은 숏이 등장하기도 한다. 촬영상의 실수라기엔 너무나도 자주 반복되는 이 장면들은 드 뫼르가 영화처럼 연출해낸 취재영상 위로 <프랑스>라는 영화 자체를 겹쳐보이게끔 유도한다. 카메라를 무기이자 수익수단으로 사용하는 이 또한 자신을 대상으로 한 카메라들이 구성하는 시각장의 권력 앞에 무릎 꿇는다. 카메라로 성공한 그는 카메라로 인해 추락하고 카메라를 통해 재기한다. <프랑스>는 뒤몽의 근작들에 비해 스펙터클하다지만 여전히 (끈적거린다 느껴질 정도로) 느리게,  현대의 잔(Jeane)이자 시지프스인 드 뫼르를 쫓는다. 

<쓰촨의 신-신 극단> 치우지옹지옹 2021

 연극(경극)배우였던 감독의 아버지를 모델로 삼은 주인공 치우푸는 일곱 살 때부터 연기 해온 경력의 소유자다. 영화는 두 명의 저승사자가 막 죽음을 맞이한 그를 데리러 오는 것에서 시작한다. 저승으로 향하는 길에서 옛 동료를 만난 치우푸의 이야기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설명하는 간자막들과 함께 이어진다. 1920년대부터 중일전쟁, 국민당과 인민해방군의 내전을 거쳐 60년대에서 마무리되는 치우푸의 이야기는 연극적인 세트장과 다양한 무대장치가 동원된 화면을 통해 구현된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연극(경극)과 유사한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극 중 연극배우가 주인공이며 그가 저승에서 자신의 삶을 극으로 회고한다는 설정과 맞물려 소소한 재미를 준다. 다만 그것만으로 179분의 러닝타임을 시종일관 흥미롭게 이어가지는 못한다. 그 무엇보다 천카이커의 <패왕별희>를 연상시키는 영화의 서사는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의 흥미로움과 쉬지 않고 등장하는 풍자에도 불구하고 (물론 내가 중국어와 중국현대사의 맥락에 무지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에 집중하게 할 구심점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실제 역사에 대한 대안적 서술방식이라기엔, 이 영화의 선택은 꽤나 온건하다. 리얼리즘을 버리고 연극성과 판타지를 택한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른 시각과 방식의 서술 대신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에서 멈춰버린다. 중국현대사라는 거대서사와 치우푸의 미시서사가 결합되는 방식은 이미 현대사의 비극과 혼란을 담은 수많은 영화에서 수행된 것이며, 과거를 더이상 리얼하게 담을 수 없기에 허구적인 장치를 사용한다는 지점은 이렇다 할 시사점을 제공하지 못한다. 중국어의 말장난과 풍자를 비롯한 여러 맥락을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중국어(특히 쓰촨 사투리)화자들에겐 이 영화가 다르게 다가올지 궁금할 뿐이다. 

<애즈 인 헤븐> 테아 린드버그 2021

 19세기 말 덴마크, 여러 남매들과 함께 시골 농장에서 살아가는 소녀 리즈는 타지에 있는 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학교로 떠나기 전, 막내를 임신한 엄마가 출산을 시작하고, 난산을 겪는다. 이 영화는 리즈의 시선으로 난산을 겪는 엄마의 하룻밤을 담아낸다. 영화는 종종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제목처럼 천국의 들판에 있는 것만 같은 리즈의 얼굴 위로 피와 같은 색의 비가 내리는 첫 장면을 시작으로, 리즈 위에 엄마가 유령처럼 겹친다던가 하는 장면이 중간중간 등장한다. 영화는 시골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도시로 나아갈 준비 중인 소녀가 엄마의 난산과 죽음을 목격하며 겪는 공포, 당황, 혼란을 보여준다. 그 혼란은 성경과 미신이라는 서로 상반된 믿음이 공존하는 당대적 상황에 따라, 마치 공장처럼 아이를 출산해왔으며 난산으로 인해 짐승처럼 울부짖는 엄마의 모습에 기인한다. 천국은 지옥으로 전환되고, 엄마가 사라진 시골 농장에서 장녀인 리즈는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자신의 출산경험 이후 원작소설을 영화화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감독은 슈퍼16미리 카메라를 통해 리즈의 혼란을 포착한다. 다만 소설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남매들이 아닌 리즈 단독으로 바뀌었는데, 이 과정에서 생략된 것들이 영화에선 다소 급작스러운 전개로 다가온다는 점이 아쉽다.

<카우> 안드레아 아놀드 2021

 영화는 영국의 어느 축사에서 살아가는 젖소 루마와 그가 출산한 새끼소의 일생을 쫓는다. 제목을 제외하면 영화의 내용을 설명하는 자막도 등장하지 않는다. 빅토르 코사코프스키의 <군다>가 그랬던 것처럼, <카우>는 계속해서 젖소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낼 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카메라의 위치다. 카메라는 축사의 다른 소가 루마를 지켜보는 것처럼 소의 눈높이에 맞춰진 핸드헬드를 보여준다. 종종 젖소들과 부딪히기도 하는 카메라는 인간의 시점을 최대한 배제하려는 것만 같다. 때문에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을 담아낸 윤가은의 <우리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들>이 그 눈높이를 통해 공감을 유도했다면, <카우>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아이들의 눈높이를 가져보았지만 젖소의 눈높이를 경험해본 적은 없다. 공감, 연민, 동정은 이 영화의 목적이 아니다. 물론 평생을 축사에서 보내며 우유와 새끼소를 생산하는 루마의 삶과 대비되는, 개방된 공간에서 달리며 살아가는 새끼소의 모습을 통해 공장식 축산업에 대한 비판을 가하긴 한다. 다만 그 도구로 공감, 연민, 동정을 사용하지 않을 뿐이다. 오히려 이 영화는 인간과 소의 차이를 인간과 자연의 대립구도로 놓지 않는다. 농장의 상품이자 소유물인 루마는, 마치 픽사의 영화 속 비인간 주인공들처럼, 하나의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인격화되지 않는다. 동시에 루마가 비인간 동물이라고 해서 자연으로 표상되는 것도 아니다. 루마가 새끼소를 낳자마자 젖을 짜게 되고, 새끼에게 직접 젖을 물리는 대신 인간이 젖병을 통해 새끼소에게 우유를 먹이는 장면은 축사의 모든 존재가 인위적인 존재임을 드러낸다. <아메리칸 허니> 같은 안드레아 아놀드의 전작들이 자연의 풍광 속에서 같은 길을 반복적으로 돌아가는 인간들의 이야기였다면, <카우>는 인위성 속에서 반복되는 길을 평생 오가는 젖소의 이야기다. 영화 속 카메라는 젖소의 눈높이를 종종 벗어나기도 하지만 이내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길 반복한다. 카메라의 시선이 젖소의 눈높이를 벗어나는 순간은 루마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뿐이다. CCTV 화면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지극히 인위적인 그 시선은 평생을 축사에서 보내는 루마와 그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농장 직원을 동일선상에 위치시킨다. 

<퍼니 보이> 디파 메타 2020

 1970년대 스리랑카, 어린 소년인 아지는 리조트를 운영하는 타밀족 부르주아 집안의 아들이다. 남자인 친구들과 크리켓을 하는 것보다 여자인 친구들과의 결혼 놀이에서 신부 역할을 하는 것이 더 재밌는 아지는 친척 어른들에게 '퍼니 보이'라 불린다. 그의 개성을 이해해주는 것은 토론토로 유학을 다녀온 고모 라다뿐이다. 시간이 흘러 80년대 초, 고등학생이 된 아지는 동급생 셰한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첫사랑을 즐기기 시작한 무렵, 타밀족과 싱할라족 사이의 내전이 발생한다. <퍼니 보이>는 게이 소년의 정체성 탐구와 70~80년대 스리랑카에서 벌어진 민족 간 분쟁을 겹치면서 전개된다. 10여 년의 시차를 둔 어린 아지와 고등학생 아지의 이야기는 종종 과격한 플래시포워드/플래시백을 통해 결합된다. 이는 단순히 아지라는 개인을 통해 스리랑카의 현대사를 반추해보는 역사 서술의 방식으로 채택된 것이라기보다, 역사의 흐름 속에 존재하던 이들을 역사 자체로서 호명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아지의 성적지향을 교정하려는 부모님, 그에 맞서 아지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지켜주려던 라다, 남자답지 못한 아지에게 반감을 가진 형, 코스모폴리탄인 아버지 덕분에 서구권의 퀴어한 문물을 접할 수 있던 셰한, 반군인 타밀 호랑이의 일원으로서 투쟁해오던 제간. 이들 모두는 전통/신세대, 퀴어/비퀴어, 여성/남성, 타밀족/싱할라족 등의 이분법으로 나뉘어 존재함과 동시에, 최종적으로는 모두가 그 경계를 넘어서게 된다. 영화 말미에 아지의 가족은 난민 신분으로 라다가 사는 캐나다에 도착한다. 난생 처음 겨울의 추위와 눈을 보게 된 아지에게 라다는 붉은 털 목도리를 둘러 준다. 아지의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며 "새로운 세계에서는 모두가 자유로운 노예"라 말한다. 역사 속에서 이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한 마디 대사가 주는 울림은 <퍼니 보이>가 110분 동안 보여준 주제를 단숨에 관객의 머릿속에 새겨넣는다.

<마르크스 캔 웨이트> 마르코 벨로키오 2021

 1962년 첫 장편영화 <호주머니 속의 주먹>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마르코 벨로키오가 자신의 가족사를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아직까지 생존한 벨로키오 가의 남매들과 그들의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벨로키오가 39년생인만큼, 이들의 모임은 이 영화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이들은 세상을 떠난 형제를 추억한다. 그 중 추억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마르코의 쌍둥이 형제 카밀로, 그는 29살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영화는 마르코 벨로키오의 내레이션과 가족들의 인터뷰, 가족 사진에서 2차 세계대전 등의 역사적 사건까지 포괄하는 아카이브 이미지, 그리고 벨로키오의 영화 속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다. 카밀로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는 이들의 이야기는 벨로키오의 필모그래피와 맞물린다. 그리고 꾸준히 이탈리아의 현대사를 다뤄온 벨로키오의 커리어와 마찬가지로, 이들의 가족사 또한 역사와 맞물려 있다. 2차 세계대전, 군부독재, 내전, 68혁명 등의 사건들은 이들의 가족사와 병치된다. 쌍둥이 형제지만 자신과는 사뭇 다른 삶을 살아온 카밀로에 대한 부채감과 죄책감을 품은 마르코 벨로키오의 이야기는,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혼란스러운 이탈리아 현대사에서 약간의 거리두기가 가능했던 자신의 계급적 죄책감으로 전도된다. 신부에게 고해성사하듯 이야기를 이어가는 벨로키오 가문의 사람들과 교차되는 마르코 벨로키오의 영화 속 장면들은, 그의 필모그래피 전체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아녜스 바르다의 유작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가 그랬듯, 마르코 벨로키오의 <마르크스 캔 웨이트>는 그의 필모그래피를 거꾸로 탐색할 수 있는 가이드가 되어준다.

<우연과 상상> 하마구치 류스케 2021

 하마구치 류스케는 훌륭한 연출가임과 동시에 훌륭한 각본가다. 5시간에 달하는 대화들을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써내려간 <해피 아워>, 분열된 정체성과 그로 인한 균열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준 <아사코>, 연출작은 아니지만 그의 각본능력을 제대로 증명해낸 <스파이의 아내>는 각본가로서의 하마구치가 놀라운 재능을 지녔음을 계속 확인시켜주었다. <우연과 상상>은 그의 어떤 영화보다도 각본가로서의 하마구치 류스케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에릭 로메르의 영화 속 우연들에서 영감을 받아 써내려간 우연에 대한 세 단편을 엮어낸 이 영화는 하마구치의 말처럼 '대화극'에 가깝다. 그가 전작들에서 에드워드 양, 히치콕, 클로드 샤브롤, 구로사와 기요시 등에게 받은 영향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자신의 스타일로 만들어냈다면, <우연과 상상>에서는 로메르와 홍상수의 스타일을 자신의 것으로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각각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문은 열어둔 채로', '다시 한번'이라는 제목을 지닌 세 단편은 우연한 마주침, 재회, 충돌로 인해 발생한 이야기들을 상상한다. <아사코>나 <해피 아워>, <스파이의 아내>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영화의 인물들 또한 복수의 분열된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우연은 복수화된 정체성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기제가 된다. 로메르에게서 가져온 우연과 홍상수에게서 가져온 반복(과 흉폭하다 느껴질 정도의 줌인)은 <우연과 상상>에서 그 누구의 것도 아닌 하마구치의 것이 된다. 각각 홍상수와 로메르의 향기가 가득한 1부와 2부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3부가 주는 감정적 울림은 오직 하마구치의 능력에서 온 것이다.

<여성 전용 객차에서> 레바나 리즈 존 2021

 여성 전용 객차에 탄 남성들이 경찰들의 곤봉세례를 받으며 쫓겨나는 인터넷 밈을 본 적 있을 것이다. 인도 뭄바이 전철에는 여성 전용 객차가 있다. 여성이 데리고 탄 아이나 열차 운행이 막바지에 달했을 때의 승무원을 제외하면, "LADIES OLNY"라 쓰인 팻말이 붙어 있는 이 객차는 완전한 금남의 구역이다. 뭄바이 출신의 여성감독 레바나 리즈 존은 이곳에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남성의 시선이 닿지 않는 이곳에서 뭄바이의 여성들은 각자의 생존기를 풀어낸다. 자영업자, 전업주부, 학생, 역도선수, 경찰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가 영화 내내 펼쳐진다. 이들은 감독의 과감한 질문을 대범하게 받아치기도 하고, 질문에 맞서 자신의 가치관을 역설하기도 한다. 그 자체로 인도 여성들의 현재가 담긴 이 영화는 여성의 공간에서만 발화될 수 있는 이야기의 연속이다. 다만 반복되는 흑백의 이미지의 단조로움과 유사한 이야기의 반복으로 인해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한없이 무난하기만 하다는 점이 아쉽다. 

<베네데타> 폴 버호벤 2021

 우선 이 영화를 야외상영작으로 선정한 계기? 동기?가 너무 궁금하고... 이 영화는 <엘르>를 통해 그럭저럭 성공적으로 재기한 폴 버호벤이 흑사병이 창궐하던 17세기 이탈리아의 실존인물 베네데타 수녀의 이야기를 영상화한 작품이다. 어린 베네데타가 수녀원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그가 자신을 살려달라며 수녀원으로 도망쳐온 소녀 바르톨로메아를 만난 이후 환영 속에서 예수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환영 속에서 예수를 만난 베네데타의 손과 발, 옆구리엔 성흔이 생기고, 그는 이윽고 성녀의 지위를 얻게 된다. 이 때부터 영화는 이를 의심하는 원장수녀와 베네데타 사이의 권력투쟁과 함께 베네데타와 베르톨로메아 사이의 사랑을 함께 다루기 시작한다. 광기와 믿음 사이를 오가는 종교적인 테마와 폴 버호벤이 <스타쉽 트루퍼스>나 <쇼걸> 등을 통해 보여준 그로테스크한 유머가 뒤섞인 <베네데타>는, 비록 그의 전작 <엘르>만큼 풍부한 맥락이 담겨있진 않지만 전염병 시대에 알맞은 이야기를 선사한다.

<배드 럭 뱅잉> 라두 주데 2021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작품. 명문 사립 중학교의 교사 에미가 남편과 촬영한 섹스 비디오가 유출되며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의 섹스 비디오를 보여주며 시작한 영화는 3부와 3개의 엔딩으로 구성된다. 1부는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중인 부쿠레슈티의 거리를 보여주며, 2부는 여러 단어들의 짧은 사전이라는 컨셉으로 다양한 아카이브 이미지와 함께 풍자와 유머가 가득한 설명이 이어지며, 3부는 에미의 사임 여부를 놓고 진행된 학부모와의 토론회가 진행된다. 에미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1부의 구성은 에미의 이야기를 담는다기보단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에미를 쫓는다는 명분으로 팬데믹 시대의 길거리를 기록하려는 시도에 가까워보인다. 세계 곳곳의 전후(戰後) 영화들이 명시적으로 전쟁을 다루지 않더라도 전쟁 이후의 폐허와 재건되는 도시를 담아내고 있던 것처럼, <배드 럭 뱅잉>의 1부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것을 기록하고 있다. 영화 내내 "마스크 제대로 쓰세요", "거리두기 지키세요"라는 말들이 오가기도 한다. 2부는 팬데믹을 맞이해 가시화된 모순에 대한 풍자이자 일종의 정리다. 팬데믹 이후에 가속화된 계급화, 인종차별, 온라인으로 옮겨간 생활 등이 짧은 단어들의 모음으로 표현된다. 3부는 그것들이 토론회의 형식으로 폭발한다. 루마니아에 여전히 만연한 인종차별과 네오-파시즘을 비롯해 온라인 공간과 교육의 문제 등이 정신없이 쏟아진다. 이 토론회는 그야말로 난장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팬데믹 이전부터 판을 치던 가짜뉴스, 극우화 등이 펜데믹 이후 더욱 격렬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현실의 초상과도 같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은, 그것들을 깡그리 엿먹어버리려는 것처럼 다가온다. 다소 거칠게 만들어졌다는 인상이 강하지만, 어처구니 없는 영화의 엔딩의 독특한 감흥만큼은 확실히 전달된다.

<애프터 블루(더티 파라다이스)> 베르트랑 만디코 2021

 지구가 멸망하고, 사람들은 애프터 블루라는 행성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이곳의 환경 때문에 남자들은 모두 죽고 여자들만이 생존하게 되었다. 주인공 록시는 해변에서 모래에 파묻힌 살인마 케이트 부시를 우연히 구해준다. 그는 공동체로부터 그 책임을 물어 엄마 조라와 함께 케이트 부시를 죽이고 올 것을 명령 받는다. 영화는 두 사람의 여정을 담아낸다. 아날로그 풍의 (하지만 보이지 않는 CG가 여기저기 들어간) 독특한 영상을 선보여온 베르트랑 만디코의 신작은 <스타워즈>와 린치의 <듄>, 조도르프스키의 <홀리 마운틴> 등을 뒤섞은 듯한 배경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변종 서부극이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과 개성 있는 화면이 무색하게, 이 영화는 시종일관 지루하기만 하다. 배우들의 얼굴을 담아낸 클로즈업은 정신없고, 카메라는 계속 움직이며, 영화의 독특한 배경을 제대로 확인하는 것조차 어렵다. 우연히 풀려난 범죄자와 그를 잡아야 하는 주인공이라는 이야기의 소재는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 구찌나 샤넬 등 명품 브랜드의 이름이 붙은 총기들을 들고 다니는 여성들과 가슴팍에 루이비통 로고가 박힌 남성형 안드로이드 등의 모습이 주는 유머는 있지만, 아주 잠시뿐이다. "모든 형태의 지배에 맞서 대항하는 강하고 반항적인 여성상에 대한 찬가"라는 프로그램 노트의 문구가 이해되지 않는다. 

<견왕> 유아사 마사아키 2021

 영화는 14세기 일본의 전통 악극 '노'를 선보이던 두 젊은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괴물의 모습으로 태어나 스스로 이누오(犬王)이라 이름을 지은 사람과 전국통일을 위해 보검을 찾던 쇼군의 부하들의 요청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아버지를 잃고 눈이 멀게 된 토모나가 그 주인공이다. 토모나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길을 떠났다가 비파 악사를 만나 비파를 배우게 되고, 눈이 멀었기에 이누오의 추한 외모를 볼 수 없어서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영화는 유아사 마사아키의 말처럼 두 주인공이 펼치는 '노' 공연을 락 콘서트처럼 보여준다. 음악 또한 비파가 아닌 전자기타, 베이스, 드럼의 밴드 사운드로 구성되어 있다. 퀸의 여러 음악에서 모티프를 따온듯한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이들의 공연은 전국시대 일본의 묻혀진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 지극히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인 <견왕>은 언뜻 유아사 마사아키의 이전 영화들 속 아웃사이더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견왕>에는, 뮤지컬의 형식을 지녔음에도,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나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과 같은 대표작, 혹은 <데빌맨> 같은 졸작에서도 두드러졌던 역동성과 활기가 없다. 그가 능숙하게 다룰만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누오와 토모나의 첫 공연부터 영화는 늘어지기 시작한다. 그의 근작 중에 꼽자면 <일본침몰 2020>에 가까운 경직성을 보여준다고나 해야할까. 여러모로 아쉬움만 남는 작품이다.

<아임 쏘 쏘리> 자오량 2021

 방사능 측정계의 소리가 들려온다. 원전 사고 이후 버려진 장소들과 그곳에서 밀려난, 혹은 그곳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미 여러 영화 등을 통해 지겹게 봐온 핵실험의 이미지들이 몽타주되며 시작되는 자오량의 신작 <아임 쏘 쏘리>는 후쿠시마와 체르노빌, 세미팔라틴스크 등 원전사고로 사람들이 떠나간 공간과 사람들을 담아낸다. 하지만 그뿐이다. 원전의 폐해를 이야기하던 중 등장한 탄소배출과 기후정의 시위는 뜬금없이 느껴지고, 화면에 등장한 인물들이 아닌 내레이터의 목소리로 그들의 삶을 대신 정리해주는 형식은 다소 당황스럽다. 원전을 다룬 여러 다큐멘터리들에 비해 특출한 이미지나 쟁점을 던지는 것도 아니다. 원전사고가 일어난 자신의 터전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이들의 얼굴이 주는 강력함은 존재하지만, 다소 중구난방인 영화의 모습은 그 강력함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다.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 모린 파젠데이로, 미겔 고미쉬 2021

 이 영화는 2020년 8월부터 9월 초, 포르투갈 모처에서 영화를 촬영하던 22일 간을 담아낸다. 하지만 영화는 22일을 역순으로 제시한다. 22일차부터 1일차까지의 시간을 담아낸 영화는 주앙, 카를로투, 크리스타 세 배우를 중심으로 22일 간의 격리된 영화촬영 현장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이 하는 것은 영화 촬영이라기보단 농촌에서 보내는 휴가에 가까워보인다. 이들은 나비를 기를 공간을 조성하거나 반려견을 씻기고 트랙터를 몰며 과일을 딴다. 흥미로운 것은 몇일차인지 알려주는 간자막과 썩은 상태에서 점점 싱그러운 상태로 변해가는 모과 등을 통해 시간이 역순으로 제시되고 있음을 영화 내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그러한 부분을 무시하고 러닝타임 동안 등장하는 순서대로 영화를 읽어내도 별 상관이 없어보인다는 점이다. 가령 촬영이 없는 날 홀로 서핑을 하고 온 카를로투를 문책하는 11일차의 장면에서 주앙은 그가 2~3일 동안 증상이 없다면 예정된 키스신을 재개하자는 의견을 낸다. 두 사람의 키스신이 촬영되는 순간은 9일차에 등장한다. 그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두 감독(모린 파젠데이로와 미겔 고미쉬가 영화에 직접 출연한다)을 비롯한 스탶들은 13일차 정도부터 모습을 드러내는데, 만약 세 배우가 미리 촬영장소에 와있던 것이라 생각한다면 이 영화의 역순은 별 의미가 없어진다. 스탭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인공적인 조명들이 영화의 화면을 지배하고 있었음을 떠올리면 스탭들의 모습이 등장한 시점 이전의 부분들은 영화 속 영화라 보는 것이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구분을 무시하는 것은 영화 자체다. 영화 촬영 전 코로나19 관련 방역/촬영수칙을 알려주는 포르투갈 영상위원회 직원이 등장하는 1일차는 모든 것이 팬데믹과 격리, 영화 촬영이라는 상황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종의 동화같은 시간임을 알려준다.

<루치오를 위하여> 피에트로 마르첼로 2021

 이탈리아의 민중가수 루치오 달라의 이야기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루치오의 친구인 스테파노와 매니저였던 토비오의 이야기를 통해 루치오의 생애를 되돌아본다. 하지만 <루치오를 위하여>는 단순히 루치오 달라의 삶을 되짚어보는 전기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 사이에서 작업해온 피에트로 마르첼로는 이 영화를 통해 루치오의 노래들을 픽션으로 만들어내려 한다. 노래를 픽션으로 만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단순히 노래의 가사나 시의 줄거리를 극화한다거나, 폴 페이그의 <라스트 크리스마스>처럼 제목과 가사에서 영감을 받아 파생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 영화에는 20여곡에 달하는 루치오의 노래가 담겨 있다. 마르첼로는 노래 가사들을 루치오의 삶에 대응시키려하지도 않고, 가사들을 퍼즐처럼 조립해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도 않는다. <루치오를 위하여>는 스타이자 민중가수였으며 이탈리아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놓치지 않는, 영웅적 면모를 지닌 루치오의 노래를 루치오와 그의 주변인물 뿐 아니라 당대 이탈리아를 구성하는 이미지들을 통해 극화한다. 자동차 경주, 공장으로 향하는 노동자, 클럽 플로어의 춤 추는 사람들, TV 인터뷰, 행인들, 대중교통의 시민들, 테러... 사건(들), 역사(들), 장소(들), 그리고 얼굴, 얼굴, 얼굴. 루치오 달라의 삶과 노래와는 관련 없이 존재하던 아카이브 속 이미지들은 루치오의 노래로 통합된다. 기록영상은 얼굴들과 손짓들로 소분되어 자신의 자리가 돌아오길 기다린다. 무작위의 아카이브 이미지들은 루치오의 노래라는 작위로 합쳐진다. 스테파노는 토비오와의 대화 중 "우리는 루치오를 이야기할 때 항상 현재 시제로 말해."라며 루치오의 존재감을 이야기한다. <루치오를 위하여>는 루치오의 노래를, 그의 삶을, 토비오와 스테파노가 루치오와 함께한 시간들을, 루치오의 노래가 대변해온 이탈리아의 민중을, 민중을 구성하는 수많은 얼굴들을 통합된 이야기로 제시한다.

<일 부코>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 2021

 1961년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 지역에서 681미터 깊이에 달하는 비프루토 동굴 탐사가 진행되었다. <일 부코>는 그들을 따라간다. 영화 초반에 제시되는 TV 화면 속 고층빌딩 외벽 엘리베이터는 공중으로 상승하는 것이 더이상 모험이 아님을 보여준다. 하늘은 더 이상 모험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TV 카메라가 동행할 수 있는 안전한 여행을 제공하는 공간이 된다. 상승은 상업화되었다. 올해 스페이스 X의 민간 우주여행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둔 것을 떠올려보자. 하늘, 더 나아가 우주는 (여전히 미지의 성격을 띠고 있음에도) 안전한 여행을 담보한다. 반대로 동굴은 여전히 위험한 공간이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아무런 광원이 존재하지 않는 암흑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 모험, 탐험, 목숨을 건 움직임이다. <일 부코>는 1961년의 동굴탐사를 재현한 극영화임에도 실제 비프루토 동굴 속에서 촬영되었다. 지표와 가까운 거대한 동굴들은 관광지가 되었지만, 지하 수백 미터에 달하는 비프루토 동굴은 그러한 관광지가 될 수 없다. 인류는 달에는 도달했을지언정 지구의 핵과 같은 깊은 지하에는 방문하지 못했다. 영화는 지하가 만들어내는 철저한 어둠에 빛을 도입한다. 프라마르티노 감독은 상영 전 인사말에서 종이에 불을 붙여 어둠 속으로 보내는 장면에 주목하라고 말했다. 어둠으로 향하는 빛, 그것은 (지금 우주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식민화, 관광지화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순수한 호기심과 욕망에 대한 것이다. 다만 청년들의 동굴탐험과 교차되어 보여지는 죽어가는 노인의 모습이 필요했는가는 다소 의문스럽게 다가온다. 

<메모리아>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2021

 동생을 만나기 위해 콜롬비아를 찾은 제시카(틸다 스윈튼)은 자던 중 '쿵'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콘크리트 공이 금속 우물에 떨어지는 것만 같은, "지구의 핵에서 나는 것 같은 소리"다. 제시카는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정체를 찾고자 한다. 사운드 디자이너를 찾아가 들었던 소리를 구현해보러 시도하고, 환청으로 의심해 병원을 찾기도 한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신작 <메모리아>는 미지의 소리를 찾아 여정을 떠나는 어느 여행각의 이야기다. 그가 태국을 벗어나 처음 제작한 영화이기도 한 <메모리아>는 태국의 민담, 신화, 전설 등을 경유해 태국 현대사를 새롭게 써보는 작업과 유사하면서도 사뭇 다르다. 배경을 국외로 옮기고 현대적 도시가 주로 등장하며 스타 배우가 주연(과 제작)을 맡은 만큼 태국의 전통적인 이야기들이 사용되진 않지만, 영화는 대신 SF와 추리 등 장르영화의 형식을 빌려온다. 미지의 소리를 찾아 헤매던 제시카는 에르난이라는 남자를 만난다. 그를 통해 드러나는 소리의 정체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영화는 그에 앞서 음악, 자동차 경보음, 도시의 소음, 빗소리, 벌레소리 등 화면 바깥에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는 다양한 소리들을 담는다. 제시카와 에르난의 대화를 통해 밝혀진 소리의 정체는 소리의 발원지가 영화에 새겨지는 방식과 유사하다. 에르난은 자신을 저장장치라 말하고 제시카를 안테나로 여긴다. 저장장치, 기록장치로서의 영화는 단순히 이야기를 선보이는 장소가 아닌, 기억이 고이고 저장되는 우물이다. 그것으로 향하게 할 '쿵' 소리를 놓치지 않는 것, 영화의 프레임 내부 뿐 아니라 프레임 바깥을 함께 바라보는 것, 다소 당황스러운 영화 후반부의 한 장면은 그러한 영화에 동참할 것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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