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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Oct 24. 2021

얼굴 앞의 천국

<당신얼굴 앞에서> 홍상수 2021

 미국에서 돌아온 상옥(이혜영)은 하남 신도시에 위치한 동생 정옥(조윤희)의 집에 머무른다. 과거 짧게 배우 활동을 했던 상옥에게 영화감독 재원(권해효)이 신작 출연 제안을 해온다. 상옥은 재원과의 미팅을 기다리며 정옥과 강변 공원을 산책하고, 조카 승원(신석호)의 떡볶이집에 들르고, 지금은 다른 이(김새벽)이 운영하는 가게가 된 이태원의 옛집을 찾기도 한다. 홍상수의 새 장편영화 <당신얼굴 앞에서>는 기묘하다. 고층아파트에서 바라본 아파트 촌의 모습이 등장하고, 매끈하게 마감된 수도권 신도시 특유의 거리 모습이 영화 전반에 걸쳐 등장하며, 어떤 신적 존재에게 기도를 드리는 듯한 상옥의 내레이션이 종종 등장한다.

 <당신얼굴 앞에서>에서 상옥의 행적과 함께 등장하는 풍경들은 서로 너무나 동떨어진 이곳과 저곳을 붙여놓은 것만 같다. 상옥과 정옥은 오랜 시간 연락하지 않았던 사이다. 그것은 고층 아파트가 빼곡하고 인공적인 녹지가 가득하며 너무나도 멀끔하게 정리된, 동시에 새로운 아파트가 세워지고 이미 아파트를 분양받은 누군가(가령 정옥과 같은 이들)가 그곳을 차지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 신도시의 풍경과 상옥이 이태원과 인사동에서 찾게 되는 풍경 사이의 괴리감만큼이나 깊다. 이 괴리감은 상옥의 행적을 따라 계속 출몰한다. (거짓인이 아닌지 모르겠지만) 시한부인 상옥이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배를 잡는 것과 떡볶이 국물을 확인하는 듯 배를 잡는 장면, 상옥의 옛집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의 집이 인천이 있으며 그의 딸은 그곳과 이태원 모두를 집으로 여긴다는 것, 1년가량 시간이 걸리는 장편영화를 제안하려던 재원과 병으로 인해 5~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상옥의 말, 비 내리는 인사동과 햇빛으로 가득한 신도시 공원의 풍경. <당신얼굴 앞에서>에서 서로 다른 거리와 깊이를 갖는 시간과 공간들은 상옥의 존재로 인해 결합된다. 아니, 서로 다른 존재 형식을 갖는 시간과 공간이 상옥의 몸과 얼굴을 빌어 <당신얼굴 앞에서>라는 영화 내에서 지속된다.

 이 지속은 타인, 그러니까 당신의 얼굴 앞에서 어떤 빛을 보고 자살시도를 거두었다는 상옥의 어느 과거가 현재화된 것이라 볼 수 있을까? “얼굴 앞의 천국”을 언급하는 영화 초반부 상옥의 내레이션은 과거의 지속을 바라는 기도처럼 다가온다. ‘당신 (띄고) 얼굴’이 아니라 ‘당신얼굴’인 이유, 내 얼굴에 빛이 존재한다 하여도 그것을 내가 볼 수 없으며 ‘당신얼굴’ 앞의 그것을 경유하여 확인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다소 느긋하게, 죽음과 섹스,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섞어가며 이를 풀어가던 영화는, ‘당신얼굴’과 ‘내 얼굴’ 사이의 차이 자체를 파안대소로서 드러낸다. 새로운 공간으로 쌓아 올려진 과거의 공간, 과거의 얼굴을 기억하는 타인 앞에 놓인 내 얼굴, 엇갈린 시간 속에서 일그러진 약속 등의 것들이 넘실거리는 현재를 어떻게 감내하고 살아갈 것인가. 낭만적으로 내리는 근사한 비와 맞붙는 호탕한 웃음은, ‘얼굴 앞의 천국’보단 천국은 항상 그 반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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