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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Nov 15. 2021

[디스코 엘리시움]의 짧은 후기

*[디스코 엘리시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어제 각자 자움(ZA/UM)에서 출시한 게임 [디스코 엘리시움]을 각자 플레이한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2020년 한글화되었지만 올해가 되어서야 PS4와 스위치 등으로 '파이널 컷'이 출시되었기에 올해의 게임인 것처럼 대화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공산주의 혁명이 실패한 이후의 어느 가상 국가를 배경으로 삼는다. 그 세계는 지구가 아닌 곳에 있는 다른 행성이며, 그곳의 기술적 발전, 대륙을 비롯한 지명의 이름, 바다 대신 존재하는 '창백'이라는 무(無)의 존재 등 현실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공간이다. 동시에 칼 마르크스와 같은 존재인 사상가 크라스 마조프라던가 레닌을 연상시키는 혁명가의 동상을 만날 수 있기도 하다. 기억을 잃은 주인공(자신의 이름도, 직업도, 현재 연도도, 세계 자체에 대한 지식도 잃었다)에겐 지성/감성/육체/운동 등 네 가지 카테고리의 능력치 24개가 존재한다. 24개의 능력치는 24개의 서로 다른 인격으로 존재하며, 게임플레이 내내 주인공에게 말을 건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다양한 사상을 지닌 존재가 될 수 있다. 인종차별주의자 파쇼가 되는 것도, '빛을 휘는 갑부'에게 아양 떠는 자본주의 추종자가 될 수도, 공산주의 지하조직에 참여하는 잔당이 될 수도, 극렬 아나키스트가 될 수도 있다. (대화를 나는 친구 중 한 명은 NPC들에게 인종주의자 파쇼임과 동시에 극렬 페미니스트 소리를 들었다) 도덕주의(자유주의), 초자유주의(신자유주의), 마조프주의(마르크스주의) 등 다양한 사상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플레이어는 선택한 능력치와 여러 서브퀘스트 진행에 따라 각기 다른 사상을 가진 채 플레이할 수 있다. 이는 게임의 큰 줄기인 술집 뒤 나무에 매달린 시체를 죽인 범인을 찾는 것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 그렇다고 [디스코 엘리시움]이 [라스트 오브 어스] 시리즈처럼 선형적이라거나, <블랙미러: 밴더스내치> 또는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처럼 다양한 선택지를 주는 것처럼 보이나 결국 몇 가지 정해진 엔딩으로 향하는 길을 찾게 되는 것은 아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큰 줄기에선 선형적이지만, 그것에 도달하는 과정은 개인적으로 플레이해본 어떤 게임보다 다양하다. 때문에 비선형적인 추리게임을 기대한 플레이어는 실망할 수밖에 없다. 아니, [디스코 엘리시움]이 지향하는 것은 추리게임이 아니라 TRPG의 전통을 충실히 따라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연기하는 RPG의 전통이다. 게임 내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주사위를 던지는 것을 떠올려보자.

2. 동시에 [디스코 엘리시움]의 플레이어는 주사위를 직접 던질 수 없다. 주사위의 숫자는 게임 내에서 의미가 없으며, 능력치에 따라 성공과 실패 확률이 나뉠 뿐이다. 더군다나 게임 내에서 '테이프 컴퓨터'(대충 천공 컴퓨터 비슷한 것)를 통해 온라인 RPG 게임을 만드려던 시도와 주사위 제작자가 등장하지만, 그들은 이 게임이 지향하는 바를 보여주는 것으로서만 등장한다. 결국 플레이어는 게임이 유도하는 대로,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해리 드 부아의 상태 그대로 무기력감과 절망을 느낄 뿐이다. 파리 코뮌 붕괴와 소련 붕괴 이후의 동유럽을 뒤섞어 놓은 듯한 배경, 구 소련의 지배 아래에 있던 에스토니아에서 날아온 이 게임은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 이후의 무기력을 해리 드 부아라는 인물을 경유해 체현한다. 에스토니아의 소설가 로버트 커비츠(Robert Kurvitz)가 각본을 쓰고 디자인한 [디스코 엘리시움]은 기존 인디게임의 맥락과 스타일에서 벗어나 미국/유럽/일본의 AAA게임 혹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디스토피아 장르의 게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아간다. [폴아웃] 시리즈나 [아우터 월드], [사이버펑크 2077], [호라이즌 제로 던] 등의 작품은 초-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다. 국가는 기업에 의해 대체되거나 붕괴하였으며, 각기 다른 부족들의 구성으로 흩어져 서로 소통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이 게임들 대부분의 목적은 선/악으로 양분되어 세계를 (다시금) 멸망으로 이끄려는 적을 물리치는 단순한 구도에 머무는 대신, 플레이어에게 자유도를 부여하여 여러 엔딩을 선보인다. 기업의 편에 설 수도, 마음에 들지 않는 공동체를 날려버릴 수도 있다. 이 게임들의 공동점이라면, 이들이 생각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는 언제나 자본주의-이후의 세계라는 점이다. 자본주의-이후에 새로이 등장하는 것은 자본이 곧 국가가 된 형태라거나, 봉건제 혹은 부족주의로의 회귀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이 지점에서 다른 게임들과 궤를 달리한다. 여기엔 무기력 밖에 남지 않았다. 과거의 혁명 투사와 국가의 군인은 노인이 되어 구슬치기를 하고 있고, 탐욕스러운 노조위원장을 둔 노조는 어쨌든 노동자들의 권익을 증진시켜준다는 이유만으로 유지됨과 동시에 기업화되고 있다. 그러한 세계에서 주인공은 술에 취해 신분증과 총을 잃어버린 경찰이며 자신의 자동차마저도 얼어붙은 강 속에 처박아 버린 존재다. 이 세계엔 자본주의-이후의 광기는 없다. 자본은 '빛을 휘는 갑부'의 존재처럼 자신의 존재 자체를 제대로 현현할 수 없는 것이다. 레이브 파티를 주최하려는 아나키스트와 공산주의 혁명을 다시 일으키려는 지하조직의 마조프주의자들은 서로의 존재도 모른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세계를 규정하는 가장 큰 키워드는 '무기력'이다. 더군다나 바다를 대체하고 있는 무의 공간 창백은 점차 거대해져 대륙을 삼키려 하고 있다. 사상이 존재할 수 있는 물리적 토대는 실패한 혁명만큼이나 거대한 아포칼립스를 앞두고 있다.


3. 그렇다고 [디스코 엘리시움]이 무기력만을 전달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해리와 그의 동료 카츠라기는 범인을 찾아낸다. 범인은 실패한 혁명 이후 숨어 살아가던 공산주의의 잔당이다. 나무에 매달린 시체는 구사대 용병이었으며, 탈영병인 공산주의 잔당은 마약을 하고 섹스파티를 벌이는 용병에 질투하여 그를 저격하였다. 이 사실은 게임의 최후반부에 도달해서야 갑자기 등장한다. 어떤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하더라도 탈영병이 용병을 저격하여 살해했다는 결말은 동일하다. 이 결말은 공산주의 혁명 실패 이후의 무기력과 절망 속에서의 질투, 파시스트로 보이는 용병에 대한 적개심을 갑작스럽게 등장시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탈영병이 숨어 사는 섬은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는 그 존재마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게임은 다른 가능성을 도입한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여러 서브퀘스트 중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는, 미확인 거대생명체를 찾아 다니는 늙은 학자와 그의 부인의 이야기가 있다. 부인은 젊은 시절 '인술린데 대벌레'라 불리는 미확인 거대생명체를 목격했었고, 학자는 그의 말을 듣고 그 존재를 확신하여 연구를 계속한다. 플레이어는 학자와 그의 부인의 연구를 이어갈 수 있다. 이 서브퀘스트를 충실히 진행한다면, 탈영병이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는 장면에서 인술린데 대벌레가 실제로 등장한다. 현실과 다른 세계를 배경으로 삼지만 현실에 대한 수많은 은유를 집어 넣은 이 게임에서 미확인 거대생명체의 존재는 꽤나 당황스럽게 다가온다. 심지어 대벌레가 내뿜는 페로몬이 탈영병을 자극하여 그의 질투와 적개심을 키웠다는 설정까지 들어가니, 대벌레의 존재는 갑작스레 등장한 탈영병과 섬의 존재보다 어처구니 없다.

4. 하지만 이 당황스러움은 [디스코 엘리시움]이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의 패배주의에 찌든 좌파들이 느낄 무기력감과 절망을 넘어서는 순간으로서 존재한다. '미확인'생명체라는 수식어가 말해주듯, 인술린데 대벌레는 시야 바깥의 존재다. 여기서 시야란 플레이어와 주인공인 해리 드 부아, 그의 파트너인 킴 카츠라기는 물론, 대벌레의 존재를 믿어오다 마지막에 가서야 자신의 목격담을 의심하게 되는 학자의 부인 모두의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디스코 엘리시움]의 복잡한 역사, 정치, 사상과도 다르지 않다. 어떻게 보면 대벌레는 페로몬으로 탈영병을 자극해 [디스코 엘리시움]의 중심이되는 사건을 발생시킨 원인이다. 혹은 세계를 조금씩 잠식하고 있는 '창백'과 다름 없는 무언가이기도 하다. 해리(와 플레이어)가 마침내 목격한 대벌레는 그 자체로 [디스코 엘리시움]의 세계를 구성하는 맥락 밖의 존재로서 새로운 가능성의 표상이 된다. 대벌레가 새로운 혁명의 상징이라거나 숭고함을 전달하는 존재라는 것이 아니다. 살인자를 찾는 메인 스토리부터 수많은 사상, 혐오, 정치, 욕망의 맥락이 뒤섞인 서브 퀘스트를 쫓아 도달한, 혁명군이었으나 질투와 적개심 밖에 남지 않은 탈영병을 마주하는 순간 등장한 대벌레는 플레이어가 게임 플레이 내내 경험한 맥락 바깥의 존재로서, 온갖 대립과 혐오, 열패감, 무기력, 자본, 살인 바깥이 존재함을 지시한다. 해리의 동료 카츠라기는 대벌레를 사진으로 남겨 다른 이들에게 보여준다. 미확인생명체는 확인된 생명체가 되었으며, 플레이어가 경험한 [디스코 엘리시움]의 배경인 항구도시 마르티네즈의 좁고 깊은 세계 바깥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그 가능성이 다시금 본래의 세계에 포섭될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오로지 가능성으로서 존재하는 대벌레는 플레이어에 의해, 해리의 눈에 의해, 카츠라기의 카메라에 의해 포착됨으로써 잠재된 상태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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