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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01. 2021

에드가 라이트의 과도기?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에드가 라이트 2021

 블러드&아이스크림 3부작과 <스콧 필그림 vs 월드> 이후의 에드가 라이트는 그간 패러디해오던 장르들을 본격적으로 연출하려는 것 같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액션이 강조된 하이스트 장르였고, 이번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런던 소호를 배경으로 한 호러영화다. 살인마와 패션계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디즈니의 <크루엘라>가 얼핏 떠오르지만, 그보다는 여성 착취적인 과거 런던의 엔터테인먼트 업계, 사교계의 이야기를 지알로 장르를 빌려 풀어내려는 시도에 가깝다. 콘월의 작은 시골마을에 살던 주인공 엘리(토마신 맥켄지)가 런던 패션학교로 오는 것에서 시작한다. 연일 파티가 이어지는 기숙사를 벗어나 원룸을 구한 엘리는 과거 그곳에 살았던 샌디(안야 테일러 조이)의 환영을 본다. 가수가 되기 위해 런던에 온 샌디는 우연히 알게 된 잭(맷 스미스)을 통해 업계에 진출한다. 하지만 무대를 호언장담한 그의 말과 다르게, 샌디는 무대의 조연일 뿐이었으며 일적으로, 성적으로 착취당하기만 한다. 엘리는 환영으로 그 과정을 목격한다. 처음엔 샌디의 패션과 삶을 동경하던 엘리는 어느새 그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에드가 라이트의 다른 영화들이 그러했든, <라스트 나잇 인 소호> 또한 현란한 이미지와 편집으로 가득하다. 정정훈 촬영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상하가 뒤바뀌는 숏도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60년대의 네온사인 가득한 길거리와 2020년의 클럽, 거울이나 유리창을 통해 분리되는 엘리와 샌디(의 환영), 만화경처럼 흩어지는 샌디와 잭을 비롯한 60년대의 이미지들, 엘리의 원룸으로 쏟아지는 프렌치 레스토랑 간판의 하양, 빨강, 파랑 불빛, 데이빗 린치의 회화작업에서 봤던 것 같은 얼굴을 한 남성 유령들. 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와 사교계 클럽이 등장하는 할리우드 뮤지컬을 뒤섞어 놓은 것 같은 배경 세팅 위에서, 70년대 지알로 영화 풍의 ‘범인찾기’가 이어진다. 지알로 장르 특유의 이중화된 범인이 이 영화에서도 반복된다. 장르에 익숙한 이들에겐 반전거리도 되지 않을 반전과, 현란하지만 직접적이지 않은 이미지 속에서 명확하게 등장하는 폭력이 이어진다. 장르의 변주는 계속 이어지지만 코미디의 외피는 집어던진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직선을 그려오던 에드가 라이트의 필모그래피에서 툭 튀어나온 변곡점처럼 느껴진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이를테면 이수진의 <한공주>나 이권의 <도어락>이 그랬듯, 여성을 대상으로 한 착취를 다루기 위해 영화 속에 착취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으로 여겨질 위험성이 존재한다. 실제로 일정부분 그렇기도 하다. 영화의 주요한 장르적 모티프가 팜므파탈이 등장하는 필름 누아르와 수많은 여성들이 살해당하는 지알로 호러라는 점에서, 그러한 지적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다만 이 영화가 정말로 그러한 재현을 ‘장르적 요소’라던가 ‘컨벤션’ 같은 변명으로 회피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에드가 라이트는 그가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장르에 대한 애정을 토대로 계속하여 영화를 만든다. 그 지점에서, 특히 지알로를 끌어오는 부분에서 올해 개봉했던 제임스 완의 <말리그넌트>와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유사하게 다가온다. 과거 인기 있던 장르를 2021년에 복각함과 동시에, 당시의 작품이 지닌 반(反)소수자적 서사를 뒤집으려 한다. 물론 그것이 이 영화에서 성공했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베이비 드라이버>에서처럼 익숙하고 낡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서의 스타일을 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에드가 라이트의 과도기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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