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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Nov 12. 2021

연대하는 삶

<왕십리 김종분> 김진열 2021

 왕십리역 11번 출구 인근 행당시장 진입로, 김종분은 이곳에서 30년째 노점을 운영하고 있다. 찐 옥수수와 구운 가래떡, 각종 야채 등을 판매하는 그는 주변의 다른 노년의 노점상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단골들에게 손쉽게 외상을 내어주기도 하며 살갑게 살아간다. 김종분에겐 30년 전의 아픔이 있다. 노태우 정권에 반대하며 학생운동에 뛰어든 작은 딸 김귀정 열사가 시위 중 세상을 떠나게 된다. 김종분은 딸의 죽음 이후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연대하고, 딸을 잃은 슬픔에 머무는 대신 슬픔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게 된다. 김진열의 6번째 다큐멘터리 <왕십리 김종분>은 김종분 개인의 삶과 김귀정 열사의 죽음이라는 사회적 사건을 엮어낸다. 

 김종분이라는 개인의 삶에 집중하던 영화는 어느 순간 김귀정 열사의 활동을 담아낸다. 이 전환은 다소 갑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김종분과 그의 주변에서 함께 노점을 운영하던 노년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던 영화는, 어느새 30년 전 김귀정 열사와 함께 투쟁하고 연대하던 수많은 인물들의 인터뷰와 당시 학생운동 현장이 남긴 푸티지와 사진을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김종분의 인터뷰는, 영화가 그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고 있음에도, 김귀정 열사의 대학생활과 투쟁 활동을 증언하는 다른 인터뷰이들과 동등한 지위가 된다. 김귀정 열사의 삶과 투쟁, 죽음까지를 다룬 이후 영화는 다시 김종분의 비중을 늘린다. 김귀정 열사 사후 여러 대학을 다니고, 노태우 정권 하에서 희생된 다른 열사들의 유가족과 연대하는 김종분의 모습이 담긴 푸티지가 이어진다. 2020년 5월 있었던 김귀정 열사 추모제 장면을 통해 다시 현재 시점으로 돌아온 영화는, 김귀정 열사의 어머니라는 사적 지위와 민주화 열사의 유가족이라는 사회적 지위가 씨실과 날실처럼 김종분의 현재에 다시금 주목한다.

 김종분의 삶에는 김귀정 열사뿐 아니라 다양한 맥락이 존재한다. 인천에서 왕십리로 이사 온 뒤 살아온 과정 속에서, 가부장제적인 사회 속에서 노동하는 여성의 삶, 산동네 판자촌으로 구성되어 있던 왕십리라는 지역이 현재의 모습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등이 김종분과 그의 동료 노점상인들의 대화 속에서 드러난다. 김종분이 고(故) 백기완 선생의 장례식장을 찾아 30년 전 함께 연대하며 활동했던 유가족협의회 사람들을 만나는 장면과 민주화운동에 대한 학회에 참여하는 모습은 김종분의 삶이 단순히 어머니, 유가족, 노점상인, 노년 여성 등 몇 가지 키워드만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왕십리역의 풍경을 보여주며 김종분의 삶을 보여주던 초반부와 김귀정 열사의 삶과 투쟁을 다룬 중반부 사이의 전환이 다소 급작스럽게 다가오지만, 김종분의 현재를 구성하는 두 가지 맥락이 “연대하는 삶”이라는 하나의 그림을 그리는 후반부는 깊은 울림을 준다. 다소 산만한 느낌을 주는 편집이 아쉽게 다가온다. 하지만 김종분의 삶을 근거리에서, 또 원거리에서 다양하게 조망하는 <왕십리 김종분>은 김귀정 열사 30주기가 되는, 그리고 노태우가 사망한 지금 꼭 짚어봐야 할 이야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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