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걸작 뱀파이어 영화 <렛 미 인>
*스포일러 주의
2008년에 개봉한 스웨덴 판 <렛 미 인>을 보기 전에 맷 리브스 감독이 연출하고 클로이 모레츠, 코디 스밋-맥피가 주연을 맡은 할리우드 버전 <렛 미 인>을 먼저 봤었다. 클로이 모레츠의 팬이라서 본 것도 있지만, 이야기 자체의 흡인력이 뛰어난 작품이었다. 영화를 보고 원작 소설까지 구매해서 읽어볼 정도였으니까. 재개봉을 맞아 극장에서 만난 스웨덴 버전은 역시나 명작이었다. 할리우드 식으로 매끄럽게 만들어진 맷 리브스 감독의 <렛 미 인>역시 장점이 있지만,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의 <렛 미 인>의 완성도를 따라잡지는 못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왕따 소년 오스칼(카레 헤레브란트)의 옆집에 뱀파이어 소녀 이엘리(리나 레안데르손)가 이사 오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간결한 이야기지만 뱀파이어라는 소재는 이야기를 더 애절하게 만든다. 어찌 보면 시한부와의 사랑이야기와 비슷하다. 사실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진 인간은 뱀파이어보다 먼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시한부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예정된 죽음과 영원한 삶이라는 정반대의 상황이지만, 불안정한 감정과 생활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둘은 닮았다. <렛 미 인>에서 이엘리가 물어 뱀파이어가 된 여자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엘리가 그동안 고통받으며 살아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햇볕에 노출되면 불에 타고, 피를 오랫동안 마시지 못하면 시체 썩는 냄새가 난다. 누군가의 피를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한 곳에서 오래 살 수 없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의 스윈튼과 히들스턴이 신기할 정도이다. (뱀파이어들의 생활상을 알고 싶다면, 작년에 나온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를 참고하길)
굳이 다른 영화에 나온 뱀파이어들을 참고하지 않아도 이엘리와 오스칼의 사랑에 끝이 있다는 점은 <렛 미 인>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오스칼과 같은 경로로 이엘리를 도와주게 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년 남자의 존재가 그 한계를 보여준다.(원작에선 소아성애자라는 설정이었던 것 같은데, 영화에서는 살짝 바뀐 느낌. 물론 그가 소아성애자 같아 보이는 지점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해석은 그를 오스칼과 같은 경우라고 보고 있다) 이엘리를 위해 살인을 하고 피를 채집하던 그는 살해 현장에서 체포될 위기에 처하고, 자신의 얼굴에 염산을 부어 자신의 신원이 들통나지 않게 만든다. 오스칼이 계속 인간으로 남아있는 이상, 언젠가는 저 중년 남자처럼 될 것이다. 이엘리는 이를 알고 있음에도 오스칼과 함께 동네를 떠난다. 북유럽의 흰 눈처럼 순수한 오스칼을 피 배달부로 이용하기 위함일까? 겉모습은 순수한 12살에 멈춰있지만 실제로는 몇 년이나 살아왔을지 모를 뱀파이어이기에 영악해진 것일까?
<렛 미 인>에는 유독 거울이 자주 등장한다. 오스칼과 이엘리뿐만 아니라 여러 등장인물들에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등장한다. 반복해서 거울이 등장하다 보니 이엘리의 존재가 오스칼의 상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표면의 비친 물체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거울은 다른 세계와의 연결통로로 많이 다뤄져 왔다. 때문에 <렛 미 인>에서의 거울도 같은 용도라고 볼 수 있다. 이엘리와 만나 소심함을 극복하고, 자신을 괴롭히던 일당에게 복수를 가하는 판타지가 <렛 미인>에서 보이는 스토리라는 것이다. 우연히 옆집에 이사 온 소녀를 본 오스칼이 ‘그 소녀가 뱀파이어이고 자신을 도와준다면?’이란 상상을 한다. 만남과 사랑부터, 복수와 새 출발까지의 과정을 그린 판타지. 다소 영악해 보인 이엘리의 모습마저도 사실은 오스카의 자아가 투영되어 있다. 과하게 잔혹했던 마지막 수영장 씬 역시 그동안 쌓인 오스칼의 울분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오스칼과 이엘 리가 소통하는 방법이 벽을 두드려 주고받는 모스부호라는 점도 오스칼이 다른 세계와 대화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뒷받침해준다. 그러니까, 이엘리는 뱀파이어 버전의 ‘빙봉’ 일지도 모른다.
<렛 미 인>은 결국 새하얀 눈처럼 순수한 아이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도 검붉은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 피가 사랑인지 영악함인지 딱 나눌 수는 없지만, 그 둘 모두가 오스칼임을 보여준다. 아니, 사랑과 영악함을 구분할 수 없는 순수한 아이였기에 가능했던 러브스토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