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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09. 2021

겁쟁이의 풍자극

<돈 룩 업> 아담 맥케이 2021

 미시간 주립대 천문학과 박사과정생 케이트(제니퍼 로렌스)와 민디 교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지구를 향하고 있는 혜성을 발견한다. 남은 시간은 6개월 14일, 이들은 오글소프 박사(롭 모건)의 도움을 받아 이 사실을 알리려 한다. 하지만 대통령 올린(메릴 스트립)과 비서실장 제이슨(조나 힐) 등에겐 당장 3주 뒤 닥쳐올 중간선거가 더 큰 문제다. 두 천문학자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브리(케이트 블란쳇)와 잭(타일러 페리)이 진행하는 유명 TV쇼에서 이를 알리려 하지만, 긴장한 탓에 소리를 지르고 만 케이트는 인터넷 밈이 되고 민디 교수는 AILF(Astronomer I'd Like to Fuck)로만 받아들여진다. 지구가 멸망한다는 소식보단 팝스타 비나(아리아나 그란데)의 결별 소식이 더 크게 바이럴된다. 그러던 중 거대 IT 기업 배시의 창립자 피터(마크 라이런스)가 혜성에 희귀 광물이 많다는 것을 알아낸다.

 <돈 룩 업>은 <앵커맨> 등의 전형적인 미국 코미디로 연출 커리어를 시작해 <빅 쇼트>와 <바이스> 등 미국의 현재를 구성하는 굵직한 실화를 영화로 옮겨온 아담 맥케이의 신작이다. 이번 작품은 당연하게도 실화가 아니지만, 영화의 만듦새는 <앵커맨>보단 <빅 쇼트>나 <바이스>와 유사하다. 상황을 실제인 것처럼 전달하고, TV쇼, SNS, 뉴스 등 다양한 매체들에서 정보들을 쏟아낸다. 영화 초반엔 <돈 룩 업>이 아담 맥케이의 작품임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영화 바깥의 실제 정보가 담긴 자막과 이미지가 뜬금없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아담 맥케이의 인장으로만 작동할 뿐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나 바이스 전 부통령의 이야기와 같은 실화는 그것을 재료로 마음껏 풍자하는 것이 가능했다. 두 이야기 모두 영화가 제작된 시점과 몇 년 간의 거리를 두고 있었고, 실화 속 많은 인물들이 실명으로 등장했으며, 그들에 대한 평가는 영화 외적으로 어느 정도 마무리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돈 룩 업>은 픽션이다. 혜성 충돌이라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둔 채, 가상의 천문학자, 가상의 대통령, 가상의 방송인들이 등장한다.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는 자신으로 출연하는 대신 라일리 비나라는 다른 정체성의 인물로 출연했다. 더 나아가, 이 영화는 누군가의 실명 혹은 회사나 플랫폼 서비스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뉴욕 헤럴드 신문이나 NASA와 같은 공적 기관을 제외하면, 화면에 수없이 등장하는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의 이름과 로고는 가능한 노출되지 않는다. 그러한 플랫폼이 처음 제대로 언급되는 것은 영화의 맨 마지막, 율(티모시 샬라메)이 자신의 트위치 계정을 언급하는 대사뿐이다.

 <돈 룩 업>은 무엇을 감추는 것일까? 혜성 충돌로 인한 지구 멸망이라는 사태 앞에서 허둥지둥하고, 당장 코앞에 닥친 중간선거를 먼저 고려하며, 재난상황 속에서도 자본의 선택을 지지하는 모습은 팬데믹 직후의 트럼프 정권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물론 <돈 룩 업>의 트럼프는 메릴 스트립의 연기를 통해 중화된 형태로 등장하지만 말이다. (여담이지만, 할리우드 영화들이 명백히 트럼프를 패러디한 대통령/정치인 캐릭터를 여성 또는 비백인 캐릭터로 표현하는 것에 묘한 거부감이 있다) 폭스 뉴스나 대안 우파 방송인 알렉스 존스의 방송 Infowar의 방송을 고스란히 가져온 것 같은 TV쇼가 등장하기도 한다. 영화 초반 등장하는 대법관 임명과 관련한 이슈 또한 2020년 트럼프 퇴임 직전 벌어졌던 상황을 옮겨온 것만 같다. 중국과의 외교관계에 대한 언급 같은 세세한 요소 또한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돈 룩 업>의 거의 모든 숏은 지난 1~2년 동안 미국이 거쳐 온 사건들을 씬 단위로 함유하고 있다. <돈 룩 업>은 그것을 숨기진 않는다. 단지 직접적인 이름들을 언급하길 꺼릴 뿐이다.

 <빅 쇼트>와 <바이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전략은 4의 벽을 깨고 영화 속 인물들이 관객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마고 로비가 본인으로 출연하여 모기지에 대해 설명한다던가 하는. <돈 룩 업>에는 그런 것이 없다. 앞선 작품에서 관객에게 말을 거는 것은 영화 속 캐릭터라기보단 배우의 몸과 목소리를 통해 영화 속에 소환된 실제 인물, 혹은 실제 인물 그 자체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돈 룩 업>은 그렇지 않다. 이번 영화에서 실화 속 인물을 대체하는 것은 각 캐릭터가 뒤집어쓰고 있는 형상, 즉 배우다. 밈이 된 케이트는 오스카 시상식에서 넘어진 제니퍼 로렌스가 밈으로 사용되었던 사건을 연상시키고, 일론 머스크와 스티브 잡스를 적당히 뒤섞어 놓은 듯한 IT 재벌 피터는 그를 연기한 마크 라이런스가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역시 거대 IT 기업의 수장으로 등장했던 것을 즉각적으로 연상시킨다. 각각 비니와 DJ 첼로라는 이름으로 출연한 두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와 키드 커디는 자신의 이름으로 출연했더라도 크게 어색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설정들은 영화 속에서 트위터, 틱톡, 유튜브 등이 그것으로 출연하진 않지만 각자 지닌 UI의 특징을 고스란히 끌어오고 있는 상황과 유사하다. 영화 속 인물들은 그들을 연기하는 배우와 강하게 결부되어, 화면에 보이는 인물들 그가 연기하는 배역에 앞서 배우 자체를 먼저 보이게끔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돈 룩 업>의 사회비판과 풍자는 온전히 작동하지 못한다. <딥 임팩트>나 <아마겟돈>처럼 같은 설정으로 미국의 영웅적 면모를 뽐내려는 경찰국가적 이데올로기가 탈진실 시대에는 작동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아담 맥케이의 시도는, 이미 이 영화가 영화 바깥의 매체들이 작동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음을 자백하는 것에 가까워진다. 영화는 다양한 플랫폼에 쏟아지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속도를 추격하려는 듯 편집의 속도를 올리고, 숏을 자르고, TV/태블릿/스마트폰을 보는 각국의 사람들이나 여러 동식물, 거리의 사람들 등이 담긴 빠른 컷의 몽타주를 선보이지만 실패한다. <돈 룩 업>은 SNS 플랫폼의 속도를 옮겨오려 하지만, 그것은 잘 진행되던 장면을 잘라먹는다는 느낌만을 줄 뿐이다. SNS 플랫폼의 속도와 감각 대신, 잘려나간 숏, 캐릭터에 앞서 눈에 들어오는 배우 자체, 코로나19 팬데믹 하의 트럼프 정부와 대선 등을 둘러싼 사건을 혜성 충돌로 살짝 바꾼 수준의 상황들이 138분의 러닝타임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돈 룩 업>의 아담 맥케이는 <가버려라, 2020>의 찰리 브루커보다 겁쟁이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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