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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22. 2022

시퀄, 프리퀄, 리퀄, 스핀오프를 다시 생각해보기

<스크림> 맷 베티넬리-올핀, 타일러 질렛 2022

*스포일러 포함


 2021년의 우즈보로, 친구들과의 파티를 준비하던 태라(제나 오르가라)는 의문의 전화를 받는다. 호러영화에 관한 게임을 하자던 전화, 그리고 테라가 퀴즈를 틀리자마자 고스트페이스 마스크를 쓴 살인마가 테라를 공격한다. 테라는 가까스로 살아남고, 오랜 시간 마을을 떠나 있던 언니 샘(멜리사 바레사)가 우즈보로로 돌아온다. 90년대부터 네 차례 고스트페이스 마스크를 쓴 살인마가 등장했던 우즈보로에 다시 한번 연쇄살인이 발생한다. 샘은 남자친구 리치(잭 퀘이드), 태라의 친구인 앰버(미키 매디슨), 웨스(딜런 미네트), 채드(맨슨 구딩), 민디(자스민 사보이 브라운), 그리고 과거 사건을 마주했던 은퇴한 보안관 듀이(데이빗 아퀘트)와 함께 살인의 규칙을 파악하고 살인마를 찾으려 한다. 한편 듀이의 연락을 받은 시드니(니브 캠벨)와 게일(커트니 콕스) 또한 우즈보로로 되돌아온다. 웨스 크레이븐이 연출하지 않은 첫 <스크림> 영화이자 시리즈의 다섯 번째 영화 <스크림>은 얼핏 2018년 <할로윈>의 성공을 비롯한, 온갖 80~90년대 시리즈의 귀환 속에서 안일하게 기획된 영화처럼 보인다. <V/H/S 죽음을 부르는 비디오>와 <사우스바운드> 등 호러 옴니버스 영화를 통해 장르팬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악마의 탄생>을 함께 연출했던 맷 베티넬리-올핀과 타일러 질렛은 전작 <레디 오어 낫>에서 호러영화의 규칙을 탁월하게 변주하며 큰 인상을 남겼었다. <나이트메어 7>과 <스크림> 시리즈를 통해 덧없는 반복과 자극만을 보여주는 슬래셔 장르를 메타적으로 비판했던 웨스 크레이븐이 만들어낸 구조를, 두 감독은 다시 한번 끌어오며 충분한 즐거움을 준다.

 2011년 <스크림 4G>까지 네 편의 영화가 나온 <스크림> 시리즈는 새 영화가 나올 때마다 스스로의 규칙을 갱신했다. 첫 영화는 <할로윈>과 <13일의 금요일>, <나이트메어> 등 80년대 슬래셔 영화는 물론 <캐리> 등 당대의 인기 호러영화를 대사 속에서 언급하거나 장면을 오마주하는 방식으로 끌어왔으며, 여러 시리즈를 통해 정립된 슬래셔 영화의 공식을 가지고 놀았다. 첫 영화에서 보여준 슬래셔 공식에 대한 오마주와 변주는 장르를 새롭게 선보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이어진 2, 3, 4편에서는 살인사건을 대하는 미디어의 태도, 실제 사건을 극화한 책과 영화, 같은 공식을 반복하고 재생산하는 할리우드에 대한 이야기 등이 포괄되었다. 특히 2편에서 처음 등장한 영화 속 영화인 <스탭> 시리즈는 이번 영화에서도 이어진다. 다시 말해 <스크림>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스크림>의 세계 속에서도 <스탭>이라는 실화 바탕 슬래셔 영화 시리즈로 존재하는 셈이다.

 2022년의 <스크림>은 여기서 시작한다. <스탭> 시리즈는 이미 8편까지 나왔으며, <바바둑>, <유전>, <겟 아웃> 등 하이 컨셉 호러(Elevated Horror)가 장르의 대세가 된 와중에 유지되는 단순 무식한 시리즈는 원작 팬과 대중 양쪽의 비판을 한데 받고 있다. 더군다나 <나이브스 아웃>의 라이언 존슨이 연출했다고 언급되는 (물론 영화 속 설정이지만) 8편의 경우 전작의 ‘구린’ 부분을 뜯어고쳤다는 이유로 원작 팬들의 격한 비난을 받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폴 페이그의 <고스트버스터즈>와 라이언 존슨의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등이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연상시킨다. 태라의 친구 중 하나인 민디는 1편의 희생자 중 하나였던 랜디의 조카로, <스탭> 시리즈는 물론 호러영화의 열렬한 팬이다. 태라의 친구들을 찾은 샘, 리치, 듀이 일행에게 민디는 호러장르는 물론 할리우드 전체에서 벌어지는 ‘리퀄’ 또는 ‘레거시퀄’에 대한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이는 과거의 작품을 ‘리부트’하며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키되, 대신 오리지널 영화와의 연결고리를 남겨놓는 최근의 작품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스타워즈>, <쥬라기월드>, <할로윈>, 그리고 이번 <스크림>이 그 자체로 ‘리퀄’이자 ‘레거시퀄’이다. 

 영화는 이 구조를 적극 활용한다. 영화의 3막을 장식하는 장소이자, 1편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했으며, 영화 속 영화 <스탭>에서 다시 한번 재현된, 그리고 스튜디오에서 지어지고 촬영되었음을 감추지 않는, 앰버의 집에서 벌어지는 후반부는 그 구조의 정점이다. 영화 안팎으로 복잡하게 구조를 뻗어 나가던 메타-메타적인 이 영화의 기획은, 오리지널 <스탭>의 팬인 리치와 앰버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나 벌인 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영화 마지막의 피바람으로 수렴된다. 이러한 구조는 지난 4편에서 활용된 바 있지만, 4편(과 3편)은 당대의 미디어 환경과 할리우드에 대한 비판적 이야기를 비평이나 비디오 에세이 대신 극으로 풀어냈다는 인상이 앞섰다. 가령 크리스틴 벨을 비롯한 여러 스타가 등장하는 4편의 오프닝 시퀀스, 즉 <스탭> 4편과 5편이 6편의 오프닝이 되는 것은 재밌는 비평적 농담이 될 순 있지만 흥미로운 극이 되진 못했다. 반면 이번 영화의 경우 개별 장면을 만들어내는 실력과 숏, 편집 등의 완성도는 웨스 크레이븐에 비해 떨어질지언정 구조적으로는 그가 3, 4편에서 실현하려던 비전을 적절히 구현해냈다.

 물론 이 또한 ‘재탕’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2018년 <할로윈>이 한방의 임파워링을 위해 낡은 공식을 다시 꺼내 들고 <할로윈 킬즈>에서 과거의 실패를 반복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스크림>은 시리즈 팬에게 상당히 즐거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을 제공한다. 여기서 새로운 시작이라 함은, <할로윈> 리부트 시리즈와 같은 것이라기보단 “창의력을 잃어버린 할리우드”가 쏟아내는 끝없는 시퀄, 프리퀄, 스핀오프, 리퀄 등을 대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단순히 구시대적인 것에 대한 업데이트(<할로윈>), 근본적인 변화를 꾀할 수 없는 젠더 스위치(<고스트버스터즈>), 거대 팬덤에 잡아먹힌 시리즈의 비전(<스타워즈> 시퀄 삼부작)을 목격하고 있는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스크림>은 <할로윈>이 실패한 지점을 다시금 지적하며, 이제 막 넷플릭스에 공개된 <텍사스 전기톱 학살 2022>(과 <더 배트맨>과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와 <오비완 케노비> 드라마와 <사탄의 인형> 드라마 등등을)을 볼 자세를 고쳐 앉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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