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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23. 2022

장르적 의욕과 메시지의 부정교합

<나이트 레이더스> 다니스 고렛 2021

 2043년의 캐나다 북부, 전쟁으로 황폐화된 세상은 새로운 제국을 세우려는 독재국가 에머슨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에머슨은 시민권이 없는 미성년자 모두를 에머슨의 병사로 키우려 한다. 이에 반발하는 니스카(엘레 마이아 테일페데스)는 딸 와시즈(브룩클린 르텍시에 하트)와 함께 숲 속에서 방랑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와시즈가 큰 부상을 당하고, 니스카는 치료를 위해 마을로 오지만 약을 구하지 못한다. 결국 와시즈는 병사를 육성하는 에머슨 아카데미에 끌려가고, 니스카는 그를 구하기 위해 캐나다 북부 토착민인 크리족 사람들과 힘을 합친다. <나이트 레이더스>는 실제로 캐나다 토착민인 크리족 혼혈인 다니스 고렛의 첫 장편영화이며, 타이카 와이티티가 제작으로 참여했다. 

 세계 곳곳에서 토착민의 이야기를 장르적으로 풀어낸 사례는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나이트 레이더스>의 주연을 맡은 엘레 마이아 테일페데스의 출연작인 <블러드 퀀텀>은 토착민만이 좀비 면역이라는 설정을 통해 인종차별에 관한 일종의 미러링을 선보였다. 제니퍼 켄트의 <나이팅게일>은 호주를 배경으로 서부극의 형식을 차용해 토착민과 여성 사이의 연대를 그려냈다. <나이트 레이더스>는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SF 장르를 통해 유사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다니스 고렛 감독은 알폰소 쿠아론의 <칠드런 오브 맨>과 2016년 미국 스탠딩록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벌어진 시위에 대한 군사적 대응 등에서 영감을 받았고, 에머슨 아카데미의 설정은 토착민 자녀들이 보내지는 기숙학교에서 따왔다고 한다. <나이트 레이더스>의 배경은 20년가량이 지난 미래이지만, 토착민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이는 토착민이 살아가던 땅을 점거한 뒤 법과 제도를 만들어내고, 토착민에게 법적 권리가 없다 주장하며 그들을 쫓아내던 제국주의자들의 행동이 이 영화 속 에머슨에 의해 반복되는 것 등을 통해 반영된다. 캐나다 뿐 아니라 뉴질랜드와 호주, 남아메리카의 토착민 모두 유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에머슨이 드론을 통해 배급하는 식량에 바이러스를 섞어 넣었다는 설정 또한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이 그 지역에 없던 질병을 가져왔음을 은유한다. 에머슨 아카데미에 오게 된 미성년자들이 “하나의 국가, 하나의 언어, 하나의 국기”를 강조하는 애국강령을 반복해서 외우는 모습은, 토착민(과 더불어 주류가 아닌 이민자들)의 역사를 배제하고 하나의 역사로 통합하려는 제국주의적 야욕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다만 <나이트 레이더스>가 위에 언급한 작품들만큼의 인상적인 장르영화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토착민 출신이지만 토착민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 살아가던, 아예 모든 이들과 거리를 두고 와시즈와 단 둘이 살아가던 니스카의 이야기는 이렇다 할 갈등 없이 크리족의 이야기에 흡수된다. 영화 마지막에서야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와시즈의 어떤 능력은 조금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앞서 언급한 <블러드 퀀텀>은 일종의 미러링으로서 좀비 사태에 대응하는 토착민 공동체를 담아냈지만, 전체주의에 가까운 부족주의적 공동체는 아니었다. <나이팅게일>은 처음부터 파괴된 공동체를 상정한 뒤, 각기 다른 개인이 연대하는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나이트 레이더스>는 에머슨의 대립쌍으로써 크리족 공동체를 내세운다. 파시즘적 독재국가에 맞서는 것으로서 토착민 부족주의를 내세우는 형국이다. 호주 토착민 커뮤니티 활동가이자 영화감독인 에시 코피는 <원주민으로서 살아남는다는 것>과 <내가 살아온 그대로의 삶> 연작에서 제국주의에 의해 파괴되고 자본주의에 의해 분해되는 토착민 공동체의 미래에 관한 다방면의 사유를 보여주었다. <나이트 레이더스>는 그러한 영화들에 비해 단순한 설정만으로 공동체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세팅에서 토착민 공동체의 이야기는 “크리족 공동체”로서 강조되기보단 디스토피아 세계관 속 익숙한 독재국가에 반하는 저항군처럼 다뤄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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