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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 Jun 08. 2022

불안을 껴안고 살면 편안해질 줄 알았다

 예측하지 못한 변수는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서  계획이 필요하고 정리를 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물건을 대단히 깔끔하게 정리하는 편은 아니지만, 느닷없이 직면할 변수에 대응할  있게 필요한 물건을 가방에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빵빵한 가방을 들고 다녔다. 무엇보다 '휴대폰 하나 들고 외출한다'  있을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항상 '이사 ?', ' 거북이처럼 잔뜩 지고 나왔네'라는 소리를 들었다.  정도로 가방 안에는  뭔가 많이 들어 있다. 솔직히 고등학교 때보다는 대학교 때에 짐이 적었고, 대학교 때보다는 직장인이  지금  짐을 적게 들고 다니지만 나를 처음 혹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항상 가방의 무게에 놀란다.

 도대체 뭐가 들었길래 그렇게 무겁냐고 물으면 나도 할 말은 있다. 옷에 뭔가 묻을지 모르니까 휴지와 물티슈, 약속 전에 시간이 남을 걸 생각해서 끄적일 노트와 펜, 화장은 안 하지만 얼굴이 건조해질 수 있으니 로션, 불쾌한 냄새가 몸에 밸지도 모르니 탈취제와 향수, 내 모든 것이 담긴 휴대폰을 충전할 배터리. 이렇게 기본 아이템만 챙겨도 가방은 벌써 가득 찬다. 가방에 챙긴 모든 물건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 많은 필수품을 끌어안고 외출하면 불안이 조금 가라앉는다. 물론 외출할 때마다 모든 물건을 다 사용하는 건 아니지만, 이중에 하나라도 두고 나오는 날에는 꼭 그 물건이 필요한 상황이 생긴다. 불편을 견디는 연습이 필요한가 싶다가도, 막상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불편을 넘어서는 불안이 찾아온다. 특히나 빠뜨리면 안 되는 물건이 있을 때는 외출 직전에 알람을 맞춰 놓고 챙기곤 한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 외치면 내 가방에서 뭐라도 나온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그들의 도라에몽이다. 뭘 그리 싸들고 다니냐고 타박을 하다가도 정작 필요할 때 내가 도움이 되면 내 도라에몽 주머니를 기특해한다.

 필요한 물건이 가방에 없거나 같은 자리에 내가 생각한 물건이 놓여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꼭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마음이 놓이는 고집을, 전문가들은 '강박증'이라는 세 글자로 간단하게 규정했다. 강박적인 성향은 다른 상황에서도 발현된다. 출퇴근 시간이나 업무별로 소요된 시간도 엑셀에 모두 기록해야 직성이 풀린다. 하다못해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어떤 일의 루틴까지도 알람을 맞춰 놓아야 마음이 편안하다. 좋게 말하면 계획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피곤한 성격이란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계획을 촘촘하게 세우고 많은 것을 기록해서 정리하기 시작한 건 머리를 비우고 싶어서였다. 단순하게 살려면 습관이 필요하지 않을까. 습관이 정착하면 불안이 해소되지 않을까. 그런 절실한 마음이었다. 그래도 아직 정리하지 못한 것들이 있다. 강박적으로 정리를 하는 행위에 비해 실상 그다지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것들도 많다. 그런 것을 보면 그저 '질서 있게 어지르는' 편에 더 가깝기도 하다. 내가 가진 강박은 완벽을 추구하는 게 아니다. 일정한 무늬에 균열이 생기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당연하게도 평온하게 유지하던 균형에는 종종 잔물결이 생긴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실금이 가면 여지없이 불안은 나를 흔들어 놓는다.

 몇몇은 그럴 때마다 짓는 내 특유의 표정을 알고 있다. 거울로 본 적은 없지만 간혹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대충 짐작해 볼 수 있다. 불안감을 들키는 게 얼마나 민망한 일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뻔히 티가 나겠지만 최선을 다해 민망하지 않은 척해 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이렇게 금이 간 마음을 다독여 주는 사람도 있다. 무언가에 강박적으로 집착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 덕분에 조금씩 마음이 가벼워진다. 더러는 아예 모른 척 슬쩍 다른 말로 화제를 바꿔 주기도 한다. 다정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배려받으면서 조금씩 강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인내심 있게 나를 기다려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몸을 조금 틀어서 불안이 나를 스쳐가게 두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 이 말을 들었던 날에는 의미는 이해했지만 도대체 어떻게 몸을 틀어야 하는지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이 말을 해 준 사람은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절대 채근하지 않았다. 강박적으로 불안을 껴안고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는 것을 보며 천천히 내가 들은 말을 곱씹어서 소화시킬 수 있었다. 가방 가득 불안을 싸들고 다니면 편해질 줄 알았다. 이제는 조금씩 가방 속의 불안을 꺼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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