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재인 <우리의 질량> 서평
<제2한강> 이라는 소설이 크라우드 펀딩을 할 때 망설이다 구매할 시기를 놓쳤다. 자살 이후의 사후 세계를 살아가는 이야기였는데, 너무도 비현실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라 꼭 읽고 싶었다. 끝내 종이책을 사지 못하고 이제 전자책으로만 판매하길래 또다시 구매를 망설이고 있다가 설재인의 소설을 만났다.
설재인 작가도 그 소설을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소설의 전반적인 콘셉트가 상당히 유사했다. 어차피 나는 이야기를 소비할 수밖에 없는 위치여서 꿩 대신 닭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리의 질량>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표지가 <제2한강>만큼이나 마음에 들었다는 점에서 위안 삼을 수 있었다.
소설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겪어 볼 수 있어서 매력적이다. 특히 사후세계는 누구도 대신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온전히 각자의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 잠깐 죽었다가 돌아왔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만으로도 호기심은 충족되지 않는다. 그런 이들은 대부분 '어둠 속에서 헤매다 빛으로 걸어오니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왔다'거나 '돌아가신 누군가를 만나서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돌려보내졌다'는 식의 식상한 흐름이기 때문이다.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무리 찾아 봐도, '그곳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아쉬웠다.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넣은 다소 부자연스러운 설정도 있었다. 그래도 맥락상 개연성을 잘 짜 넣어서 억지로 스토리를 짠 느낌은 아니었다. 한 편의 이야기를 쓴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머리 아픈 일인지 알기 때문에 작가가 이러한 설정을 넣은 것도 이해가 갔다.
설재인 작가는 꽤 다작을 한 편인데, 관심 있던 작가가 아니라 전작 중에 내가 읽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이라도 이 작가의 작품을 알게 된 것과 그녀의 작품 중 <우리의 질량>을 첫 번째로 읽었다는 점에서 가슴이 벅찼다. 지금까지 읽은 책 중 남들에게 꼭 추천하는 책 목록의 상위에 이 작품도 포함시키기로 했다.
스토리의 흡입력과 필력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작품은 오랜만이다. 나는 평소에도 웬만한 이야기에 크게 공감하는 편이다. 소설을 읽으면 완전히 주인공에게 이입하여 이야기에 따라 기분도 좌우된다. 이 작품은 감정선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이어지는 이야기가 궁금하면서도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다음 문장을 읽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지 않고 며칠씩 텀을 두고 읽었다. 시간이 지나 마음이 좀 진정되어야 다음 문장을 읽을 용기가 났다.
필력은 물론 이야기를 짓는 능력에 포함되긴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별개로 생각하게 된다. 마음이 힘들어서 이야기가 읽히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글을 쓰면서 항상 고민하는 부분이 바로 매끄러운 문장을 쓰는 일이다. 펜 하나를 주면 무한대로 글을 쓸 수는 있지만, 그 글이 남들이 읽고 이해하기 편하게 써지는지는 작가의 문장력에 달렸다. 설재인 작가는 단순한 상황도 포인트를 잘 잡아서 묘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읽고 나는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해졌다. 글을 쓸 사람은 따로 태어나는 게 아닐까. 설재인 작가 같은 사람들이 글을 써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꽉 채워서 도무지 내 글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나처럼 재능이 없는 사람들은 노력해도 이만한 글을 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에는 우리는 중력이 다른 자기만의 행성에 살고 있으며, 영원히 다른 행성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질량밖에 모른다는 내용이 나온다. 누구도 타인의 고민을 진심으로 공감할 수 없다는 말을 이렇게 감성적인 말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감탄했다. 작가의 말처럼 내 고민의 무게가 무거운 것은 나의 행성에서 느껴지는 중력 때문일지도 모른다. 중력이 다른 행성에 가면 나보다 강한 무게를 오히려 가볍게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나라는 행성의 중력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어느 날은 중력이 강해서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어 무기력해지고, 어느 날은 아주 가벼워서 살랑이는 바람 한 번에도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행성의 중력을 내가 정할 수는 없지만, 변화하는 중력에 적응하는 법을 터득해야 계속해서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