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기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여름 Jun 15. 2021

후회하길 잘했다

아직도 네가 어렵다

 죽음을 앞두고 누군가 나에게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으로 되돌아가 다시 한 번 살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태어난 직후'를 골라야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후회되는 순간이 너무 많아서 어느 하나를 콕 집어 고르기가 어렵다. 당장 후회되는 순간들만 나열하라고 해도 종이 한 장 정도는 채울 수 있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출근길에 편의점에서 커피우유를 사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월요일 아침은 늘 지난 주말의 여파로 피곤하고, 달콤한 무언가를 입에 넣어야 기분이 확 좋아지는데 순간의 귀찮음을 이기지 못하고 빈손으로 출근했다. 귀찮음은 점심까지도 이어져서 이 더운 날씨에 도무지 또 시원한 음료를 사러 편의점이나 카페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덕분에 텀블러에 얼음을 조금 넣은 물을 빨대로 마시고 있다. 물을 마시는 게 싫진 않지만, 이 시원한 물이 월요일의 기분을 끌어올려 주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히 알게 되었다.

 한 번이라도 후회하지 않는 날은 없고, 그 어느 하루도 되돌리고 싶지 않은 날이 없다. 별로였던 회사에 들어간 것, 좋은 회사임을 몰라보고 퇴사한 것, 말 몇 마디로 틀어진 사람들, 너무 비싸게 산 물건 등 짧게는 며칠 전부터 길에는 몇 년 전까지 후회할 것들은 널려 있다.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생각해 보면, 그 때로 돌아간다고 해서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다르게 행동했어도 분명히 새롭게 후회할 일이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몇 번의 잘못된 선택이 낳은 좋은 결과들도 있다. 들어가지 말았어야 할 직장에서 만난 좋은 동료들이나, 불편한 자리에서 얻게 된 뜻밖의 귀한 정보들. 하필 그 날, 그 시간에 후회하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모르고 지나갔을 많은 사람과 상황들을 떠올리면 후회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기도 하다.

 얼마 전에 읽은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주인공 노라는 직장, 인간관계, 아끼는 고양이까지 읽고 죽기로 결심한다.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잃은 노라는 절망에 빠져 삶을 마감하기로 결심하고, 그런 노라 앞에 그녀의 인생이 담긴 책이 가득한 도서관이 나타난다. 도서관 사서의 도움으로 삶의 후회되는 순간으로 몇 번이고 돌아가 다시 인생을 살아 보는 노라를 보며, 나였다면 새로운 인생을 살더라도 또다시 다른 선택을 한 인생을 그리워할 것 같았다.

 노라 역시 수많은 인생을 다시 살아본 후 모든 선택에는 후회가 뒤따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남을 의식하는 삶보다는 후회가 남더라도 내가 결정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만족도가 높다. 나도 노라처럼 몇 년 전, 며칠 전, 몇 시간 전에 한 행동들을 끊임없이 후회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은 그런 후회가 쌓여 오늘의 행복한 내가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참을 인 세 번이면 소비를 면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