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장사치' 사장님의 어두운 그림자
(앞의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난 그때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무기력함을 느꼈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 폭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마음 한구석이 뻥 뚫려버린 기분이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난 다음 마침 배달을 해야 하는 음식이 나와 난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일단 음식을 철가방에 넣고, 힘이 풀려 넘어지기 일보직전의 덜덜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배달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머릿속은 거의 백지상태였다.
일단 오토바이를 타고 큰길로 나왔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그것도 애기한테. 돈이 양심보다 먼저란 말인가?
아니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저럴 수가 있지?’
계속해서 같은 말이 머리를 돌고, 또 돌고, 또 돌고 그러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너무 빨리 몰아 눈에 바람이 많이 들어가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눈물도 나기 시작했다.
오토바이의 덜컹거리는 진동처럼 마음속에서도 계속 진동이 느껴졌다.
배달 간 순두부찌개를 어떻게 전달해 주고 왔는지는 모르게 난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가게로 돌아오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여전히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정말 아닌데…’ 결국 난 돌아오자마자 사장님에게 그만두겠다는 말을 했다.
사실 그곳에 더는 그 사장님의 사업을 내가 도와서 같이 한다는 것을 용납하기가 어려웠다. 나도 그 사업체의 구성원 중 하나라는 사실이, 내가 그런 양심 없는 사람들과 같은 부류로 취급받는다는 사실이 견딜 수가 없었다.
사장님은 소리를 빽 하고 지르며, 나에게 온갖 욕설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한창 바쁠 때인데 갑자기 그만둔다고? 뭐가 문젠데? 좀 착실한 놈인가 했더니, 이 XX 완전히 또라이 구만!”
결국 다른 사람을 새로 뽑아 일이 차질 없게 될 때까지는 계속 일하겠다는 약속을 한 뒤에야 그만 둘 수 있었다.
한 달 조금 더 넘게 일했지만, 급여는 한 달 치만 받았다.
아마도 사장님은 나에게 엄청나게 큰 배신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하지만 마지막 날까지도 난 사장님에게 내가 그만두는 이유를 얘기하지 않았고, 사장님도, 주방장님도, 홀 서빙 누나도 그 어느 누구도 내가 왜 갑자기 그만둔다고 했는지 눈치를 못 채는 것 같았다.
그냥 이상한 정신세계의 또라이가 배달 갔다 오더니 힘들어서 그만두나 보다 정도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때 경영대학 1학년 생인 스무 살의 나는 처음으로 장사하는 사람의 마인드에 대해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장사치’라는 말을 그때 깊게 생각했다.
오로지 돈을 위해서만 인생의 모든 목표와 과정과 수단이 정렬되어, 남이야 어찌 되든 말든, 내 주변이 어찌 되든 말든, 진실은 없고 가식과 거짓말만 남게 되는, 그렇게 돈을 벌고자 노력하는 사람.
17살의 어린 나이에 서울에 혼자 상경해 온갖 눈칫밥을 먹어 가며 오로지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하나로 살아온 사람의 세계관과 가치관에 있어, 모든 것을 초월하는 가장 큰 가치는 돈뿐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좋은 사람의 이미지로 환경이 어려운 대학생에게 조금 더 많은 급여를 줘 가면서 사회공헌을 하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돈을 더 벌기 위한 본인의 고도의 생각된 전술일 뿐.
본질은 더 많은 돈이었다.
그때부터 나에게 ‘장사치’라는 말은 대단지 아파트 상가에서 돌솥비빔밥 장사를 하는 거무스름한 얼굴을 가지고 환한 웃음을 짓는 그 사장님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사장님이 내게 던진 온갖 욕설은 상처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확신이 되었다. 그 환한 웃음 뒤에 숨겨진 검은 속마음의 진실, 그리고 아무런 죄책감이 없이 그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 그게 바로 '장사치'의 본질이라는 사실. 나는 그날 내 인생의 사전에 '장사치'라는 단어를 정의했다.
그리고 나름 나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난 결코 ‘장사치’는 되지 않으리라. 경영학 석사까지 하게 된 것도 어쩌면 ‘장사치’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민과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 나의 믿음 때문이기도 했다.
그 이후에는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무지막지한 ‘장사치’는 만나지 못한 채로 살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참 얄궂다.
절대로 다시 마주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그 보리차 사장님의 '장사치'라는 그림자를, 가장 깨끗하고 신뢰받아야 할 장소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학교 졸업 이후 은행에 취직한 나는, 처음에 기업금융과 외환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그때 만난 크고 작은 회사의 사장님들은 다행히도 신참 은행원인 나에게는 그런 장사치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지점의 큰 거래처 중에 꽤 유명한 빵 회사가 있었다.
내가 처음 그 지점에 부임했을 때는 그 회사의 재무상황이 아주 어려워서 대출 연장 건이 있을 때마다 그 회사 높으신 분들이 은행 직원들에게 매우 공손하다 못해 굽신 굽신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하늘의 기운을 받게 되었는지 갑자기 빵 제품 중 하나가 역대급으로 히트를 치면서 내가 지점을 떠날 때쯤에는 거들먹거리며 대출을 상환하느니 어쩌니 하면서 그 콧대가 하늘을 찔렀다.
그 당시 그 회사 분들은 은행 직원들에게 공손함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태도를 보였지만, 그래도 그분들을 보면서는 ‘장사치’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기업금융업무를 주 업무로 은행업무를 시작한 나는 운 좋게 그 지점 근무 다음에 바로 본점으로 발령이 나서 보통의 은행원과는 다른 커리어를 쌓게 되었다.
그러다가 본점의 이 부서 저 부서를 거쳐 업무를 하고 난 다음 십몇 년도 더 넘은 시간이 지나고서 다시 영업점에 발령을 받아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영업점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은행의 전통적인 예금상품은 어느새 뒷전이 되었고, 영업점 주력 상품은 다양한 펀드와 보험상품 등 투자 상품 위주가 되어 버렸으며, 그 상품들을 많이 판매하지 못하면 개인이나 지점 모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내가 처음 지점 생활을 할 때만 해도 금리가 높아 웬만한 고객은 은행 금리만 가지고도 충분한 이자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은행에서 예금거래를 한다는 얘기는 거의 정기예금이나 양도성예금 아니면 이와 비슷한 상품들을 거래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신탁이라는 상품을 통해 여러 가지 은행 외 금융기관의 상품들을 간접 가입하는 분도 계시기는 했지만, 요즘과 같은 저금리 상황에 대비해 투자상품과 보험상품(방카슈랑스)을 은행에서 판매대행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게다가, 은행 지점 평가 체계는 여러 가지 형태의 평가 항목에 걸쳐 투자상품이나 보험상품을 잘 판매하지 못하면 절대 높은 평가점수를 받을 수 없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언론 등에 자주 등장하는 국내 은행들은 이자 장사만 하고 비 이자 수익인 수수료 수입 비중이 작다는 뉴스는 은행의 투자상품과 보험상품 판매 강화의 큰 정당성을 주기에 충분했다.
은행 지점 평가라는 것에 대해 그 느낌이 없는 분이 많을 텐데, 은행은 평가의 기본 단위가 지점(영업점)이다.
일단 지점 실적에 따라 개인의 성과도 연동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은행에서 출세하느냐 급여를 더 받느냐도 결국 지점 성적에 달려 있다 보니 모든 은행원들은 지점의 성적에 목을 맨다.
심지어는 일정 정도의 직급으로 올라가게 되면 인생의 모든 것을 (적어도 내가 보기에) 걸고 지점 영업에 개인의 영혼을 파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 평가에 투자상품 또는 보험상품이 중요한 변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그러다 보니 은행 지점에서는 펀드 판매와 보험상품을 가지고 직원들 개인에게 엄청난 실적 압박을 주고는 한다.
정상적인 영업 드라이브를 거는 것이야 회사 영업활동의 일상적인 모습이겠지만, 나에게 가장 큰 어려움으로 다가온 것은 바로 은행의 투자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의 모습에서 그 옛날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 ‘장사치’의 모습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 보리차 사장님의 그림자였다.
겉에서 보기엔 말끔한 수트와 쿨한 화장품 냄새가 나는 곳처럼 보였지만, 나는 그곳에서 묘하게 십수 년 전 그 식당의 땀 냄새를 맡았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십수 년 전 식당 사장님의 그림자가 왜 세련된 은행 지점 안을 떠돌고 있는 걸까요?
다음화 "당신이 은행 지점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논리적 이유"에서 그 서늘한 설계도를 공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