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매운맛에 진심인 도시에서 살기
힘들고 괴로운 일이 삶을 위태롭게 만들지라도 그대 짬뽕에게 노여워하지 말지어다. 따뜻한 빨간 국물이 그대를 포근하게 위로해 줄 테니.
수요일이다. 오늘만 잘 보내면 목요일, 금요일에 이어 주말까지 보이는 날. 그래서 한주에서 가장 힘들 날이 가능성이 높다. 이런 날에는 매운 짬뽕에 손바닥만 한 연태고량주 한병이나 순대국밥에 빨간 진로 소주가 떠오른다. 홀 구석에 앉아 눈물 훌쩍이며 먹어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한국인의 쏘울푸드. 다른 점이라면 하나는 면이고. 하나는 밥이라는 것뿐이다.
대구는 유난히 짬뽕을 좋아하는 도시다. 맛있게 매문맛이 진심이 도시. 배달앱에서 보이는 엄청 매운맛집에 사장님 맛있어요. 좀 더 매운맛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같은 무시무시한 리뷰가 달리는 동네기도 하다.
맛이 없어도 맵고 짜기만 하면 군소리 없이 한 끼를 때워주는 착한 사람들이 유독 짬뽕 앞에서는 용서가 없다. 사자표 춘장으로 전국이 하나 된 짜장과 달리 짬뽕은 중국집마다 추구하는 색깔을 보여준다. 인구만큼이나 다양한 매운맛이 존재하는 곳이라 매운 짬뽕에 대한 철학도 박사급 수준이다.
그런 대구에서는 중식당의 이름이 짬뽕으로 끝나는 집이 있다. 피바람 부는 강호에 도전하는 재야의 고수들이 선택하는 이름이며 3년 이상 살아남으면 수준을 동네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는 명예이기도 하다.
대구에 와서 전국 몇 대 짬뽕을 찾아가는 것도 좋지만, 시간이 부족하면 지도앱에서 짬뽕을 검색해 보시라. 상향 평준화된 대구 짬뽕계에서 개업 후 3년을 넘긴 짬뽕 상호를 유지하는 집은 후회 없는 맛을 선사할 확률이 매우높다. 맛집은 파랑새처럼 멀리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