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끼의 주인공 밥의 매력을 잊고 있었다
밥 금방 해서 줄게요.
안동에서 일 년 가까이 지내면서 제일 즐거웠던 일은 밥을 알게 된 것이다. 한창 바쁜 오전시간을 보내고 뭔가 좀 정리될만하면 점심을 먹으러 사무실을 나섰다. 회사에서 3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 대체 여기에 밥집이 있을까 싶은 좁은 긴 골목길을 따라 들어간다. 이상한 나라로 이어질 토끼굴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을 때쯤 노란 간판이 보인다.
영업시간엔 늘 열려있는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네모난 중정이 있는 옛날 양옥이 나온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 밥상이 있는 아무 방이나 들어가면 인원만 물어보시고는 밥을 짓는다.우리가 항상 첫손님이었긴 하지만, 그래도 손님이 오면 밥을 짓는 집이라니.
바쁜 점심시간에 익숙해서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밥짓기에 익숙해지고 나니 편해졌다. 겨울에는 뜨끈한 온돌방에 누워 비스듬히 들어오는 볕을 즐기기도 하고. 봄에는 같은 모양 하나 없는 화분에 손때 뭍은 식물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방 한구석에 놓여있는 바스락거리는 신문을 뒤적거리는 등 밥이 지어지는 동안 기다림을 즐기는 법을 알게 됐다.
무엇을 시키도 구성은 비슷하다. 안동 어느 밥집에도 나오는 간고등어구이. 전날 할아버지가 밭에서 가져온 것에 따라 달라지는 나물 반찬. 장독 속에서 익어가는 시간을 보낸 짠지들. 뜨시게 부쳐주는 보드라운 전. 안동의 맛을 구수하게 풀어낸 집된장. 그리고 정말 따뜻하고 맛있는 갓 지은 밥.
단골이 되면 좋은 점이 있다. 접시를 사정없이 비워대는 아재들을 흐뭇한 미소로 지켜보던 사장님이 우리 먹으려고 한 건데 이거 좀 줄까 하며 꺼내는 반찬이 그렇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물김치는 봄이면 이 집을 그립게 만드는 음식이 됐다. 물김치도 나물반찬처럼 같은 날이 없다. 매번 다른 것들이 들어간 물김치에 한 번은 꽃이 몇 송이 들어있었다. 이게 뭐예요라고 했더니 소녀 같은 웃음을 지으신다.
꽃이야. 먹어도 돼요. 우리 어릴 때는 그것도 먹었어.
백 선생이 오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여름은 왔지만 봄은 아직 그리운 곳에 묶여 있다. 더 늦기 전에 안동에 가서 그리운 봄 밥 한 끼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