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에서 유명한 팥집에 갔다. 한참을 기다리다 자리에 앉아 팥빙수를 시켰다. 지구 반대편에서 한참 겨울을 보내고 있는 호주의 스키장에서 퍼온 것 같은 하얀 눈사발에 반짝이는 팥소가 한 국자 얹혀졌다. 길다랗게 썰은 겨울 밤이 고명으로 올려졌다. 차가운 식감 뒤로 은은하게 펼쳐지는 팥소의 품위 있는 맛이 일품이다. 차분하게 팥을 한 알 한 알 골라낸 정성이 느껴진다.
팥빙수는 전골 같은 음식이다. 하나를 시켜놓고 둘이 나눠먹는다. 이곳에선 올려져 있던 팥을 다 먹어도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하얀 눈꽃을 걷어내면 차갑게 재워져 있는 팥소 한 무더기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올여름 아직 팥빙수를 먹지 않았다면 서두르시라. 그런 당신을 위해 여름이 폭염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늦기 전에 팥빙수의 제맛을 즐겨보라는 배려다. 당신이 팥빙수를 먹어야 우리도 가을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