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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심여행자 Jun 08. 2024

우리는 왜 아아의 민족인가

반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운스퀘어 함흥곰보냉면

서울에 가면 뭘 먹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때마다 거꾸로 어디로 가는지, 누구랑 가는지를 묻는다. 지역에선 먼저 맛집을 고르고 찾아가지만, 서울에서는 가는 장소에 있는 맛집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서울에서 움직인다고 하면 최소 30분 이상, 보통 1시간은 걸리기 대문이라고 하면 매우 놀란다. 그렇게 머냐면서.


지방에 사는 서울사람이 고향에 돌아오면 먹는 음식은 취향에 따라 다르다. 신촌에서 동대문까지 한양냉면벨트에서 나고 자란 나는 가능하면 냉면을 먼저 먹는다. 슴슴한 평양냉면이든 새콤한 함흥냉면이든 내 마음에 별표 쳐 놓은 집이 근처에 있으면 거기로 간다. 민식수행자는 면 앞에 평등하고 면 앞에 고요하다.


재개발로 세운스퀘어로 옮긴 함흥곰보냉면. 함흥냉면 마니아들은 겨울에도 이곳을 찾는다.

못 고치는 게 없다던 종로 예지동 시계골목 초입에서 층집을 지키던 함흥곰보냉면 본점이 재개발로 광장시장 맞은편 세운스퀘어 4층 지점으로 옮겨갔다. 반백년의 시간이 쌓인 벽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맛있어지던 본점을 볼 수 없게 된 것은 아쉽지만, 사라지지 않고 근처에서 맛을 볼 수 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난겨울 한파주의보에 덜덜거리던 날 냉면을 먹으러 갔다. 뭘 먹을지 메뉴판을 바라보면서 먼저 나온 육수를 홀짝거리는 데 두꺼운 옷을 칭칭 두른 부부가 들어왔다. 비빔냉면 두 개를 시키려는 남편에 맞선 아주머니의 말이 들렸다.


싫어요. 나는 차가워서 회냉면 먹을래요.


큭하고 웃음이 나왔다. 회냉면도 차갑긴 마찬가지 아닌가. 아! 하고 깨달음이 스쳐갔다. 그렇구나 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는 이유는 날씨가 추워도 차가운 면을 찾던 냉면의 민족이기 때문이었다.


사장님, 여기 비빔냉면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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