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싱가포르 한달살이 -
너 덕에 내 육십 평생 만두는 처음 빚는다.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뭔가를 같이 만들어서 먹는다 데 재밌다.
우리 부부는 연애시절 때부터 설이나 추석에 만두를 빚었다. 아니 연애할 때 웬 만두? 우리의 만두 빚기 스토리를 주변에 알리면 다들 의아해했다. 연애시절 거주했던 홍콩은 설이나 추석 연휴 기간 대부분 가게들이 문을 닫는 데다 한국처럼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즐길만한 놀거리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이때 생각해낸 게 만두 빚기였다. 처음 만두를 빚은 이후 매년 두세 번은 꼭 만두를 빚어먹고 있다. 이제는 설이나 추석이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만두감을 준비하고 있고, 우리만의 작은 전통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종종 지인들도 초대해 같이 만두를 빚고 있다. 고향 떠나 타국에서 일하는 싱글 친구, 커플들을 불러 같이 만두를 빚는데, 놀랍게도 대부분 처음 만두를 빚었다.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가고 워낙 만두 제품들이 잘 나오다 보니 만두를 빚어먹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처음 우리 집에서 만두를 빚은 싱가포리안 지인은 여러 방법의 동영상을 보내주면서 다음 만두 빚기 행사를 기약한다. 이 친구는 벌써 3번째 우리 행사에 동참하고 있고, 싱글로 동참했다가 이후 남자 친구와 함께,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우리와 만두를 빚고 있다.
엄마가 싱가포르에 온 지 3주째, 웬만한 곳들을 다녀왔다. 싱가포르를 떠나기 전 마지막 주말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궁리를 하다 남편이 만두를 빚자고 제안을 했다. 좋은 아이디어였다. 엄마한테 이번 주말에는 만두를 빚자고 하니 놀랍게도 엄마는 송편을 빚어봤어도 만두는 한 번도 빚어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마트 가면 널린 게 만두인데, 뭣하러 굳이 힘들게 만드냐 웃으셨다.
이번 기회에 한번 만두를 빚어보자는 철없는 딸의 조름에 엄마도 못 이기는 척 동참하셨다. 시큰둥하던 처음 반응과 달리 만두소에 어떤 재료를 넣을 것인지 목록을 작성해나가기 시작하셨고 나중에는 적극적으로 재료 준비에 나서는 엄마의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여느 때와 같이 중국계 호주인인 남편은 만두피부터 만들어서 만두소도 간단하게 양배추, 돼지고기, 새우만 넣은 중국식 만두를 만들었고, 엄마와 나는 당면, 소고기, 두부, 부추 등 다양한 거리를 넣은 한국식 만두소를 만들고 만두피는 간편하게 냉동 만두피를 사서 만두를 빚었다.
개인적으로 만두를 빚는 재미 중 하나가 바로 사람의 성격이 자기가 빚은 만두에 그대로 나타난 점이다. 만두피가 터질까 봐 만두소를 꽉 채우지 않는 나는 매사에 조심스럽고, 실수나 일을 그르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서인지 가장 능숙하고 자신 있는 만두 빚기 방법만을 고수한다. 손재주가 좋고 꼼꼼한 엄마의 만두는 손이 꽉 찼지만 모양도 이쁘다. 만두도 이렇게도 만들어보고 저렇게도 만들어보고, 다양한 모양으로 시도하시는데 처음 만드시지만 손재주가 워낙 좋으셔서인지 모양도 다 이쁘다. 또 이렇게 저렇게 다양한 모양으로 매사에 호탕하고 긍정적이면서 과감한 성격의 남편의 만두는 꾸밈이 없어 다소 투박해 보이지만 속이 꽉 차고 만두 크기도 크다.(아무래도 피를 직접 만들다 보니 만두피도 크게 빚는다)
두런두런 앉아서 수다를 떨며 만두를 빚다 보면 어느 순간 만두소가 다 비워진다. 프라이팬에 구워서 먹을 만두를 따로 빼내고 나머지 만두들을 찜기에 여러 번 나눠서 찐다. 갓 쪄낸 만두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데 찜기 뚜껑을 열 때 가장 마음이 설렌다. 당장 먹을 찐만두를 그릇에 옮겨 담고, 남은 찐만두는 잘 식혀서 냉동실에 넣는다. 주의할 점은 만두를 넓은 그릇에 띄엄띄엄 놓고 얼린 후, 꽁꽁 얼려진 만두들은 봉지에 소분해야 나중에 꺼내 먹을 때 만두들이 서로 달라붙어있지 않는다. 이것도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n회차 만두를 빚으면서 조금씩 얻은 노하우다.
갓 만든 만두들을 함께 먹으면서 엄마는, "너 덕에 내 육십 평생 만두는 처음 빚는다. 그런데 할 만하네. 정말 오랜만에 식구끼리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뭔가를 같이 만들어서 먹는다 데 정말 좋구나."
연애 때 처음 만두를 빚자고 한 나에게 셀프 칭찬을 하고 싶고, 엄마하고 같이 만두를 빚자는 아이디어를 준 남편에게도 고맙고, 즐겁게 같이 만두 빚기에 동참해준 엄마에게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