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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나 DuNa Dec 29. 2022

#6. 엄마도 방방이를 좋아하는 줄 몰랐다

엄마 어릴 때 방방이가 없어서 처음 타는데, 재밌네!
  

싱가포르 관광 사진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 바로 큰 돔 천장에서 큰 물줄기가 떨어지는 실내 인공 폭포다. 주얼 건물과 실내 디자인은 마치 미래세계 속 돔 도시를 연상케 한다. 창이공항과 붙어있어 많은 여행객들에게는 잠깐의 휴식처가 되어주는 공간이지만, 싱가포르 주민들에게는 쇼핑, 먹거리, 액티비티, 숙박 등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복합 쇼핑몰이다.


따분한 주말, 날씨는 후덥지고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를 고민하다가 주얼로 향했다. 티옹바루에서 주얼까지는 같은 초록색 지하철 노선으로, 동쪽 끝까지 가야 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실내로 쭉 이어져 있다 보니, 지하철에 내려서 주얼까지 가는데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뽀송뽀송한 상태로 주얼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시그니처인 인공 폭포로 향했다. 인공 폭포 주변으로 녹빛 나무와 풀들이 에워싼 모습이 이곳이 쇼핑몰인지, 식물원인지 헷갈릴 정도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부는 실내에서 인공 폭포에서 튀는 물방울에 시원함을 배가 되고, 대자연 속에 있는 듯한 착각에 들게 한다.



주얼 꼭대기층으로 이동하면,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고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바깥쪽에는 다양한 액티비티들을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마련돼 있다. 원하는 액티비티를 골라서 티켓을 구매해 이용할 수 있지만, 온 김에 모두 체험해보기로 했다.


Canopy Park 안에 식물과 꽃으로 다양한 동물과 꽃 장식을 구경할 수 있는데, 작지만 알차다. 유치해 보일 수 있지만, 왠지 이 안에서는 조금 유치해져도 될 정도로, 우리 마음속 동심들을 이끌어낸다. 평소 같았음 그냥 지나칠 동물 장식이지만 왠지 이곳에서는 걸음을 잠깐 멈추고 사진을 한 장 찍게 된다.



엄마도 마치 오래도록 잊고 있던 동심을 찾은 듯 제대로 즐기셨다. 그물로 이어진 다리인 Sky Nets에서 흔들거리는 다리에 몸을 가누기 힘들고 무섭다면서 그물벽을 잡고 엉금엉금 기셨다. 서른 넘은 딸인 난 장난기가 발동해 힘껏 점프를 하며 다리를 흔드는데 이내 그물 위에 앉아 요동치는 다리에 몸을 맡기며 몸이 붕붕 뜨는 것을 즐기셨다. 마치 6살 아이를 데려와 놀아주는 부모가 된 양, 즐기시는 엄마를 보곤 난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점프질을 했다.



그물로 된 미끄럼틀과 공놀이를 하는 등 다양한 공간이 있는 Bouncing Net에서는 어린아이와 부모들이 곳곳에서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유일한 성인 둘, 심지어 엄마와 딸 조합으로 이 공간에 들어섰고, 과연 아이들이 좋아할 액티비티를 엄마도 좋아할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웬걸, 여기서는 엄마가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즐기셨다. 어린이들과 한데 섞여 그물 미끄럼틀을 여러 번 타시고, 마치 목도리 도마뱀처럼 그물 위를 뛰어다니셨다.


나는 미끄럼틀 출구 근처에 앉았다. 엄마는 미끄럼틀을 타려고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하셨다. 어느새 엄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엄마 재밌어?"하고 물었다. 엄마는 "엄마가 어릴 땐, 이런 게 없어서 처음 타보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네!"하고 싱긋 웃으셨다. 싱가포르 구경을 시켜주려는 딸의 노력과 마음을 알고 일부러 더 재밌게 즐기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려는 것인지, 실제로 모든 것이 처음이라 재밌어하시는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재밌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알게 모르게 뿌듯하고 만족스러웠다.



생각보다 너무 쉬웠던 미로에서는 지루해할 만도 않데, 나와 숨바꼭질을 하든 몸을 숨기시며 나를 기다리셨고,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스에 따라 꽃이 피는 벽을 보고는 활짝 펴지는 꽃들을 반기며, 하나하나 예쁘다고 웃으셨다.


    

Mirror Maze에서도 직원이 시키는 대로 스펀지 막대로 앞장서며 이곳저곳을 두들겨 길을 찾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30년 전 엄마가 어린 나를 이렇게 바라보지 않으셨을까란 생각이 들면서 마음 한 구석이 간질거렸다. 어릴 때 든든하면서도 엄하셨던 엄마는 성인이 되어서는 나의 친구가 되어줬다. 항상 '챙김을 받다'가 외국인 싱가포르에서는 '챙김을 드리는' 입장이 되니, 한없이 커 보였던 엄마가 귀엽고 사랑스럽다.



다시 한국에 간 엄마는 다시 60대 어른의 삶으로 돌아가 '어른'같이 지내고 계시지만, 엄마 속에 내재된 동심을 본 이상 조만간 다시 꺼내드릴 수 있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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