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말, 경매에서 세계적인 기업인 일론 머스크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자동차 번호판 ‘EL0NMUSK’가 11,000 홍콩달러에 팔렸다는 뉴스를 봤다. 같은 날, ‘BAD G1RL’, ‘LATTE’, ‘BROS’ 등 재밌는 자동차 번호들이 경매에 부쳐졌고, 이날 ‘1 HH’가 115,000 홍콩달러에 낙찰돼 당일 가장 비싼 낙찰가를 기록했다.
보름 후, 또 뉴스에서 자동차 번호 ‘R’이 역대 자동차 번호 경매에서 두 번째로 가장 비싼 가격을 기록했다고 보도됐다. 이날 10여 명이 경매에 참여했고, 시초가 5,000 홍콩달러보다 무려 5000배 비싼 가격인 2550만 홍콩달러에 낙찰됐다.
홍콩 자동차 번호는 일반적으로 알파벳 2개와 숫자 3개 또는 4개를 조합한 번호다. 만약 길한 숫자나 자신만의 개성을 나타낼 맞춤형 자동차 번호판을 갖고 싶다면, 교통국 맞춤형 자동차 번호판(Personalized Vehicle Registration Marks) 신청을 통해 맞춤형 번호를 받을 수 있다. 띄어쓰기를 포함해 최대 8자의 번호를 만들 수 있다. 다만 알파벳 ‘I’, ‘O’, ‘Q’ 등 포함할 수 없다. 자동차 번호판 기준에 충족되면 경매에 부쳐지며 경매를 통해 번호를 낙찰받을 수 있다. 번호판은 양도가 가능하지만, 구매 후 15년이 지나면 다시 경매에 내놓아야 한다.
자동차 번호판 경매는 자선 기금 마련을 위해 1973년부터 시작됐으며, 2006년부터 개인 맞춤형 자동차 번호판 경매를 도입했다. 수익금은 모두 홍콩 정부 재무국에 귀속돼 모두 사회공헌으로 환원된다. 교통국에 따르면, 2006년 이후 총 4만 개 이상의 맞춤형 자동차 번호판이 신청됐고, 경매를 통해 약 6억 홍콩달러를 벌어들였다.
자동차 번호는 차주들의 사회적 지위, 재력, 유머, 욕망, 미신 등 자신의 개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수단이다. 홍콩 부동산 재벌 세실 차오(Cecil Chao)는 자신의 이름을 표현한 ‘CEC1L’ 자동차 번호판을 약 2만 홍콩달러에 낙찰받았고, 나머지 차 두 대에도 각각 자신의 성씨인 ‘CHAO’와 숫자 ‘4’ 번호판을 달았다. 중국인들이 기피하는 숫자 ‘4’를 선택한 것이 의아한데, 인터뷰를 통해 숫자 ‘4’가 상하이 방언으로 행복이란 단어와 유사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삶의 철학이기도 하기 때문에 자동차 번호판 ‘4’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재벌가 외에도 많은 홍콩 연예인들도 자신을 드러내는 자동차 번호판을 가지고 있다. 주윤발은 자신의 이름 이니셜과 태어난 해를 조합한 ‘CF1955’ 번호판을 가지고 있으며, 유덕화는 영어 이름 Alan Lau 이니셜과 태어난 월과 일을 조합해 AL917 번호판을 낙찰받았다.
중국에서 길한 숫자로 여겨지는 ‘8’, ‘9’ ‘6’ 등 숫자가 들어간 번호판은 수백만 홍콩달러에 호가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1988년 자동차 번호판 ‘8’이 500만 홍콩달러에 팔렸고, ‘8888’은 1974년에 15만4,000 홍콩달러에 팔렸으며, 현재 시가로 2000만 홍콩달러가 넘는다. 2008년에는 행운의 숫자로 여겨지는 ‘18’이 1,650만 홍콩 달러에 팔렸고, 같은 해 ‘9’는 1300만 홍콩달러에 팔렸다. 2016년에 번호판 ‘28’이 1810만 홍콩달러에 낙찰됐다.
2022년 11월 기준, 10만 홍콩달러 이상에 호가한 자동차 번호판이 약 4천 개에 달하며, 이 중 100만 홍콩달러 이상에 낙찰된 번호판은 104개다. 역대 가장 비싼 자동차 번호판은 2021년 3월에 낙찰된 ‘W’라는 자동차 번호로, 2,6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됐다. ‘W’는 승리자를 뜻하는 위너(Winner)를 뜻한다.
자동차 번호판은 홍콩만의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지만, 금액을 떠나 자동차 번호판은 나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하나의 표현의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차주는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정부는 낙찰금을 정부 재정으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고, 재치있는 번호판을 우연히 보게 된 행인에게는 찰나의 즐거움도 선사하니, 이것이야 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거양득 시스템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