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맞은편에는 매일 아침 시골에서 따 온 풋고추와 오이, 호박등을 펼쳐놓고 파는 할머니가 한 분 계셨다.
처음에는 어릴 적 봄나물을 팔던 우리 할머니와 닮아 있어 그 할머니가 아주 친근했다. 하지만 친근함이 깨지는 데는 반나절의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곳의 스트릿 파이터였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싸움 상대는 다름 아닌 대다수가 손님들이었며 싸움의 원인도 언제나 한결같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한 아주머니가 일렬로 늘어서있는 오이와 호박을 보며 말했다.
"할머니, 오이 얼마예요?"
"오이? 세 개 천 원."
손님은 그저 가격만 물어봤을 뿐인데 할머니의 움직임은 분주했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앞주머니에서 비닐봉지를 하나 꺼내더니 오이 세 개를 담기 시작했다. 당황한 손님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할머니, 지금 살 거 아니에요. 그냥 물어본 거예요."
할머니는 본능적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굽혀져 있던 허리까지 펴더니 손님을 이상한 여자처럼 쏘아보았다.
사실 그날 할머니의 수가 평상시처럼 그냥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개 가격만 물어보던 손님들도 할머니가 물건을 담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돈을 내고 사가기 마련인데 그 손님은 남달랐다. 오이를 좀 더 유심히 살피더니 한 마디 툭 던졌다.
"할머니, 자세히 보니까 오이가 좀 시들었네요. 다음에 사러 올게요."
그때였다. 할머니는 들고 있던 오이봉지를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돌아서가는 손님의 뒤통수에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