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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영 May 29. 2023

21. 내가 만난 100인

선생님의 퇴근길

20여 년 가까이 공교육과 사교육을 오가며 청소년들과 호흡을 맞춰왔다.

한 분야를 이렇게 오랫동안 머물러왔건만 아직도 교육분야는 어렵다는 결론이 난다.


"선생님, 어릴 적부터 꿈이 선생님이었나요?"

"아니, 꿈은 아니었어.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그저 한 번쯤은 가져 보고 싶은 직업이었어."

"왜요?"

"궁금했거든. 선생님이 되면 정말 공부 잘하는 아이가 진짜 예뻐 보일까?

 부잣집 아이가 예뻐 보일까?

정말 공부 못하고 집도 가난한 아이가 미워 보일까?"


안타깝게도 아니 운이 없게도 초, 중, 고를 통 들어 은사님이라고 부를만한 선생님을 단 한분도 만나지 못했다. 공부도 잘해보았고, 한때 집안도 부유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저 환경에 따라 나를 대해주었다.

그래서 항상 궁금했다.


'선생님이 되면 과연 어떤 아이가 예뻐 보일까?'


요즘은 나는 우스갯소리로 초중고 아이들의 특징을 이렇게 말하곤 한다.

수업시간이 다 되었는데 아이들이 오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본다.


<고등학생>

"어디니?"

"(지친 목소리) 지금 가고 있어요."


<중학생>

"어디니?"

"(능청스러운 목소리) 네? 선생님, 저 오늘 학원 가는 날이었어요?"


<초등학생>

전화는커녕 선생님들보다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다.

"(아주 해맑은 목소리)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가 오늘 학원을 1등으로 왔어요."


이런 아이들의 학습을 돕는 일은 책임감과 즐거움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살면서 나락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의 순간에도 일을 하며, 이들과 함께하며 순간, 순간을 잊어가며 이어나가곤 했다.

그래서 감히 나는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은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게 아니야. 재미있어서 일을 하는 거야."


불편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내가 돈이 아주 많아서 여유를 부는 게 절대 아니다.

교육사업은 사업보다 교육에 좀 더 치중을 한다면 얼마든지 즐거운 일이 된다.


하지만 가끔 이런 나의 즐거움을 해하는 아이들도 더러 있긴 하다.

말 그래도 예쁘지 않은 아이가 있다.

20여 년 가까이 예쁘지 않은 아이가 한결같은 걸 보면 이건 그저 개인의 취향인 듯하다.

나는 예의가 없는 아이가 예쁘지가 않다. 선을 넘거나 뭐든지 당연시 여기는 아이들은 상처를 준다.

그건 마치 날이 선 종이에 길게 베인 듯한 상처를 낸다.  겉보기엔 너무나 작은 상처라 혼자서 쓰린 따가움을 견뎌내야 하며  또 어디 가서 아프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쪼잔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런 상처이기도 하다.



출근길은 익숙해지는 자

퇴근길은 설레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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