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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영 Jan 22. 2024

63. 내가 만난 100인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했지만

패션태클리스트


외모가 아름다운 편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얼굴을 기준으로 그 아래로는 제일 매력적인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패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특히 국내보다 개성 넘치는 할리우드 배우들 위주의 잡지를 보고 따라 했다. 그리고 앞서갔다. 그것도 너무 많이 앞서갔다.


런던시내의 어느 길 끝에서 웃으며 걸어오는 여자가 있었으니 처음에는 내가 아는 사람 인가 싶어 나도 그녀를 주시하며 걸었다. 나와 가까이 마주한 그녀가 아주 상냥하게 말을 걸어왔다.

"혹시 이 부츠  어디에서 샀는지 알려줄 수 있어요?"


그리고 매주 교회에서 만나는 S언니는 나의 패션에 감탄사를 자아냈다.

"내가 여름에 반바지에 가죽부츠를 신은 여자를 실제로 본 건 네가 처음이야."

또 어딜 가나 나를 향한 시선과 말은 일치했다.

"뉴요커 같으세요"

"이런 건 어디서 사요?"

"저기 스타일이 좋으셔서 그런데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C 잡지사에서 나왔습니다.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그랬다. 나는 잡지에도 한번 실린 적이 있었고 처음 보는 사람들도 나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같을 수없듯 이런 나의 패션에 애정 어린 태클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봄날 카디건을 입는데 조금 심심했다. 단추 절반을 떼 리고 다른 색깔을 달았다. 홀수 단추는 빨강, 짝수 단추는 초록이었다. 그럼에도 뭔가 남다름이 돋보이지 않아 언발란스하게 단추를 잠그고 다녔다. 마치 유치원생이 옷을 입을 때 첫 번째 단추를 두 번째 구멍에 끼우는 행위 같은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연예인이 마치 내 스타일을 따라 하는 것처럼 똑같이 하고 나왔다. 하지만 내 눈에만 그 스타일이 좋아 보였을 뿐 대중의 이목은 끌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일반이었기에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어머! 아가씨! 단추!"

"아침에 급하게 나왔나 봐요? 단추가 잘못 끼워져 있네요. 호호호."

"저기요. 단추가..."

"옷이 뭔가가 좀 이상한데요?"


내 예상과는 달리 항상 이런 식의 시작을 알렸고 그중 가장 애정 어린 태클리스트 중 한 명은 나의 애제자 찬현학생이었다. 찬현이는 수업에 집중하기보다 늘 나의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내가 마시는 레몬물과 들고 다니는 커피까지 간섭을 하는 아이였다. 그날도 그랬다.


"선생님! 다 큰 어른이 단추도 똑바로 못 끼우나요? 빨리 옷 좀 제대로 입으세요."


찬현이를 비롯해 대중들의 성가신 관심을 더 이상 이기지 못한 나는 카디건 단추를 다시 평범하게 끼우고 다녔다.


미국을 다녀왔다. 'Hunter'라는 브랜드에서 색색별 장화를 출시했다. 이때 나는 흰색과 검은색 장화밖에 존재하지 않는 한국에 보라색 장화를 신고 귀국을 했다.


"야~ 나는 이기영하면 보라색 장화가 제일 먼저 떠올라!"

"이거 장화예요? 부츠예요?"


나는 비가 오지 않은 날에도 보라색 장화를 신고 다녔다. 발에 땀이 차고 답답했지만 스타일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기에 얼굴 아래로 향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겼다. 하지만 우리의 찬현학생의 시선은 즐기기가 무척 어려웠다.


"선생님! 여기가 무슨 노량진 수산시장이에요? 왜 장화를 신고 돌아다니세요?"


거의 한 달이 되어서 헌터장화가 수입이 되면서 대중의 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그 후로 난 더 이상 그리고  지금까지도 장화를 신지 않는다. 남들과 똑같아지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한 달 내내 불편함을 감수하며 원 없이 신었기 때문이다.



서른이 되면서 어느 정도 수입이 늘어났다. 서서히 명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준브랜드의 가방 서너 개 사느니 명품하나 사서 평생 가지고 다니는 게 더 경제적이라는 나름의 논리를 가졌다.

일 년 동안 적금을 들기도 했고 카드로 12개월 무이자로 긁기도 하면서 대, 중, 소 크기 별로 하나씩 구입했다.

이름하여 루이뷔통, 샤넬, 프라다였다.

하지만 평소 물건을 아껴 쓰지 않는 나로서는 그들을 소중히 다룰일이없었다. 비가 오면 머리 위에 쓰고 뛰어다녔고, 급히 장 볼 때도 만두며 어묵을 명품가방 안에 쑤셔 넣었다. 그때는 이런 말이 있던 시절이었다.

'비 올 때 명품가방을 끌어안고 뛰면 그 가방이 진짜고 머리에 쓰고 뛰면 가짜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 따위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의 당당한 명품을 한 방에 꺾는 이 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또 우리 찬현학생이었다. 그날따라 녀석은 나보다 일찍 와서는 명품가방을 들고 당당히 출근하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녀석의 시선은 곧바로 가방으로 이어졌고 나는 그런 익숙한 시선을 의식해 우쭐한 기분으로 책상 위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녀석이 가방을 빤히 보며 말했다.

"선생님!  저 가방이요."

역시 녀석도 명품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비록 수백만 원짜리 명품을 들고 교통카드를 찍고 다니는 형편일지라도 명품은 누구의 눈에나 다 명품이었다.

"선생님! 저 가방 알아요."

"그래, 너도 아는구나. 너는 이 가방을 어디서 봤니?"

녀석은 자신이 저 가방을 어디서 봤는지 기억을 더듬어갔다. 그러다 번쩍 빛을 내며 말했다.

"아! 선생님! 저 가방 성당시장에서 봤어요. 선생님도 거기서 사셨어요? 엄청 많이 걸려있던데요!"


나는 지금도 가끔 앞서간다. 5년 전 가을에 이탈리아 골목에서 삭스슈즈를 사서 신고 왔다.

"양말이야? 신발이야?"

"신발 위에 양말을 덧신은 거야?"

"저런 신발이 다 있지?"

그리고 그 해 겨울 B브랜드사를 필두로 삭스슈즈가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그 후 나는 또 신지 않는다.


최근에는 컨버스 스니커즈에 빠졌다. 클래식디자인으로 색색별로 사서 신고 다녔다.

또 지루함을 느낀 나는 노란색과 민트색을 짝짝이로 신어보았다.

왼쪽은 노랑, 오른쪽은 민트색이다. 그리고 시대도 발전하고 사람들도 달라졌다.


"원래 저런 디자인인가요?"


하지만 여전히 태클리스트는 존재한다.

"한쪽은 남편이 신고 갔나봐요?"

"왜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돌아다녀요?"


어느덧 우리의 찬현학생은 멋진 청년소방관으로 성장했다. 성인이 된 그 아이가 더 이상 선생님의 패션에 관여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이 신발을 보고 뭐라고 할지 내심 궁금은 하다.


얼굴 아래의 말들을 즐긴 자.

얼굴 아래의 시선을  즐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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