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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영 Jan 30. 2023

7. 내가 만난 100인

에얼리비치

 첫 배낭여행의 세 번째 도시는 호주 에얼리비치였다.  에얼리비치는 화이트 헤이븐 비치 (White Haven Beach)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로 손꼽힌다.


초기 여행일정은 에얼리비치에서 사흘을 머물 여정이었지만 나 또한 에얼리비치에 매료된 전 세계인들 중 한 명이 되고 말았다. 일정을 조정해 이틀을 더 추가해 닷새동안 이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그리고  배낭객에게 에얼리 비치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또 있었다. 그건 바로 숙박비가 다른 도시에 비해 3~5달러 가까이 저렴했기 때문이다.

나는 또 첫 여행이었기에 신중에 신중을 더해 모든 여행경비를 직접 가지고 다니지 않고  통장을 개설해 정착하는 도시마다 ATM기계에서 돈을  뽑아 쓰는 방식을 선택했다. 타운즈빌에서 에얼리비치에까지 오는 버스 안에서  경비행기투어비와 식비 그리고 숙박비를 꼼꼼히 계산해 딱 쓸 만큼의 돈을 뽑았다. 역에 내리자마자 근처 여행사에 가장 먼저 들러 경비행기 투어를 신청하고, 장을 본 뒤 숙소 셔틀버스를 타고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흘 일정을 고수해왔지만 셔틀버스에서 체크인을 하는 사이의 간격에 마음이 바뀌었다.그때 비상금으로 빼놓은 20달러를 숙박비로 지불하고 나니, 수중에는 달랑 2달러 50센트만 남았다.

하지만 전혀 문제 될 건 없었다. 이미 장도 다 봐왔고, 숙소비, 투어비까지 다 지불했으니 5일 동안 더 이상 큰돈이 들어갈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돈이 필요하면 30분마다 운행하는 숙소셔틀을 타고 시내로 가 돈을 뽑으면 될 일이었다.


다음날 여느 때와 같이 아침으로 시리얼과 잼 바른 토스트를 먹고 경비행기 투어를 가기 위해 픽업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픽업버스는 에얼리비치 주변의 여러 숙소를 들르며 배낭객들을 실어 날랐다.

작은 경비행기를 타고 20분 정도 산호초로 가득한 섬들을 둘러보는 투어였으며, 비록 100달러나 하는 고가의 투어였지만 그 이상을 돈 값을 해주었다. 난생처음 경비행기를 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작은 섬들의 모습은 아주 환상적이었다. 마치 달걀프라이처럼 바다가 흰 백사장을 감싸고 있는 섬도 있었고 하트 모양으로 된 섬, 그리고 보물지도가 숨겨져 있을 것 같은 몽롱한 빛깔의 섬들도 있었다.



나를 태운 파일럿은 그간 몇 주 동안 봐온 호주인들 중 제일 잘생겼으며 가장 친절했다.

그는 투어 하는 동안 사진 찍을 몇몇 곳을 손짓으로 알려주었다. 한참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데 그 시절 36장의 필름카메라의 필름이 끝에 다 달으면서 윙 소리를 내고 감기기 시작했다. 경비행기는 계속 운행 중이었으므로 나는 예쁜 섬들을 카메라 대신  눈으로만 담아야만 했다. 그런데 그때 필름이 감기는 동안 놓친 작은 섬들을 그가 한번 더  돌아주겠다고 했다. 그로 인해 우주의 섬광과 같은 에얼리 비치의 섬들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 올 수 있었다.


문제는 투어를 마친 후 나의 멍청한 계산 실수에서 발생했다. 대기실에 앉아 셔틀버스를 기다리는데 나를 태워왔던 직원이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갈때는 픽업서비스가 없어. 너가 알아서 버스를 타고 가야 해. 그런데 여기 보니까 너희 숙소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다섯 명이나 돼. 이렇게 되면 버스보다 택시가 나을 거야. 택시를 불러 줄 테니까 너도 같이 택시를 타고 가는 게 어때? 어차피 다섯 명이니까 요금도버스비정도밖에 안돼."

"그래, 그러지 뭐."


버스비는 1달러, 내게는 그리고도 1달러 50센트가 더 있으니 살짝 불안했지만 우선 그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사실 버스 타고 가는 방법도 몰랐다.

택시가 왔고 그의 말대로 나를 포함한 모두 5명이 맞았다. 여자 둘, 남자 둘 그리고 나 하나였다.

'아뿔싸!'

출발하는 택시의 기본요금이 3달러부터 시작했다. 그제야 불현듯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숙소에서부터 여기까지 2달러로 올 수 있는 거리가 절대 아니었다.

이 와중에 택시는 교통체증하나 없이 씽씽 달려가고 미터기의 숫자도 쭉쭉 변해갔다. 같이 탄 남자둘, 여자 둘은 택시요금 따윈 안중에도 없었고 경비행기 투어 얘기와 호주바다에 한 감탄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난 방금 전까지 그렇게 친절했던 파일럿의 존재와 세상 행복했던 투어의 시간을  까맣게 잊은 채 그저 계속 올라가는 숫자에만 혈연이 되어있었다. 숫자는 한 자릿수에서 두 자리 숫자로 바뀌었다.

10.

11.

11.50

내 심장은 콩닥콩닥 뛰기 시작하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여기서 나누기 다섯 명을 하면 내가 가진 2.5달러로 충분한데... 어쩌지? 숙소는 한참 남았고... 난 저들에게 뭐라고 말하지? 돈이 없다고 하면 돈도 없는 뻔뻔한 동양인이라고 욕할지도 모르는데... 진짜 어쩌지?'


12

미터기 숫자가 바뀔 때마다 일주일 전 번지점프할 때보다 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앞에 탄 남자들이 기사를 불렀다.

"기사님! 우리 저 앞 코너에서 세워주세요. 여기서 한잔 하기로 했거든요."

그리고는 내게 10달러를 주고는 내렸다.

'휴~'

일단 한 고비는 넘겼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아직 숙소까지는 거리는 제법 좀 남아있는 상태였고, 택시요금은 계속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13.

14.

15.

그때 나는 오랫동안 믿지 않았던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고, 어릴 적 잠깐 다닌 교회를 크게 부각하며 매달려보았다.

'하나님 제발 여기서 딱 멈춰주세요!! 제게 2.5달러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미터기가 딱 멈추게 해 주세요. 제발! 제발!"

15.5

 16

이제는 2.5달러를 가지고 택시를 탄 나 자신을 자책하기 시작했다.

'나도 아까 쟤네들을 따라 내릴걸 그랬나? 나중에 숙소에 도착해서 1/N을 하자고 하면 뭐라고 말하지? 오늘 처음본 사람에게  그것도 언제 떠날지도 모르는 배낭객처지에 돈을 갚을테니 나를 믿고 기다려달라고 해야 하나?'

 

"잠깐만요"

바로 그때였다. 뒤에 있던 두 명의 여자 중 한 명의 목소리였다.

"기사님, 여기서 장 좀 봐야겠어. 저기 마트 앞에서 세워주세요"

그들은 미터기를 힐끗 보고는 5달러를 내게 주며 내렸다.

얼떨결에 15달러를 받아 든 나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숙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녀들이 내린 뒤 택시는 또 달렸고 미터기의 숫자는 17을 가리켰다.

그리고 바로 숙소가 보였다.

숙소에 도착하자 기사가 미터기를 누르려는 찰나 17.5라는 숫자로 바뀌었고 나는 앞선 이들의 15달러와 나의 전재산 2.5달러를 합쳐 기사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삶에 있어  베푼자는 잊고 받은자는 기억해야한다.


남겨진 자.

잊혀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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