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한 번 오는 , 그것도하나밖에 없는 아주 귀한 손녀였기에 S양의 할머니는 올 때마다 100만 원씩 용돈을 주었다. 그녀는 수중에 현금을 가지고 다닐 수 없었기에 지인의 도움으로 계좌를 개설해 겨우 입금하는 법을 배웠다.
다음 해 방학 때에도어김없이 그용돈은 은행에 입금했다. 그다음 해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S양과 동대문시장을 쇼핑했다. 동대문시장 쇼핑 자라면 누가나 공감하겠지만 그곳은 쇼핑예상 비용을 10만 원만 잡고 가도 20만 원을 쓰게 되는 곳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S양은 물건을 사지도 않고 만지작 거리며 뜬금없는 말을 했다.
"근데 나 돈이 하나도 없어."
"무슨 소리야? 언니가 왜 돈이 없어?"
"아니, 나 수중에 한국돈이 하나도 없다고."
"아유~ 깜짝이야!! 언니 통장에 돈 많이 있잖아. 할머니가 준 용돈."
"기영아! 나는 한국은행이 제일 무섭고 싫다? 그래서 은행을 못 가겠어."
몇 년 전 S양은 혼자 은행을 간 적이 있었다.
은행 ATM기계 앞에서 입금이라는 말 외에는 아무리 읽어도 도통 모르는 단어들 뿐이어서 가만히 서 있었다고 한다. (그 시절 지금처럼 스마트폰을 꺼내 쉽게 검색해 볼 수 있는 기술은 없었다.)
송금 계좌이체 타행거래.
앞서 말한 대로 S양은 두바이에서 나고 자란 엄연한 외국인이기에 이런 한자어에는 더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 동안 화면만 뚫어지게 보며 멀뚱히 서있는데 은행직원이 다가와 물었다.
"손님, 어떻게 오셨어요?"
"아. 돈 좀 뽑으려고요. 그런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라서요"
"어.. 그래요? 그럼 창구에서 좀 도와드려도 될까요?"
S양을 의아하게 여긴 직원은 창구로 인계를 해주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돈 좀... 뽑으려고요."
"출금하시겠어요?"
"네? 그게 뭔가요?"
"돈 뽑으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네."
"그게 출금이에요. 손님. 신분증 먼저 주시겠어요?"
"신분증?? 신분증??"
"네. 손님. 신분증이요."
우여곡절 끝에 신분증을 건네받은 창구 직원은 더욱 의구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S양을 바라보면 계속 고개만 갸우뚱거리며 업무처리를 해주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이방인으로써 30년 가까이 살아온 S양은 그 직원의 눈빛이 왠지 불쾌하고 불편했다. 0.000001%의 인종차별도 느껴진다는 이방인들에게 그 느낌이 그렇게 유쾌할리 없었던 것이다. 그 후 그녀는 아예 은행을 가지 않거나 가더라도 입금, 입금만 반복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S양에게 잘못이 하나 있긴 했다.
"다들 나를 이상하게 쳐다봐서 나는 은행을 못 가겠어."
"그래, 당연히 이상하지! 언니. 언니이름이 정정순이인데... 만약 언니 이름이 제니 정, 브랜다 정 뭐 이랬어봐. 그 직원들도 아~ 외국인에서 오래 살다왔구나...라고 이해할 텐데... 언니 이름이 너무 한국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