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이 되었다. 한국에서 가끔 '3'이라는 숫자는 타인의 입을 통해 무게감이 더 느껴지곤 한다.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은 어제와 오늘 같은데 그들은 모두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이제 고3. 고3, 고3 "
"너는 이제 서른. 서른, 서른, "
공부는 하기 싫었지만 좋은 대학은 가고 싶었다. 크게 노력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길 바랐다.
"너는 00 대학에 합격할 거야."
그날은 같은 반 친구 두 명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진심으로 서로 통하고 있었다.
오늘처럼 날이 좋은 날, 공부하기 정말 아까운 날, 우리는 야간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학교를 탈출하기로 모의했다. 탈출 장소는 바로 우리가 지금 가장 듣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해 줄곳이었다. 그곳은 진학상담실도, 부모님도 선생님도 아니었다. 바로 그곳은 마음을 찰떡같이 맞춰줄 철학관이었다.
"어디 철학관이 유명하지?"
"달성공원에 가면 철학관이 많이 있다고 들었어."
"그래? 그럼 달성공원으로 가자. 그런데 너희들 얼마 있어?"
"나는 만원 조금 넘게 있어."
"나도 차비 빼면 만원 있어."
"나도."
이렇게 우리는 버스를 타고 40분 거리인 달성공원에 도착했다. 막상 와 보니 진짜 친구말처럼 철학관들이 일렬로 한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어디가 좋을까?"
"글쎄? 일단 한 번 둘러보자."
우리가 역으로 즐비하게 늘어나있는 철학관들의 관상을 먼저 보기 시작했다. 그중 마치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처럼 하얀 옷에 가슴팍까지 내려온 긴 수업을 쓸어내리는 할아버지가 눈에 띄었다. 우리는 일제히 그에게 이끌렸다. 먼저 철학관에 발을 절반을 밀어 넣은 체 물었다.
"할아버지 여기 얼마예요?"
"응? 너희는 뭐가 궁금한데? "
"저희 미래요."
"음~그럼 각자 만원만 내."
마치 엄청난 운명의 실타래가 풀리듯 뭔가 맞아 들어가는 이 느낌에 우리는 모두 얼굴이 동그래졌다. 한 명씩 쪼르르 철학관 안으로 들어가 막상 그의 앞에 앉으니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우리와는 달리 그는 우리 셋 모두에게 똑같은 세 마디를 했다.
"생년월일"
"음~ 천복을 타고났구나."
천복을 타고났다는 말에 우리는 일단 그에게서 절반의 신뢰를 잃었다. 저런 말은 우리가 듣고 싶었던 말도 아니었을뿐더러 그리고 누구나가 할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한 마지막 그 한마디는 바로 신뢰를 넘어 절망의 늪으로 떨어뜨렸다.
"저 대학은 어떻게 될까요?"
"음~ 대학은 반반이야."
"저는 대학이...?"
"음~너도 반반이야."
"저도 그럼 반반인가요?"
"그럼 너도 반반이다. 너희들 모두 애매해."
그 또한 우리가 듣고 싶었던 말은커녕 어느 누구도 차마 우리에게 하지 못했던 팩트를 날린 것이다.
사실 우리 셋은 모두 성적이 어중간했다. 그의 말대로 진짜 반반이었다.
그 후 우리 모두 정해진 사주를 거스르지 못하고 애매한 성적으로 애매한 대학을 그리고 애매한 대학 생활을 하다 모두 편입과 전과를 반복하며 졸업을 했다. 그 후 대학원을 진학하기도 하고, 유학을 가기도 했다. 다행히 좋은 곳에 취직도 했고, 조금 늦긴 했지만 착한 남편을 만나 결혼도했다. 결혼 후 집도 사고, 아이들도 잘 키우며 큰 무리 없이 모두 지금까지 잘 지내오고 있다.
이제와 돌아보니 우리 모두가 천복은 타고난 것 같기는 하다.
인생의 절반을 지금껏 무탈하게 지내온 것을 보면...
마음을 맞추지 못한 자
타고난 천복을 몰랐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