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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현중 Apr 02. 2023

이른 벚꽃

내가 따라가기엔 너무 벅차서

유달리 이른 벚꽃


 오늘 학원이 끝나고 벚꽃 구경을 하기 위해 벚꽃이 핀 길로 걸어왔다. 은은한 조명이 비치는 머리 위로 펼쳐진 벚꽃을 감상하기 위해,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 뚝방에 올라 나무 위를 바라보는데, 벚꽃이 없었다. 그곳에는 초록빛의 새 잎들이 오순도순 돋아나고 있었다. 벌써, 벚꽃이 진 것이다.


 올해는 유달리 벚꽃이 일찍 폈다. 매년 벚꽃이 필 때쯤이면 중간고사 공부를 하느라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었는데, 올해는 중간고사가 시작하기 한 달 전에 벚꽃이 피었다. 학교 생명과학 선생님께서도 이런 일은 특이한 현상이라고 하셨다. 


"목련과 벚꽃이 같이 피는 건 평범한 일은 아니죠"


벚꽃의 개화 시기는 점점 빨라져서, 목련과 같이 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변한 것은, 벚꽃뿐만이 아니었다.



벚꽃과 함께 빨라진 것들


  얼마 전에는 미용실에 갔는데, 미용사분이 내 나이를 여쭤보셨다.


" 지금 몇 살이에요? "


  난 태연하게 대답했다.


" 이제 고3이에요. "


  미용사분이 놀라시면서, 벌써 고3이 되었냐고 하셨다.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미용사 분이 인식하는 내 시간은 너무 빨라서, 내가 이해할 수 없었다.


  올해 초, chat GPT-3가 등장하면서 검색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하지만 내가 그것에 완벽하게 적응하기도 전에, 더욱 혁명적인 chat GPT-4가 등장하면서 다시 한번 인터넷의 생태계를 바꿔버렸다. 모두 내가 따라가기에는 너무 벅찼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세계가 나를 앞질러 가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학원 가는 길에 중학교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와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내 휴대폰을 보고 친구가 물어봤다.


" 그거 너 중학교 1학년때부터 쓰던 거 아니야? " 

 

  나는 중학교 때부터 휴대폰을 바꾸지 않아서, 옛날 폰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별로 인식하지 않고 있었는데, 새삼 내 휴대폰이 낡아 보였다. 색이 바랜 케이스, 살짝 금이 간 액정, 검은색 점이 생기고 있는 휴대폰 카메라까지. 나는 그대로인데, 내 휴대폰은 너무 빨리 변해버렸다.



내가 따라가기엔 너무 벅차서


  새삼 돌아보니, 주변이 많이 변해 있었다. 이제는 뭐가 바뀌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더 이상 길가에 민들레가 보이지 않아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목련과 벚꽃이 같이 피는 상황에도, 아무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세상은, 이제 너무 빨리 변한다.


  하지만 목련은 아직 그 자리에서, 그 시기에 꽃을 피운다. 나도 그렇다. 3년이 지났음에도 난 중학교 때처럼 글을 쓰고 있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같은 휴대폰 메모장에 글감을 메모한다. AI가 에세이를 쓰고, 챗봇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글감을 음성으로 메모하는 시대를, 내가 따라가기엔 너무 벅차다.



시간의 밀도와 나의 길


  시간의 밀도가 너무 높다.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들이 변화한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은, 이 변화를 모두 수용하는 것이 아니다. 빠른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목련처럼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기에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주변 꽃이 피는 시기를 보고 내가 언제 꽃을 피워야 할지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내년의 나는, 올해에 비해 많은 변화가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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