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의 겨울 저장식이 빚어낸 비움의 순대, 봄을 맞이하기 위한 식생활의
입춘에 명태순대를 먹는다는 말은 얼핏 낯설다. 봄의 문턱에 서 있는데, 왜 하필 겨울 생선으로 만든 순대일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입춘은 봄을 맞이하는 날이 아니라, 겨울을 정리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봄을 들이기 전에, 몸 안에 남아 있는 겨울의 무게를 내려놓는 시간. 명태순대는 그 전환을 가장 조용하게 도와주는 음식이다.
명태는 겨울을 통과하는 생선이다. 동해 북부와 북방 지역에서 잡히는 명태는 얼고, 말리고, 저장되며 긴 시간을 견딘다. 가장 화려한 제철의 맛은 지나갔지만, 대신 안정된 단백질과 담백함만 남는다. 입춘 무렵의 명태는 날카로운 기운이 빠지고, 몸에 부담을 주지 않는 상태에 이른다. 그래서 이 시기의 명태는 ‘지금 가장 맛있는 생선’이 아니라, ‘지금 가장 알맞은 생선’이 된다.
명태순대는 그 저장의 끝에서 만들어진다. 배를 가르고 속을 비워, 두부와 채소, 당면을 채워 넣는다. 이 조리 과정은 음식의 형태를 넘어 하나의 상징처럼 읽힌다. 비워낸 자리 위에 가벼운 것을 얹는 행위. 겨울 동안 쌓아 둔 식습관과 몸의 긴장을 정리하고, 다음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과정과 닮아 있다.
찜기에서 막 꺼낸 명태순대를 썰면, 얇은 껍질이 먼저 조용히 저항한다. 돼지창자 순대처럼 탄탄하지 않다. 칼이 닿는 순간, 명태의 살결은 쉽게 갈라지고 속이 드러난다. 단면에서는 두부의 고운 입자와 잘게 썬 당면이 먼저 보이고, 그 사이로 명태 살이 만든 은근한 윤기가 흐른다.
한 점을 입에 넣으면 껍질이 먼저 살짝 걸리고, 이내 부드럽게 풀린다. 속은 예상보다 포근하다. 물기를 꼭 짠 두부의 고소함이 바탕을 만들고, 당면은 부드럽게 이어진다. 김치에서 나온 달큰함은 강하지 않지만 분명하게 존재해, 이 순대가 밋밋한 음식으로 남지 않게 붙잡아 준다. 숙주와 부추는 향을 앞세우지 않고, 대신 씹는 결을 정리한다.
이 음식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맛의 속도다. 빠르게 밀려오지 않는다. 씹을수록 천천히 퍼지고, 먹는 리듬을 자연스럽게 늦춘다. 지방이 적고 간이 세지 않아 몇 점을 먹고 나서도 속이 무겁지 않다. 배를 채운다는 느낌보다, 속이 정돈된다는 감각이 먼저 남는다. 그래서 명태순대는 허기를 달래는 음식이라기보다, 몸의 상태를 조율하는 음식에 가깝다.
양념이 필요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우젓을 살짝 곁들이면 감칠맛이 또렷해지지만, 아무것도 찍지 않아도 충분하다. 자극을 더하지 않아도 이미 균형이 맞춰진 맛이다. 입춘 음식이 대체로 담백하고, 찌거나 데치는 조리법을 택하는 이유 역시 같다.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서 몸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명태순대는 봄을 부르는 음식이 아니다. 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몸을 비워 두는 음식이다. 겨울 동안 저장해 두었던 재료로 겨울의 식사를 마무리하고, 다음 계절을 위한 여백을 만든다. 입춘에 명태순대를 먹는다는 것은 봄을 앞당겨 환영하는 행위가 아니라, 계절의 속도에 몸을 다시 맞추는 선택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 맛. 먹는 동안보다 먹고 난 뒤에 더 분명해지는 음식. 명태순대는 그렇게 겨울과 봄 사이, 그 애매한 경계에서 제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이제, 조금 가벼워져도 괜찮다고.
음식 너머에 머무는 속삭임, 두부의 이야기( ˶˙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