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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BU Jul 04. 2022

'이모'는 처음입니다.

이런 이모라서 미안.








나는 이란성쌍둥이다. 






이란성쌍둥이라고 하면 흔히 성별이 다른 쌍둥이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별이 같은 자매이다. 이란성쌍둥이의 특징은 일란성쌍둥이들과 다른 게 전혀 다르게 생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그냥 보면 '자매인가?' 정도로 대부분 알아보시는 편이다. 아무래도 유전자가 어디 가겠나. 대화하는 거 보면 서로 호칭도 이름으로 부르고 반말로 하는 거 보고는 '친구사이인가? 굉장히 닮았네.'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외형적으로 우리를 쌍둥이라고 알아맞춘 사람은 없다.





 

쌍둥이 동생이 결혼 후 반년쯤 사촌오빠 결혼식 만났을 때 요즘 똥배가 나왔다고 그러더니, 얼마 뒤 그 똥배가 내 조카라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시간이 흐르고 나의 첫 조카를 낳았을 때 일이다. 






그 이후 나는 강제 '이모'가 되었다.  










불타는 고구마

 첫 조카는 50개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지 4일째 되던 날 조카가 태어났다. 예정일보다 빨리 진통이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쌍둥이 동생도 육아 휴직을 낸 지 4일째 되던 날 병원을 찾게 되었다. 정말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태어나자마자 조카를 마주할 수 있었다. 회사에 다니고 있었더라면 언제 보러 갔을지 까마득하다. 바로 직전에 퇴사한 회사는 지점 운영 직원으로 있었기 때문에 스케줄 제로 돌아가는 시스템이었다. 매달 휴무 일수도 고정적이지 못했다. 주 52시간제 도입 전이였기 때문이다. 한 달에 평균 6일, 적게는 5일~7일. 휴무일수는  본사로부터 공지사항이 내려온다. 퇴사를 하고 자유인이 된 나는 조카가 태어난 날 저녁시간에 면회가 가능한 타임이 있어서 가족들과 부랴부랴 보러 갔다. 조카와 첫 만남의 자리였다. 유리창 건너편에 있는 조카의 첫 느낌은 곱게 싸여있는 붉은 고구마였다. 바로 옆에는 일란성 여아 쌍둥이이라서 그런지 조그마한 고구마. 반대편 옆자리에는 조카보다 더 큰 고구마 같았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채 싸개에 싸여서 온몸을 꼬물꼬물 거리는 아가들이 쭈욱 있다. 마냥 신기했다.

 남동생과 우리들은 나이 차이가 나는 편이다. 6년 하고도 10개월이 차이 난다. 그래서 남동생 태어났을 때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불타는 고구마가 내 동생이라고?'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왜 막 태어난 얘기들은 거의 비슷비슷하게 생겼다. 태어난 몸무게에 따라 크기가 조금씩 차이가 난다. 어렸을 때 사촌언니가 우리가 태어난 모습을 보고는 엄마한테 "이모, 왜 원숭이를 낳았어?"라고 물어봤었다고 한다. 내 눈에는 불타는 고구마처럼 보인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내 조카는 "캡틴"

 첫 아이라서 산후조리원에서 지내겐 쌍둥이와 조카. 한동안은 영상통화나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다. 신생아였던 조카는 매일 자는 얼굴밖에 보지 못했다. 막 태어났을 때보다 붉은 기는 사라지고 얼굴 이목구비도 아주 조금이지만 미세하게 달라졌다. 그래도 신생아는 신생아인 거 같다. 쌍둥이인 동생이 낳았지만 누굴 닮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강호동 같아'라고 속으로 혼자 말했다. 아직 이름이 없어서 조카의 싸개 위에는 동생네 부부 이름과 태명이 적혀 있다. 내 조카는 뜻하지도 않게 태어나자마자 '캡틴'이 되었다. 이름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태명으로 불러야 하는데 '캡틴'이라고 입 밖으로 부르기 부끄러웠다. 이래서 태명은 부르기 편한 걸로 해야 하는 거 같다. 조리원에 있는 동안에 캡틴이는 항상 잠만 자고 있었다. 무슨 잠을 저렇게나 많이 잘까. 아기들은 먹고 싸고 자고 먹고 싸고 자고를 반복한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해 보였다. 


 조리원에서 나오고 바로 찾아가진 못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40~50 여일쯤 되었을 때 캡틴이 와 처음으로 만났다. 사진이나 영상통화 상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작았다. 병원 유리창 너머로 봤을 때 보다 더 작아 보였다. 여전히 캡틴이는 잠자고 있었다. 이 녀석. 궁금해서 물었다. "얘는 눈뜨고 있는 시간이 있긴 해?" 뒤척임 하나 없이 고대로 잠만 잘 수 있을까 신기했다. 너무 작아서 만지면 부서질까 무서웠다. 멀찍이 캡틴이 얼굴만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새까만 두 눈동자가 나타났다. 태어났을 때도 잘 안 울었다고 하더니 깨어났는데 울지도 않고 눈만 껌뻑이고 있고 있다. 내가 보이기는 하는 걸까. 아기들은 눈이 트이기 전에는 흑백사진처럼 보인다고 하는데 나도 검은색과 하얀색으로 만들어진 덩어리로 보이려나. 그래서 캡틴이 녀석 눈이 트이기 전까지 보라고 흑백 모빌을 만들어서 가지고 왔다. 조카가 처음이라 이모도 매우 어색하다. 


 그날 뜻밖에 태명의 뜻을 전해 들은 엄마와 나는 매우 충격이었다. 엄마도 내심 속으로 '캡틴아'라고 부르기 어색하고 힘드셨던 모양이다. 태명을 왜 '캡틴'이라고 했을 때는 '그렇구나'라고 다들 별생각 없이 지나쳤는데 막상 이름이 생기 전까지는 태명으로 불러야 하다 보니 어색해서 "왜 캡틴이라고 지었어?"라고 물었다. 쌍둥이 동생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열광적인 편은 아니라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하지만 그래도 당시 어벤저스 인기는 대단했다. 엄마도 어벤저스를 알고 계신다. 그리고 취향도 확고한 편이시다. 엄마랑 둘이서 어벤저스를 보러 영화관도 가고 어벤저스 콤보세트 구매하기도 했었다. 음료수병 캐릭터 피겨 골라 달라고 직원이 물었는데 내가 2개 다 골라서 혼이 난 적이 있다. '하나는 내 건데, 네가 왜 골라. 난 아이언맨 할 거야'라면서 혼이 났었다. 아이언맨 고를 것 같아서 물어보지도 않고 아이언맨과 토르로 달라고 한 상태에서 혼이 났었다. 다시 생각해도 억울 해던 기억이다. 그래서 엄마도 나도 의심치 않고 어벤저스의 '캡틴 아메리카'에서 따온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반전은 동생네 부부는 어벤저스 시리즈뿐 아니라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럼 내가 아는 '캡틴'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누구냐 넌? 캡틴아. 그냥 캡틴=짱, 최고 지위관 그런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나는 10달 동안 내 조카는 어벤저스의 '캡틴'인 줄 알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나뿐만이 아니라 엄마도 그런 줄 알고 계셨다는 것이다. 의미를 알고 나니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우리 집 화장실 슬리퍼랑 내 외출용 슬리퍼 디자인이 '캡틴 아메리카' 방패 무늬였다. 엄마가 그거 보고 "우리 캡틴이, 캡틴이" 했는데... 다른 캡틴이었네.










캡틴이 100일동안 열심히 보라고 만든 흑백 모빌 (이 모빌은 조카이 태어나면 돌고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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