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 레온을 빠져나와 산 마르틴 델 까미노를 향해 걸었다. 참으로 지루한 길이었다.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 옆을 걸었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목이 매캐했다. 고속도로 갓길을 무모하게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머릿속에는 단어 한 개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바로 ‘포기’였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데 소질이 없다. ‘포기할 용기’라는 표현을 처음 들었을 때 이질감을 느꼈다. 이 세상 누군가는 포기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구나. 나는 포기하는 게, 도망치는 게 쉬운 사람이다.
순례길 여행을 나서기 전, 심리 상담을 받았다. 어떤 사건이 있어서 받은 것은 아니다. 나는 때때로 우울했고 자주 내가 미웠다. 이제 그것도 지긋지긋해 끝장을 보고 싶었다.
상담실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한 가지 발견이 있었다. 나는 무언가를 끈기 있게 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죽도록 미웠다. 한심했다. 나는 수시로 진로를 틀었고 지금 내 손에 남아 있는 건 없었다. 퍼스널 브랜딩 시대라고 한다. 한 가지만 들이 파면 그게 돈도 가져다주고 사람도 모아주고 그런다고 한다. 암만 생각해도 내가 떠들어 댈 수 있는 주제, 꾸준히 한 덕에 지식도 쌓여있고 관심도 쌓여있는 그런 주제는 없었다.
제이는 휴일이면 물개마냥 방바닥에 누워 있길 즐기는 나를 알기에 수십 번을 되물었다. 정말, 정말 산티아고 순례길 걸을 거냐고. 괜찮겠느냐고. 그때마다 고집스럽게 ‘아 진짜 간다니까!’라고 외쳤던 이유도 다 여기에 있었다. 이것만큼은 내가 해내겠다. 성취의 단맛이 간절했다.
출발 전 그 간절함은 시간과 함께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걷는 건 힘들었고, 풍경도 더 이상 새롭지 않았다. 나는 늘 그렇듯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하지만 차마 제이에게 말할 수 없었다. 한 달이면 지상 천국이라는 하와이도 갈 수 있었고, 푸른 발 부비새와 바다 이구아나의 갈라파고스 섬도 갈 수 있었다. 그 선택지를 모두 마다하고 여길 고른 건 내 고집이 팔 할이었다. 나도 염치는 있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네이버에 ‘산티아고 포기’를 검색했다. 검색 결과는 신통치 않았지만, 나는 결심을 굳혔다. 그래, 억지로 걸어서 뭐 하겠어? 내일 아침 제이한테 얘기하자.
어렵게 꺼낸 내 이야기를 들은 제이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이 길을 포기하는 건 괜찮아. 그런데 나는 네가 앞으로 삶에서 조금 힘들다고 도망가는 습관이 들까 봐 그게 걱정이야.”
이 말은 빠르게 날아와 내 심장에 꽂혔다. 10점 만점, 것도 정중앙에 박힌 퍼펙트였다. 그가 했던 말을 문자로 옮기는 이 순간에도 가슴이 욱신댄다. 그는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정확히 내 콤플렉스를 저격했다. 나는 또 포기하려 하는구나.
처음에 왜 이 길을 걷기 시작했는지 선명하게 떠올랐다. 일단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내가 이것만은 해냈노라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내 콤플렉스에게 먹이를 더 줄 순 없다.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배낭끈을 조였다. 그리고 걸었다. 아픈 곳을 찔려서 눈물이 찔끔 났지만, 눈물마저 안 흘릴 순 없다. 일단 가보자. 성취의 단맛을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