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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슬 Jun 29. 2024

마흔 전,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서른아홉에 결혼해서 참 다행이다

머릿속이 하앳다. 내가 이렇게 남편에게 의지하고 있었다고? 남편의 1박 2일간의 서울 출장 통보에 마음이 잔뜩 찌푸려졌다. 결혼 전 40년이라는 세월 동안 과감하게 혼자 계획하고 거침없이 혼자 실행하며 살아온 내게 혼자 보내는 1박 2일이 무슨 대수라고. 하지만 결혼 후 모든 것이 변했다. 남편이랑 함께 결정하고 싶고 오히려 남편이 대신 선택해 주길 바라는 몸이 자꾸 베베 꼬이는 약간의 의존병이 생겨버렸다고나 할까. 혼자 33개월 아이와 둘이 지낼 생각을 하니 약간 무섭기도 하고 쉴 시간이 제로구나 생각하니 아찔하다.  


오랫동안 솔로로 살아서 그런지 결혼하고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혼자 있는 동안에는 내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남편이 있는 유부녀라는 사실이 낯설기도 하고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언제부터 내가 혼자가 아니었다고... 지금도 나는 내가 미혼으로 살고 있는 꿈을 꾼다. 꿈속의 나는 43살. 그리고 아직 미혼이다. 꿈속이지만 마음이 불편하고 이건 아니지 싶어 꿈임에도 불구하고 꿈일 거라고 스스로 위안한다. 이렇게 내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서른 후반까지 솔로였던 내가 소심한 마음에 겪었던 마음의 고통이 너무 컸었기 때문이었다. 노처녀라서 남자한테 수작 부린다는 소리 들을까 싶어 스스로에 대한 단속과 나이 먹은 여자가 왜 사람을 안 사귀나 싶은 수상한 의심에서 자유롭게 된 순간 나는 그 자유를 달콤한 구속이라는 옷으로 오랫동안 갈아입고 싶었나보다.


모든 게 불안하고 두려웠던 그때였다. 우연히 엄마 친구분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희한하게 내 전화번호가 남편의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만나기 3년 전 엄마 친구분이 서로 소개해주고 싶어 연락처를 줬었는데 그때 나는 사실 결혼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마흔의 공포를 안고 남편을 만났는데 흰색 뿔테 안경에 공무원이었던 그의 직업답게 완전한 회사원 스타일의 남편이 언덕배기에 있던 카페 주차장에서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뭐랄까. 이번에도 글렀나.. 그런데 이번에는 소개팅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달라져 있었다. 9개월 전 했던 소개팅만 해도 내가 중요시하는 치아의 고른 상태랄지, 말하면서 툭툭 튀어나오는 빈티와 지루함이랄지, 뭔가 끊임없이 탐색하는 나의 뱀 같은 뇌의 레이더에 그가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냥 오늘은 동갑내기 친구와 현재 나의 고민이나 상담하면서 가볍게 대화나 하고 가야겠다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런데 그 무렵 나의 가장 큰 이슈는 본가에서 독립을 하기 위해 오피스텔 청약을 할까 말까였다. 얼마 있지도 않은 돈자랑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나는 계속 그 사람의 의견을 물어보고 또 생각나면 다시 물어보고 그 사람의 의견을 끊임없이 갈구했다. 그 갈구가 나의 사랑에 대한 구애였을까.


지금도 그때의 내 마음을 알 수 없다. 그 남자는 소개팅을 하고 나서 정말 루틴처럼 나에게 연락을 해줬다. 이 남자를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남편의 꾸준함으로 무장된 성실함은 그 무엇보다도 나를 그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주말을 포함해서 일주일에 4번, 그렇게 그는 빠지지 않고 내가 있는 도시로 어둠을 뚫고 들어왔다. 주중에는 꼭 교회 앞에 주차를 했는데 우리는 빨간 십자가를 보며 밀회를 즐겼다. 그는 표현은 서툴렀지만 역시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이 남자 만나길 잘했네 싶어 1년 넘게 만난 후에도 청혼이 없자 '그래서 결혼을 언제 할 거냐고요' 하고 나는 따지듯이 물었다. 그리고 3개월 만에 우리는 코로나 상황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객은 양가 50명씩. 오히려 늦은 나이에 하는 결혼에 부를 사람도 마땅치 않았던 나에게는 호재였다.   


그런데 나는 특이하게도 함께 있을 때는 그렇게 많이 의지하다가도 혼자 있는 상황이 오면 그동안의 산전수전 겪어온 내공으로 인해 전투모드가 된다.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려 주부로 생활하던 킬러가 날아오는 칼을 한 손으로 척하고 받아내는 것처럼, 이게 40년 내공이라면 내공이다. 나는 그렇게 남편을 보내고 독박육아 모드로 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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