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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슬 Jun 30. 2024

엄마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엄마의 도시락, 그건 엄마의 바람이었지

서른 후반이 되면서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어차피 늦은 거 결혼할 사람은 늦게 만나더라도 제발 아기만은 빨리 찾아오게 해 달라고.. 언제쯤 결혼할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결혼이 정말 하고 싶은 나에게 마흔이 다가오는 것은 정말 마음의 초가 바싹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밤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하면서 답답한 마음에 눈물로 베개를 적시는 일이 잦아졌다.


이런 나의 눈물이 하늘에 닿은 걸까. 신혼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임신테스트기는 희미하지만 두줄을 그어줬다. 너무 희미해서 긴가 민가 했던 것은 너무 초기에 몸의 변화를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임신 기간은 나에게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 주었다. 매번 산부인과에 가는 일은 힘들었지만 성실한 남편은 항상 함께해 주었고, 태아가 자라나며 형태를 갖추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 내 안에 생명을 품고 있는 풍만한 기분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옛말 틀린 것 없다고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다는 말은 역시 진리였다. 아기가 태어나고부터 나의 하루는 아니 자면서까지도 아기의 시간으로 흘러갔다. 그래도 어느 정도 자라서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면서부터는 확실히 숨통이 트인다. 어린이집 가있는 시간에도 아이 걱정과 아이 일로 시간을 보내긴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짧게 일도 구했고 박사논문도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인생은 항상 쉽게만 흘러가는 것이 아님이 분명했다. 살림이라고는 본격적으로 해본 적 없이 결혼한 나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음식을 전공했던 내가 음식을 못한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 그 자체였다. 그러던 차에 어린이집에서 소풍을 간다며 도시락을 싸 오랜다. 이제 겨우 20개월 아기에게 도대처 무슨 도시락을 싸줘야 한단 말인가... 워낙 입이 짧은 우리 아기, 매끼 갓 만들어 대령한 음식도 먹을 둥 말 둥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데 말이다. 나는 2박 3일간 깊은 시름에 빠졌다. 인스타에 #어린이집 #소풍 #도시락 #아기도시락 등의 헤시태그를 붙여가며 꽤 괜찮은 도시락 신을 발견했다. 갖은 솜씨를 부린 멋진 도시락들이 이렇게 많다니.. 엄마들 정말 대단하지 싶었다.


도시락에 빠져있다 보니 갑자기 우리 엄마 도시락도 생각이 났다. 삼 남매를 둔 우리 엄마는 항상 일을 했다. 어렸을 때는 그래도 박스 접기나 파자마 실밥 떼기, 가짜꽃 만들기 같이 집에서 하는 부업을 했었는데 초등학교 다닐 무렵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엄마는 열쇠공장을 다녀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는 일이 잦았다. 야근을 하면 야근 수당을 받을 수 있어 엄마는 열심히 돈을 벌었고 작업 반장까지 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공장을 다녔다. 그래서 그랬을까. 엄마의 도시락은 엄마의 바쁨처럼 바빠 보였다. 계란 프라이는 소금이 골고루 섞이지 않아 잘못 씹으면 소금이 덩어리 째 씹힐 정도로 바빴고 커다란 햄은 들쭉날쭉한 모양처럼 바빠 보였다. 


혼자 먹는 밥이라면 엄마의 사정을 아는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친구들과 다 같이 먹는 밥은 게다가 내 반찬이라도 집어먹다가 소금 덩어리라도 씹히면 어쩔까 싶어 나는 도시락 뚜껑을 열자마자 내 반찬을 허겁지겁 해치웠다. 물론 내 도시락처럼 바빠 보이는 도시락도 있었지만 친구들의 도시락은 간장불고기 위에 가지런히 깨가 뿌려져 있거나 계란말이도 가운데 김이 들어가 가지런히 줄 맞춰 있는 단정하고 가지런한 도시락들이 많았다. 다행히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도시락이 단체 급식으로 바뀌면서 그나마 밥 먹는 일이 크게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다만 그때는 갑자기 들어가는 급식비가 미안해서 가끔 급식을 먹지 않는 일로 나의 곤혹스러움을 대체했었지만 말이다.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내 도시락을 만들었을까. 내가 아기 도시락을 만들 때 우리 아기가 잘 먹고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주길 바라는 것처럼 우리 엄마도 그랬을 텐데 내가 이런 마음으로 도시락을 열었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그때의 힘듦이 생각나서 우리 아이에게는 최대한 천천히 예쁘게 도시락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결국은 어찌어찌 인스타의 그림처럼 얼추 비슷하게 만들어 보내긴 했지만 많이 먹지는 못했다고 어린이집 선생님이 전해줬다. 나는 엄마에게 엄마의 도시락에 대해 진지하게 말해본 적은 없다. 말 못 하는 지금의 우리 아이처럼. 하지만 어쩌면 엄마는 그 바쁜 시기에 삼 남매의 성장기에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도시락을 싸서 학교를 보냈을 것이다. 사랑하는 내 아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의 바쁨이 다 나를 위한 바쁨이었겠구나 싶어 그 시절 엄마에게 감사함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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