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이러면 짐싸서 나가겠습니다.
주말 내내 두살 딸아이와 놀아주고 씻기고, 삼시 세끼 밥 차려 먹이고 최애 상점 다이소와 GS25를 들락날락 하다가 일요일 저녁 잠자리에 누우면 정말 눈앞에 별이 핑핑 돈다. 아 이러다 큰 병 생기면 어쩌냐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오늘도 육아는 장난이 아니구나를 새삼 느끼며 잠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의 등원이 예정된 상큼한 월요일을 맞이하게 되는데 감히 이 신성한 월요일에 흠집을 내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남도 아닌 남편이다. 남편의 이상 행동이 감지된 건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남편은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결혼하면 어떤 것 때문에 싸우게 될까 상상도 해 보았지만 둘 다 내성적이며 소심하고 크게 감정 기복도 없는 것 같아 크게 거슬릴 일이 없을거라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결혼하고 보니 이 남자에게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어느 기간 동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나 할까. 그렇다. 우리는 모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인정한다. 하지만 겨울잠을 자는 동물도 아니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때면 깊은 동굴로 들어가듯 하루 종일 잠을 잔다거나 우울 모드로 하루 종일 무기력하게 앉아 있다던가 해서 내 속을 터지게 하는 일이 종종 있다. 차라리 눈앞에 안보이면 이 답답함이 조금은 경감될 듯 한데 눈앞에 턱 앉아있으니 이건 피할수도 없다!!!
그럴때면 아 지금이라도 그 유명했던 <화성남자, 금성여자> 라도 찾아서 다시 읽어봐야 하나. 내가 남자를 잘 몰라서 그런걸까, 아니면 이 남자 우울증 같은 질병이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책내용이 어렴풋이 기억나긴 하는데 동굴 어쩌고 했던 기억도 나고 그럴 때 가만 두라고 했던가 어쩌라고 했던가 가물가물했던 내용이 있어서 도서관 앱을 뒤적뒤적도 해본다. 왜 또 동굴로 들어간 걸까. 내가 토요일에는 분명 친구들 만나라고 시간도 빼주고 일요일에는 본인이 키즈카페 데리고 가겠다고, 토요일은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겠다고 해서 내가 분명 그러라고도 흔쾌히 승낙했는데 막상 일요일이 되니 폐인 모드를 뒤집어 쓰고 내속을 터지게 하네...
월요일 아침, 남편과 딸아이가 각각 출근과 등원을 하고 난 후 나는 인사이드아웃2를 보러 갔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의 상큼한 월요일을 그냥 날려버릴 것 같아서였다. 영화관은 10시 30분이라는 시간 답게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오랜만에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들이 나와서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조명해준다. 아...2015년에 처음 봤을 때는 뭔가 신선하다고 느꼈는데 아 이제는 내가 세월의 풍파를 제대로 맞았나보다. 디즈니, 픽사 영화를 내가 가장 좋아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내 마음이 왜 이러지. 앗 그냥 그렇다!!!너무 자극적인 영화를 많이 봐서인가 영화 시작하고 몇분이 지나지 않았는데 결말까지 답이 나온다. 동심을 일깨워주는 영화인데 평점도 좋은영화인데 아 이런....
그래도 한가지 교훈이 있었다. 그건 바로 사춘기 마음을 바라보듯 남편의 마음을 바라보자였다. 사춘기 소녀는 불안이, 당황이, 따분이, 부럽이가 나타났다면 사십춘기 남편의 마음에는 무력이, 귀찮이, 우울이, 무관심이가 나타났다고 생각한다면...그래 우리 남편이 유별나서가 아닐꺼야. 우울증이나 갱년기가 아직은 아닐꺼야. 단지 사십춘기의 마음에 여러가지 마음이 추가되서 잠시 이러는 걸꺼야. 라고~그래야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면 뭐라도 해야지...그렇지만 남편!!!나의 갱년기 역시 기대해주길 바래. 지금은 내가 참아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