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필요한 건 단지 60세 정년이었다
어디서부터 말을 풀어내야 할까.
매번 무언가에서 떨어지는 나에게 이번만큼은 유독 강한 충격과 좌절감을 안겨준 경험이었다.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 건, 내가 그만큼 고집스러워진 탓일까.
우연히 지인에게 농촌진흥청 산하 기관의 연구보조 자리 공고를 들었다.
대규모 공무직 채용이라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이었지만, 정년 60세 보장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요즘 같은 세상에, 어린아이를 키우는 내 형편에는 딱 좋은 자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마음 한켠에는 불안도 있었다.
전공은 식품 관련이지만, 식생활영양과 연구보조라 영양사 자격증 소지자와 붙는다면 약간 불리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직무 내용 중에는 식생활 콘텐츠 제작, 식품 소비 트렌드 분석도 있었기에
‘그래, 이건 나에게도 기회일 수 있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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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나이였다.
지원서를 쓸 때는 별생각이 없었다.
공고를 알려주고 함께 지원한 언니가 나보다 여덟 살 정도 많았고,
연봉이나 대우가 젊은 친구들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면접장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내가 입고 간 검은색 셋업에 질끈 묶은 긴 머리. 비슷한 차림의 앳된 얼굴들이 가득했다.
그래.
나는 81년생이다.
어디서든 팀장쯤은 맡을 나이.
아무리 마음속으로 긍정회로를 돌려봐도, ‘내가 여기 왜 있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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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차를 내고, 아이를 재워놓고 밤늦게까지 면접 준비를 했다.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안정액도 샀다.
낡은 구두 대신 새 구두를 사고, 재킷도 새로 사 세탁소에 맡겨 긴소매도 잘라놓았다.
3시 40분 면접이었지만, 실제로 들어간 건 5시 20분이었다.
긴 기다림 끝에 문이 열리고, 3배 수로 뽑는 자리라 나를 포함한 세 명이 함께 들어갔다.
두 명은 영양사로 보였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쯤.
나는 첫 번째 순서였다.
워낙 새가슴이라 자기소개만큼은 완벽히 외워 갔지만, 막상 입을 여니 몇 번이나 멈칫했다.
그래도 끝까지 말했다.
떨렸지만, 내 이야기를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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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게 다였나 보다.
두 번째 지원자가 자기소개를 시작할 때, 면접관의 표정이 달라졌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지원자는 실무 경험이 풍부한 영양사였다.
그때부터 분위기가 기울었다.
가운데 앉은 여자 면접관은 나에게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오직 두 사람에게만 향했다.
“이 자리에 만족하지 말고, 연구사로도 꿈을 가져보세요.”
그녀의 말은 훈화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그들의 관심 밖이라는 걸 깨달았다.
면접 중에 이렇게 대놓고 무시해도 되는 걸까.
나름 공공기관에서.
분명히, 나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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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이 끝나고 나오자, 단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얼른 집에 가고 싶다.
잠도 못 자고, 허기지고,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집까지는 멀었다.
오는 길에 GPT에게 물었다.
‘면접 분위기가 이랬는데, 합격 가능성이 있을까?’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가능성은 낮아요.”
나도 이미 느끼고 있었지만, 누군가 그렇게 말하니 이상하게 더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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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체 뭘 먹고살아야 할까.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다.
박사라고 해도 자격증이 열댓 개 있어도 경력이 풍부해도 나이 들면 기회가 줄어드는 현실,
그 모든 게 한꺼번에 몰려왔다.
면접에서 나는 경영학 박사이지만,
주제는 식품 소비자 행동을 연구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여면관은 이렇게 말했다.
“경영은 주제를 다양하게 쓸 수 있잖아요.”
선을 긋는 말투였다.
그래, 당신 눈에는 내가 어쩌면 한심해 보였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그렇게 느슨하게 살아온 사람은 아니다.
누구라도, 그 자리에 앉을 만한 사정과 이유가 있다.
이 나이에도 덜덜 떨며 구석에서 면접을 기다리는 내 모습이 생각나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