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면사무소 풍경

면사무소 창구에선 매일, 작은 드라마가 펼쳐진다

by 보석바

날구지로 시작된 하루.


어젯밤 꿈자리가 사납더니, 아침 출근길에 며칠 전 나에게 한바탕 하고 가신 할머니의 힘찬 발걸음이 눈에 들어왔다.

‘아, 예사롭지 않다.’


9시 칼출근인 나는 급히 차를 몰아 주차장에 세우고, 전속력으로 사무실 의자에 착석했다.

역시나 슬픈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 힘찬 발걸음의 주인공은 내 앞에서 멈춰섰다.


사실 어젯밤, 이 할머니 건이 떠올라 잠이 오질 않았다.

내 업무 중 하나가 ‘에너지바우처’인데, 기초수급자 중 노인이나 장애인, 어린이 등이 지원 대상이다.

며칠 전, 이 할머니께서 “내 집 전기요금이 에너지바우처에서 빠져나갔는데, 같이 사는 사람이 내 바우처를 빼앗아 썼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같이 사는 사람’은 단순한 동거인(연인 관계는 아님)일 뿐이었고, 전기세 감면 신청도 본인 명의로 되어 있었다.

나는 “전기요금은 두 분이 상의해서 해결하셔야 한다”고 돌려보냈다.


그런데 어제는 마을 이장님이 전화를 걸어와 사정을 묻더니, 오늘은 결국 그 동거인까지 대동하고 오셨다.


알고 보니 사정은 이랬다.

할머니 집을 빌려 사는 분이 기초수급자인데, 그분이 전기세 신청을 하지 않아 같은 주소지인 할머니의 바우처에서 전기요금이 자동 차감된 것이었다.


할머니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이 사람이 내 카드 다 빼앗아가서 다 썼다, 당장 전기세 환불해달라!”

며 난리를 치셨고,

함께 온 남자분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목청을 높였다.

모든 시선이 내게 집중되는 순간,

하… 식은땀이 맺혔다.


일단 두 분을 진정시키며 자리에 앉히고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는 “저 사람이 내 카드를 써서 신용불량자로 만들고, 집을 엉망으로 만들어 살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남자분은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며 “할머니가 세간을 다 부숴서 난장판이 됐다”고 억울해하셨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분이 창백해지며 식은땀을 흘렸다.

“119 좀 불러주세요…”

급히 119를 불러 구급차에 태워 보냈다.


할머니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채, 옆자리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셨다.

나는 환불신청을 도와드리고, 겨우 돌려보냈다.


몇 시간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경찰이 찾아왔다.


‘하… 오늘 무슨 날인가.’


나중에 복지팀에 물어보니, 두 분이 또 싸워서 경찰이 출동했다고 했다.

창밖엔 비가 내리고,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이게 인간사일까.

누가 이 할머니를 이렇게 무섭게 만든 걸까.

세상에 이런 일들이 매일 일어난다는 게,

그저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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