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_전경린

나는 다시 전경린을 읽고, 나를 떠올렸다

by 보석바

소설을 읽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 20대 후반쯤이었을 것이다.

그때 읽었던 책 중 하나가 전경린의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였다.

지금은 내용이 희미하게 흐려졌지만, 감정의 잔향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처음엔 제목이 시 같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어렵다고 느꼈고, 세 번째는 조금 충격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던 감정들이, 지금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시간이 나를 그렇게 데려다 놓은 걸까.


그 이후로 나의 책장은 추리소설과 자기계발서로 채워졌다.

그러다 어느 날, 도서관 책장 사이에서 ‘전경린’이라는 이름을 보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는데,

그 마음은 책을 읽는 동안 묵직한 울림으로 ‘텅’ 하고 다가왔다.


‘전경린’이라는 이름엔 묘한 반전이 있다.

전경순이나 전경진처럼 동그란 이름이 아니라,

전경린—어딘가 날카롭고 단단한 느낌.

마치 둥근 솜뭉치를 칼로 단칼에 베어내는 듯한 이름.

그의 문장은 그렇게, 인간의 내면을 글로 촘촘히 디자인한다.



세 여성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공명


책은 윤선, 호은, 승지.

이 세 여성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대학생 호은은 이혼한 엄마 윤선과 떨어져 살다가 다시 함께 지낸다.

그러던 중 이혼한 아버지는 새로운 여자와의 관계에서 생긴 승지를

호은에게 맡기며 윤선에게 돌봐달라 하고는 어딘가로 떠나버린다.


“말이 되냐?”

이 대목에서부터 내 안의 아줌마 오지랖이 파닥거린다.

‘무슨 이런 몰염치한 인간이 다 있어. 윤선 씨, 제발 이 아이 받아주지 마요.’


하지만 윤선은 결국 승지를 집안으로 들인다.

책을 읽을수록 승지의 처연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반복되는 공허한 날들 속에서,

무엇으로 내 삶을 채울 수 있을까.”



나의 20대, 그때의 호은


세 인물 중 내가 가장 몰입하게 된 사람은 뜻밖에도 호은이었다.

20대 초반의 대학생, 그 막막한 시절의 호은.


웃기지 않은가. 지금의 내가 가장 깊이 공감한 인물이

20대 초반의 대학생이라니.

하지만 이해된다.

그때의 나 역시 아무리 휘저어봐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던 시절을 살았으니까.


책을 덮고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대학생 시절의 고민들이 펼쳐졌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을 때,

‘꿈이구나’ 싶어 안도했다.

그만큼 그 시절의 나는 힘들었던 거다.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삶


책을 읽는 내내 ‘출산 과정’이 떠올랐다.

갓 태어난 아이의 몸에서

온갖 호르몬이 씻겨 나가는 그 순간처럼,

나도 이 책을 통해 오래 묵은 감정들을 조금 씻어낸 것 같다.


거의 20년 동안 부모라는 환경 안에서 자라온 아이,

그 안에서 벗어나 독립된 인간으로 살아가는 호은을 보며

나는 나의 아이를, 그리고 나 자신을 떠올렸다.


‘아이의 엄마로서의 나’도 좋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정말 아이 엄마가 맞을까?”

어딘가에 아이를 잠시 두고 와도

혼자인 내가 낯설지 않을 것 같은 순간.


아이도, 나도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소설이 참 좋았다.

전경린의 문장 속에서 나는,

다시 나의 20대와 마주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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