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사무소 민원 주인공은 나야나

feat.하루라도 바람 잘 날 없음

by 보석바

“내가 말이야, 내가 누군지 알아? 왜 눈을 그렇게 떠?”

오늘도 어김없이 면사무소 민원 창구 앞에서 작은 드라마가 펼쳐졌다.


‘오늘의 민원 픽미업’에 뽑힌 101번째 주인공은 누굴까 고개를 살짝 돌려 쳐다보려는 순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어느 농가 어르신.


헐레벌떡 창구로 다가오시더니 단도직입적으로 소리치신다.


“왜 나는 약 안 줘요?”


“네? 무슨 약이요…?”


그 순간부터 시작된 스무고개 타임.

머릿속으로 최근 배부했던 것들을 쭉 되짚어본다.

가축 폭염 스트레스제 나갔고, 살충제 나갔고, 며칠 전엔 문자 안내까지 보냈던 면역증강제도 있었지.


“혹시 문자 받으셨어요?”


“뭔 문자를! 문자를 받은 사람만 약을 줘?”


다시 울려 퍼지는 고음 샤우팅.

급히 창고 구석에서 면역증강제를 들고 와 보여드리자,


“맞아 맞아, 이거야. 한우협회에서 면사무소 가보라더만.”


아, 이번엔 제대로 맞췄다 싶어 기분 좋게 배부 명단을 확인했는데,

이미 수령자 사인이 떡하니 적혀 있는 게 아닌가.


“아… 이거 쉽지 않겠다.”


설명하려는 찰나, 뒤에서 또 다른 민원인이 팔을 휘두르며 다가오고,

옆에서 돕겠다고 나선 기간제 동료는 오히려 불을 지핀다.


“왜 저한테 그러세요? 담당자한테 말하세요.”


가만히만 있어줘도 될 일을 키우고야 마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 말 그대로 따라 했다가 결국 민원인은 폭발했다.


“됐어! 안 받아. 이거 내가 사인한 것도 아냐. 내 얼굴 본 적 있어?”


그리고는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셨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분 말씀도 일리가 있었다.

정말 안 가져가셨는데 명단에 사인이 되어 있었다면,

누구라도 화가 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때 나는 내 입장만 지키려다 정작 이야기를 더 들어주지 못했다.

조금만 더 어른스럽게, 조금만 더 여유롭게 대응했더라면

그분도, 나도 마음이 덜 상했을 텐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부는 민원 바람 속에서,

나는 아직도 배우는 중이다.

오늘도,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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