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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Nov 06. 2020

13. 밤의 외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했다는 사실이 기뻤다.
대단치도 않고 잠시 도와준 것뿐이지만 능동적인 행위였다.
나는 수동적이기만 한 생활에 넌더리가 나 있었다. p.215



제인과 로체스터의 첫 만남은 문학사(?) 중에서도 손꼽는 명장면이다. 1월의 어느 오후. 제인은 편지를 부치기 위해 3킬로미터쯤 떨어진 헤이로 외출을 나선다. 완벽한 고독과 적막감이 감도는 길. 나무들은 벌거벗고 살을 에이는 듯 추운 날이다. 제인은 어느덧 언덕 꼭대기에 달이 걸리기 시작하는 숲길을 걷는 중이다. 갑자기 섬세한 숲의 파동과 속삭임을 깨뜨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말발굽 소리. 북잉글랜드 정령처럼 생긴 커다란 개가 미끄러지듯 지나가는가 싶더니 그 뒤로 말을 탄 인간 사내가 나타났다. 몇 초 후. 제인은 미끄러지는 소리와 쿵, 하고 넘어지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거기엔 말에서 떨어진 한 남자가 혼자 일어서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고, 제인은 그 남자에게 다가간다. 


서른다섯 쯤 되어 보이는 그 남자. 중간 정도 키에 어깨는 떡 벌어지고, 얼굴은 가무잡잡하고 이목구비는 험상궂다. 한마디로 전혀 잘생기지 않은 용모. 친절하지조차 않다. 제인이 도와주겠다고 하자 첫마디가 '그냥 한쪽이 비켜서 있으시오." 제인이 서술한 로체스터의 첫인상이다. 


내가 말을 걸었을 때 이 낯선 사람이 웃으면서 상냥하게 대했다면, 도와주겠다고 했을 때 명랑하게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거절했다면, 나는 다시 물어봐야 한다는 사명감도 없이 그저 내 갈 길을 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거칠게 대하는 사내가 편했다. 사내가 가라고 손짓을 해도 나는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인적이 드문 곳에서 혼자 두고 떠나지 않겠어요. 당신이 말을 타고 가는 모습을 보고 가겠습니다."


제인의 말 마따나 그 사건은 '그다지 중요하지도, 낭만적이지도, 흥미롭지도 않'다. 그저 단조로운 생활에 한 시간 동안이나마 변화를 주었을 뿐. 도움이 필요해 도왔고, 무슨 일인가 했다는 사실이 기뻤다. 하지만 그건 '능동적인 행위'였고, 그녀는 마침 '수동적이기만 한 생활에 넌더리가 나 있었'기에(p.215)  그 사건은 그녀의 마음에 조용한 파문을 일으킨다.


손필드 저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손필드 저택의 문지방을 넘는 것은 고인 물 같은 삶으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그 고요한 현관을 지나서 어두침침한 계단을 올라가 작고 쓸쓸한 내 방을 찾아 들어가고, 차분한 페어팩스 부인을 만나고, 오로지 부인만을 벗 삼아 긴 겨울밤을 보내는 것은 이번 외출로 깨어난 희미한 흥분을 억누르는 일이자 내 감각에 날마다 똑같고 너무나 평화로운 생활이라는 보이지 않는 족쇄를 채우는 일이었다. 이제 나는 안전하고 안락한 생활이 고맙지 않았다. 그동안 힘들고 불안한 삶의 폭풍 속에 내던져져 있었고, 거칠고 쓰라린 경험을 통해 지금처럼 평온한 삶을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이제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렇다. 그것은 '너무나 편안한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지겨워진 사람이 긴 산책을 한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리고 그 사람처럼 나도 움직이고 싶다는 바람을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자, 나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내 글이 읽을 만한지, 내가 쓸 만한 작가인지, 이 일이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는 질문으로. '그냥 적당히 알바나 뛰며 살림에 보탬이나 되며 살까'라던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올 한 해도 다 가버렸네' 하는, 늘 도돌이 되는 그 질문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앞의 한 문장이 안 써져 수십 번 머리를 쥐어뜯는 날도 있고, 어느 날은 훌러덩 몇 바닥이 쓰이는 날 사이에서. 나는 내가 무언가 매달리는 일이 생겼다는 게 너무 좋았다. 돌아갈 자리 같은 게 내게 생겼다는 게. 이게 뭐라고. 그냥 나의 하루를 기술하는 이게 뭐라고. 순간순간 살 것 같았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자, 의외로 많은 이웃 엄마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넌 좋겠다,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어떤 이는 자신은 나처럼 책을 좋아하지도 않고, 결혼 전 하던 일은 다시 후반전에 이어하기에 알맞지 않은 일들이라고 했다. 또 어떤 이는 나처럼 글을 쓰고 싶지만 늘 집안일 때문에 쫓겨 쓸 시간이 없다고 했다. 나도 내가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내가 그간 하던 일이 책을 파는 일이었고, 그땐 파느라 읽지 못한 책을 한동안 다시 읽게 됐고, 그 일이 나에게 이제 글을 쓰는 것으로 연결됐으니.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고 살게 되어서 좋았다. 한때 내가 가장 부러워하던 사람은 예술가였는데, 내가 보기에 그들은 적어도 살면서 이상과 현실이 어긋나 괴로울 일은 없어 보였다. 내 신념 자체가 그대로 밥벌이가 되는 직업. 문제는 밥벌이가 될 만큼 운이 좋은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겠지만. (역시 이상과 현실의 갭은 어디나 존재하니, 우리는 그 어디쯤에서 적당히 타협이나 도박을 해야 한다는 자명한 진리!)  


나도 한동안 제발 무슨 일이라도 좀 일어나주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편한 의자에 너무나 오래 앉아 있다 보니, 그 의자가 너무 편해 박차고 일어나지 못했다. 그 의자가 흡족해서가 아니다. 처음 그 의자가 내게 왔을 때 나는 어떤 이유로든 그 의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게 운명이든, 관습이든, 선택이었든. 내 이상과 현실이 타협한, 당시로서는 내게 가장 적합한. 그리고 관계 맺는 모든 것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며 의자와 나는 서로 길들여졌다. 시간과 정성을 들였던 것이기에 함부로 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즈음 되면 그 의자의 안락함이 관성처럼 나를 잡아당긴다. 


아무리 변화를 꿈꾸어도 잘 일어나 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고인물이 얼마나 지긋지긋해져야 그 반동으로 일어나 질까. 어떤 사람은 처음 선택한 그 의자를 자기 이상에 맞게 잘 만들어가며 산다. 그 의자를 길들이는 일은 여전히 즐겁고, 그 의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쓸만한 의자가 된다. 그게 살림이든 남편이든, 아이를 키우는 일이든. 그렇게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들인 그 의자가 만족스럽다면 굳이 변화를 꿈꿀 필요가 있을까? 괜히 남들이 이런다 저런다 해서 흔들릴 필요 없을 것 같다. 


결국 망가진 의자나 돼야 어쩔 수 없이 일어나진다는 건데... 그렇지 않은가. 사람은 몸이 아파 드러눕기 전까진 병원에 잘 안간다. 시어머니 모시다 우울증이라도 들어야 며느리의 고충을 돌아본다. 제멋대로 하던 부모를 멈추는 건, 아이가 비행이나 저지를 때다. 망가져야, 비명을 질러야 그제야 돌아본다. 그렇게 인간은 보수적이다.  흠, 그러니 나를 일으킨 건 의자가 망가졌기 때문이다. 애초에 필요에 의해 집안에 들였으나 그건 이제 고쳐 쓸 애정이 사라져 버린 의자다. 함께 한 시간 때문에 당장 내다 버리진 못하겠지만, 그 의자는 그렇게 방치된 채 눈엣가시처럼 계속 걸리적거린다. 그 사이 나는 인터넷에서 새 의자들을 검색하기 시작하고, 어딜 가나 새 의자만 보이는 날이 늘어나고, 의자를 바꿔야 할 만한 합당한 이유가 산만큼 쌓여간다. 그렇게 수위를 간당간당 넘기길 몇 번. 어느 날 나는 충동처럼 혹은 운명처럼 카트에 넣고 주문하기 버튼을 클릭한다.  


새 의자로 말할 것 같으면, 이전 의자에 비해 더 특별한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즈음 되면 내 마음은 이미 끓어 넘치기 일보 직전. 어떤 평범한 의자라도 특별히 보일만큼 눈이 먼 상태가 된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우리가 처음 사랑에 빠지던 순간과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조금쯤 과장이라 하더라도, 일종의 사랑이다. 내가 한때 남편에 빠졌듯, 아이에 눈멀었듯, 그건 내게 전부를 원하는 종류의 사랑이다. 삶의 변화랄지 세상의 도전에 직면하는 일이 모두 그렇듯. 하루 종일 내 안에 머물며 떠나가지 않는 사랑다. 내가 설거지를 할 때도, 차를 운전하고 있을 때도, 이웃 엄마의 수다에 즐겁게 맞장구를 칠 때조차도 자꾸 생각나는 사랑. 때론 모든 걸 내팽개치고 너에게로만 달아나고 싶은 그런 사랑.  


한때 평온하고 안락한 생활을 바랐지만, 한동안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한다. 새로운 사랑에 정신없이 흔들리기로. 그 사랑이 지겨워질 때까지 새 의자에 오래 앉아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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