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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Nov 10. 2020

14. 매혹

신 앞에서 함께 하기로 한 그 맹세

당신이 딴 세상 사람 같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군.
어디서 살았기에 그런 표정을 갖게 되었을까 신기했었소. p. 226


로체스터 씨의 부름으로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게 된 제인. 하지만 제인은 그의 거칠고 변덕스러운 태도 앞에 굳이 우아하게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는 제인의 신상에 대해 묻고 교사로서의 몇몇 자질을 테스트를 하는가 싶더니,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 뜬금없이 질문을 퍼붓는다. 그러다 그녀의 그림에 대해 눈빛을 빛내며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식. 고용인과 개인적 관심 사이를 오가는 그의 모습 속에서 분명한 건, 그가 제인을 향해 계속 "요정 같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 그건 매혹이 아닌가!  




결혼 전 남편의 그런 점이 좋았다. 단단한 대지 위에 굳게 서서 절대 흔들리지 않는 사람. 그는 약속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저버리지 않을 사람이었다. 반면 나로 말할 거 같으면 쉽게 마음 주고 마음이 다하면 돌아보지 않는 사람. 마음이 다했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걸 붙들고 있다는 건, 나 자신은 물론 상대를 속이는 일이었다. 그러니, 그 시절 연애는 주로 1년을 겉돌고 끝이 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나의 사랑법은 포스트모던과 미성숙 사이를 오가는 종류였던 듯 싶다. "너 때문에 살았다"는 의무와 책임에 묶인 내 부모 시대의 사랑에 대한 반항이자, 시간을 두고 가치와 의미를 쌓아가는 성숙함과는 거리가 먼. 지독히 이기적인 사랑이었다. 그렇다고 후회한다는 건 아니다. 그건 그때나 할 수 있었던 사랑이기도 하기에. 대신 지난 몇 해 동안 사춘기 아들에게 매일 버림받으며, 남몰래 그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당시 내 감정이 다했다고 살점 끊어내듯 헤어짐을 요구했던 그들에게. 그때 내 감정에 취해 당신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내가 미성숙했다고, 이기적이었던 나를 용서하라고.  


그 당시 나는 나와 다른 점을 가진 상대이기만 하면 무조건 반했던 것 같다. 


미혼 때 예쁘고 성격 좋고 발랄해서 남자 친구들이 늘 공주처럼 받들어 모셨다는 옆집 여자. 어느 날 어른들 소개로 남자 하나를 소개받았는데, 그 남자가 뭐가 그리 좋았는지 손수 자기 차로 남자를 픽업하며 데이트를 다녔다고 했다. 그는 로체스터처럼 잘생긴 호감형도 아니고 친절하지조차 않은데! 자기 이상형도 아닌 그 남자가 무에 그리 좋았는지, 그 남자가 입고 다니던 소매 끝이 너덜너덜해진 스웨터조차 매력적이었다고. 급기야 여자 친구들에게 '시크한 차도남'이라고 자랑했던 남편을 직접 소개하던 자리. 여자 친구들의 경악과 야유를 한 몸에 받고야 말았다,는 지금도 처음 어떻게 만났는지를 얘기할 때마다 회자되는 이야기.  


융의 무의식 용어인 아니마(남성 안의 여성성)와 아니무스(여성 안의 남성성)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 시절 그가 '나와 달라서' 좋았다! 내가 모르는 음악과 영화에 대한 소양이 있어서, 나는 수포자여서 한 번도 관심 가져보지 못한 물리와 수학과 우주에 대해 그가 마구 떠들어대서, 내가 가져보지 못한 가정환경과 경험과 기질을 가지고 있어서. 나와 다른 그의 세계에 매혹돼서. 융에 의하면 그렇게 우리는 자신과 다른 대극 혹은 부족분을 서로를 통해 통합하며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있었던 셈인데. 그렇게 거창한 이론 운운하지 않더라도, 남녀의 첫 만남에 대한 이야기는 온통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통해 얼마나 완전한 인간이 되길 열망하는지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는다.  


문제는 그렇게 대극에 이끌려 사랑에 빠졌던 우리가, 서로의 대극을 합일하여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야 할 우리가, 그 대극 때문에 나중엔 미치고 팔딱 뛰게 된다는 것. 


웬만한 걸로 흔들리지 않던 그 남자는 결혼하고 아이가 둘이 되어도 변하지 않았다. 혼자였을 때처럼 야근을 했다. 내가 한 손으로 첫째 아들 오줌통을 받고 한 손으로 둘째 아들을 가슴에 안고 젖을 먹이는 동안, 그래서 아, 나는 더 이상 여자도 아니구나, 그저 수유와 배설이 한 몸에 기능하는 생존 기계구나, 하며 집구석에서 홀로 그를 기다리다 원망하는 일이 반복되는 동안. 주말에 TV 앞에 앉아서 코미디를 보며 박장대소를 했다. 내가 둘째 아이를 등에 업고 첫째 아이가 놀아달라며 내 한쪽 다리를 잡고 늘어지는 동안 "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냐"라고 남편에게 갈 호통을 첫째 아이에게 퍼부으며 설거지를 하는 동안. 그는 변하지 않았다. 그 일에 지치고 지쳐 어느 날 사표를 내겠다고 했을 때에도 그는 "너 좋을 대로 하라"고 했다. 차라리 내가 좀 더 육아를 돕겠다고, 우리가 자리 잡을 때까지 조금 더 버텨달라고 했다면, 그때 그리 쉽게 사표를 냈을까. 그저 나 좋을 대로 하라니. 여태 나는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인 이 일을 그렇게 죄책감으로 가지고 죽을 듯이 하고 있었던 거구나. 나 좋으라고? 


너는 너 좋을 대로, 나는 나 좋을 대로. 더 이상 합일이랄지, 함께함의 의미를 찾지 못하자 나는 더 이상 버틸 이유도 찾지 못했다. 이제 생존이다.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나부터 살고 볼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취미생활' 따위 걷어치우고, 그에게 생계를 떠밀고, 나 살겠다고 집안에 들어앉았다.   


한동안은 살만 했다. 삶에 절대분의 여유가 생기자, 남편에 대한 미움도 좀 가시는 듯했다. 하지만, 함께 하기를 버리고 합일을 이루지 못한 우리의 문제는 첫째 아이가 사춘기를 맞을 때쯤 고스란히 다시 불거지기 시작했다. 싸움을 피하며 살았던 우리는 아이 사춘기 문제에 있어서도 어떻게 싸워야 할지 몰랐다. 소위 싸움의 근육이랄지 탄력성 같은 게 없었다. 싸우면 끝일까 보아 싸움을 시작하지 못했고, 어쩌다 시작한 싸움은 곧 빈정이 상해 서둘러 마무리되었다.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신 앞에 '함께 하기'로 한 그 맹세는, 그저 그 남자와 그 여자가 자기들끼리 대충 마무리 한 그 일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는 어쩌면 신이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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