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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Sep 06. 2022

언제 죽을지 알고 싶어?

기묘한 이야기 (11) - 죽음의 비밀



예전엔 한강변을 지나가다 보면 서울 시내 어제 기준 교통사고 건수와 사망자수를 게시하는 표시판이 있었다. 교통사고건수와 사망자수였는지 사망자수와 부상자 수였는지는, 아니면 그 모두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적어도 그 목적이 사람들에게 교통사고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였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게시판을 볼 때마다 누군가의 사망 예보를 고지받는 것처럼 간담이 서늘해지곤 했다. 그게 꼭 하루에 1-2명씩이었는데, 그게 또 꼭 1년에 300여명이었다. 


오늘 꼭 한 명은 교통사고로 죽는다.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섬뜩하지 않은가? 오늘 꼭 누군가 한 두 명은 차를 타고 가다 죽게 되고, 서울에서만 1년에 300명쯤 되는 사람이 매년 교통사고로 죽을 예정이라는 사실이? 어쩌다 사망자가 0인 날도 있고 대형 사고로 10이 넘는 날도 있지만 1년에 꼭 300명은 교통사고로 죽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게 누군지 모른다는 사실이? 그럼 그게 지금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나일 수도, 바로 내 앞에서 꾸벅꾸벅 졸며 가는 저 남자일 수도 있는데, 사람들은 매일 그 게시판을 쳐다보면서도 너무나 태연하게 출근을 하고 있었다. 


작년에 넷플릭스에 공개되자마자 전 세계 주간 시청률 1위를 찍으며 흥행몰이를 했던 드라마 <지옥>(연상호 감독)은 그런 점에서 그 '누군가'를 '특정인'으로 지목했다는 것만 빼곤 교통사고 사망 예보와 다를 바 없었다. 어느 날부턴가 '천사'라 불리는 사자가 나타나 내가 죽을 날짜와 시간을 예보한다. 죽을 때까지 나에게 남은 시간은 고지를 받은 30초 후부터 20년 후까지 다양하다. 고지한 시간이 되면 나는 어떤 수를 써도 그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그 예보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찾아오며, 이 모든 게 내가 지은 죄의 업보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느 날 갓 태어난 아이가 죽음의 고지를 받게 되면서 이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이 드라마에서 특히 인상적인 설정은 '시연'이라는 부분이었다. 고지한 날짜가 되면 사자들이 고지자를 찾아오는데, 공포에 질린 고지자는 당연히 죽음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을 간다. 고지자를 발견하자마자 좇기 시작하는 사자. 고지자를 제시간에 잡아가기 위한 그들의 일념은 얼마나 집요한지, 주변의 건물이든 차량이든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폐허로 변하는 장면을 보면서  예전에 읽은 테드 창의 단편 <지옥은 신의 부재>의 한 장면이 겹쳐졌다.


연상호의 '고지'는 테드 창의 소설 속에선 '천사의 강림'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무자비하다는 점에서는 결이 똑같다. 테드 창의 세계에서는 천사가 특별한 이유 없이 한 번씩 지상에 강림한다. 강림할 때마다 천상의 빛줄기를 동반하는데, 이게 얼마나 강력한지 그로 인해 건물이 파괴되고 차량을 전복시켜 늘 커다란 인명 피해를 낸다. 그 사고로 어떤 사람은 목숨을 잃고 그 자리에서 천국과 지옥행이 갈린다. 문제는 이 천사의 출현이 어떤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기는 불운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몸의 장애를 치유하는 기적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점이다. 결정적으로 이때 빛줄기를 맞은 사람들 중 어떤 이는 신에 대한 강렬한 사랑을 덤으로 얻게 되기도 하는데... 연상호의 사자가 한 사람의 '징벌'을 위해 무자비하게 달려드는 사자라면, 테드 창의 천사는 '기적과 신앙심'이라는 옵션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보다 선택지가 열려 있달까.


그래서,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 죽음은 도처에 널려 있는데, 우리는 오늘도 태연하게 일상을 살고 있다는 거?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늘 죽음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고, 그 시와 때를 알지 못하지만 죽음은 늘 교통사고처럼 우리에게 곁에 있다는 거? 


그런 얘기라면 식상할 정도로 들어왔다. 


문제는 왜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느냐는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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