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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Sep 13. 2022

불행에 대해 적기 시작했다

모호하던 불행에 구체적으로 답하다




우리 땐 배우자 기도라는 게 있었다. 배우자도 구체적으로 조건을 가지고 기도해야 비슷한 사람을 만난다고. 이런 예화도 빠지지 않았다. 옛날에 복권에 당첨되길 간절히 바라던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매일 아침 교회에 나와 기도하고, 그는 전심을 다해 기도했다. 그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어느 날 진짜 그의 앞에 하나님이 나타났다. 그리고 얼굴에 안타까움이 가득한 표정을 담고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네가 그동안 너무 너무 기도를 열심히 해서, 내가 정말 정말 부담이 많이 되더라. 그래서 네 소원을 들어주기로 결심했거든? 그러니까 얘야, 제발 복권부터 사고 나서 기도하면 안 되겠니?"


그 시절엔 이런 류의 예화가 흔했다. 정화수 떠놓고 기도만 하는 건 기복신앙이라고. 좋은 대학에 가고 싶으면 기도만 할 게 아니라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멋진 배우자를 만나고 싶으면 내가 원하는 조건이 뭔지 생각하며 기도라고.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고. 막연하면 안 된다고. '그럼, 가령 그해 대학 정원이 10명이야. 근데 20명쯤 되는 지원자 전원이 하필 다 기독교인이고, 모두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야. 그럼 하나님은 누굴 뽑아주실까? 더 간절히 기도한 사람? 아니다.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이다. 그럼 기도는 왜 하는데? ' 그때도 좀 삐딱해서, 배우자 조건 따위 너무 세속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하고 어느 날 내게도 막연하게나마 배우자상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 바로 전 세계 기업을 오가며 협상 테이블을 누비고 다니는 남자. 영어는 네이티브 수준에 어떤 상대를 만나도 자신만만하고 주눅 들지 않는 남자. 인터내셔널 한 감각이 온몸에 배어 있는 남자... 흠, 여기까지 쓰고 나서 나는 지금 펜을 잠시 내려놓고(물론 키보드로 치고 있다!), 씻어놓은 포도를 한알 입에 넣고 한숨을 쉰다. 배우자 기도 따위 믿지 않았으나, 하나님은 내 깊은 마음의 소원까지 아시고 이렇게 미리 성취해 주셨을까. 할렐루야~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이 바로 그런 남자다. 휴우.


회사를 때려치울 때쯤, 남편의 회사는 상장을 했고 한창 주가가 오르고 있었다. 우리에겐 당시 시세로 최소 3억 가량의 주식이 있었다. 남편에겐 곧 해외지사로 파견될지 모른다는 제안도 심심찮게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나의 회사 생활에는 걸림돌 몇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맞벌이 개념이 전무한 남편. 그의 뇌를 뜯어고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해 보였다. 일에 대한 자부심? 물론 있었다. 여자가 아이 낳고 일하기 너무 좋은 회사였다. 하지만 팀장이 되고 사람을 관리하고 평가하는 일을 맡게 되자 내가 권력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정적으로 나 또한 옛날 여자라, 내 자리는 언제라도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자리며 내가 여기까지 오른 것 또한 늘 행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어차피 우리 둘 중 누군가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한다면 늘 그게 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여자들처럼 남편 따라 외국에 가서 다른 삶 좀 살아봐도 좋겠다 싶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 영어도 익히고, 운 좋으면 제2 외국어까지... 유튜브로 마이클 샌델의 하버드 강의를 듣는 내 미래를 상상했다! 뭐, 그도  아니면 주식을 팔아 마당 딸린 집을 사면 되지. 마당 한가운데 커다란 나무가 있는 집은 내 오랜 꿈이었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나무를 다람쥐처럼 오르내리고 나무집에서 탐정 놀이를 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 과감히 품고 다니던 사표를 회사에 내고 집에 들어앉았다.


10년 후. 남편의 해외지사 건은 없던 일이 되었고, 주식은 상폐 수순을 밟았다. 지독했던 아들 사춘기를 그럭저럭 버텨내자 중년의 어두운 밤이 바통을 이어 받았다. 살면서 인생이 생각한 대로 착착 풀리게 될 거라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매일이 똑같이 그럭저럭 한 삶일 줄은 몰랐다. 만족스럽지 않으나 딱히 불만이랄 것도 없는. 남편은 여전히 해외를 누비며 다닌다. 하지만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늘 시차 때문에 불면증을 겪는 남편은 비행기라면 질색을 했다. 당신처럼 내 아들도 유학을 보내고 싶다고 의향을 떠봤지만, 국내에서 동기부여 받지 못하면 나가서도 아무 소용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인생이 너무 지루해서 제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 주길 바랬던 어느 오후가 생각난다.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지거나 먼 친척이 내게 500파운드의 연금을 유산으로 남겨줄 일 따위 일어날 리 없겠다 싶자, 불행이면 뭐 어떠랴 싶었다. 겁도 없이, 설혹 그게 불행한 것이더라도, 그를 핑계로 다른 생을 살아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남들은 남편 사업에 물이 올라 국내외로 여행을 다니고 시댁 땅값이 올라 이 참에 크게 한몫 떼어주었다는데, 내 인생은 얼마나 정직한지, 손목이라도 그으면 모를까, 거저 주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알았다. 변화를 원하는 사람 중 많은 이들이 나처럼 꿈꾼다는 사실을. 그들은 남편이, 아이가, 시댁이, 정치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주변이 변해야 비로소 나의 행복이 시작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지만 나 자신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해 물으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무엇 때문에 불행해?라고 물으면 꼭 짚어 말하지 못했다. 나 자신에 대해서라면, 바꿔야 하는 이유보다 바꿀 수 없는 이유가 많았다. 돈이 얼마나 많으면 좋겠어?라고 물으면, 돈이 많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고,라고 얼버무렸다. 모든 게 모호했다. 나 자신에 대해서라면, 바꿔야 하는 이유보다 바꿀 수 없는 이유가 많았다.


어느 날 책에서 죄는 늘 무엇에 대한 '부정'이나 '결핍' 혹은 '왜곡'으로 나타난다는 구절을 만났을 때, 모호한 것들 안에 어떤 음모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엔 누군가를 미워하고, 물건을 훔치고, 살인을 저지르는 명백한 악 보다 자신의 어리석음과 회피로 점철된 모호한 악이 더 많다는 사실도.

  

그때부터 적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느끼는 불행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 내가 바꾸고 싶으나 회피하는 것들에 대해. 그 모든 '나'에 대해. 나를 마주하는 일은 고통스러웠지만, 내 안에 균열이 생기자 나를 둘러싼 풍경들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변화 일으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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